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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와 부모님
배정원 2007년 12월 28일 (금) 01:52:35
크리스마스가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공교롭게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에 출근하려다가 선배 모친의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검은 옷을 차려입고, 하루를 보내고, 저녁엔 선배의 상가를 찾았습니다..
천수(?)를 다하고 가신 분이신지 상가에 슬픔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더군요.
삼일장이 아닌 사일장이었다니 슬픔에 겨워하기에 너무 긴 시간이었을까요?

그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선배의 어머니는 선배를 낳고 다섯 달 만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번도 엄마라는 호칭을 불러 본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이번에 돌아가신 분은 두 번째 어머니라고.

늘 문제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에 치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어본 적이 없다는 그 선배는 그래서였는지 늘 얼굴에 그늘이 져있고 우울해 보였습니다. 선배의 사회적 성취와 상관없이 기죽어 있는. 그저 슬쩍 밀치기만해도 풀썩 쓰러져 버릴 것 같은 힘없는, 어딘가 비어 있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선배의 상가에서 만난 또 한 선배님은 그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래서 그랬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거리셨습니다.
저도 그 선배가 딱해서 손을 꼭 잡고 있을 수밖에요.

그게 바로 어머니의 힘을 받지 못한 자식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미숙한 어머니라 할지라도 어머니는 마치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것처럼, 자식의 뒷심이 되어준다고 할까요?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내 자존감의 근원은 바로 부모님이고 그 중에 또 어머니입니다.

자식을 버리듯 남의 둥지에 낳고 가는 뻐꾸기의 어미도 자식이 날개짓을 하게 될 때에 맞추어 자식을 버리고 간 둥지에 날아온다고 합니다. 그리곤 다 자란 자식을 데리고 날아간다 하지요. 자신의 무리 속에 살게 해주기 위해서요. 참 놀라운 어미의 본능적인 모성이지요.

어린 시절 저는 엄마와 화목하지 못했습니다.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우리 엄마도 엄마의 역할을 배워 보신 적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나마도 나이가 들어 그렇게 이해했지, 늘 소녀 같고 어린아이 같은 구석이 있으신 엄마를 저는 못마땅해 했던 참으로 교만한 딸이었습니다. 저를 예뻐해 주시는 아빠의 힘에 기대어, 왜 엄마는 아빠의 마음에 꼭 들게 못할까 답답해했었죠.

이제와 생각해 보니 엄마에게는 참 영악하기만 한 다정하지 못한 딸이었습니다. 엄마는 늘 물같은 분이셨죠. 우리 엄마도 그 선배처럼 일찍 엄마를 여위어 그렇게 마음의 뒷심이 없으셨나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얼마 전 아버지가 갑자기 위독하셔서 응급실로, 중환자실로 병치레를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전 그때 지방 출장 중이었는데,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정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는데, 늘 미루기만 했는데, 혹시라도 아버지가 제 곁을 떠나시면 어쩌나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곁에 있는 부모님에게 '사랑한다' 고백하라던 어떤 광고조차 사무쳐 왔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은 제 곁에 아직 계십니다. 감사하게도.

나이 들어 자식을 기르며, 그것도 한창 질풍노도의 중간에 든 자식들을 기르고 있자니
이제서야 부모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조금 알 것만 같고 얼굴이 붉어집니다.

선배 덕에 다시 부모님생각을 크리스마스에 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점심은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늘 아이들만 생각하는 크리스마스였는데, 이제 좀 철이 들어가나 봅니다.
예전에 아버지가 제게 해주셨던 것 같이 좋은 중국 요리집으로 모시고 가서,
즐겨 드시던 양장피랑 마늘 많이 넣은 깐풍기 몇몇 요리와 향이 좋은 고량주까지
주문했습니다.

분명 늘 맛있게 먹던 음식이었건만, 그날은 자꾸 목이 메었습니다.
아마도 부모님의 사랑을 만분의 일도 갚지 못할 제 이기심이 부끄러웠던 탓이겠지요.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필자 배정원씨는 성상담 전문가로 현재 연세성건강센터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다양한 연령층을 상대로 성교육 강의를 하고 있으며, 매일경제를 비롯하여 온라인 신문에 관련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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