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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넘어 창의력이 빛나는 사람들
김수종 2017년 08월 25일 (금) 00:01:10

자주 보는 광경일지라도 보는 사람의 심리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팔월 초 어느 조찬 모임에 참석했는데 출근 시간에 맞춰 8시 30분에 회의가 끝났습니다. 직장이 없는 나는 귀가하기 위해 광화문 지하철역으로 갔습니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은 나 혼자일 것 같았는데 출근하는 젊은 직장인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계단을 꽉 채우고 밀물처럼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순간 나는 세상 사람들의 흐름에서 이탈하여 퇴장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정신없이 출근하는데 나는 하릴없이 집으로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바쁜 하루였는데도 말입니다. 일종의 사회적 유리감(遊離感)이라고도 할 수 있고, 이제 사회의 주류에서 역행하여 가는구나 하는 생각 같기도 했습니다.

사실 나이 들어 틀에 박힌 직장 일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유쾌한 자유를 느끼게 하는 일인데, 이날 지하철에서의 느낌은 좀 색달랐습니다. 아마 그때 아주 가까운 친척 중 한 사람의 부음을 들어 충격이 컸던 터라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나이 먹는 것을 얘기할 때면 나는 이 ‘자유칼럼’ 필자의 한 사람인 황경춘 선생님을 떠올립니다. 그는 93세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연령에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는데, 그는 글을 쓰는 정신노동을 건강하게 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것이 보통 힘든 게 아닌데, 어디서 그런 정신력과 창의적 사고력이 마르지 않고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광화문 지하철역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난 며칠 후, 황경춘 선생님이 일본의 106세 의사 히노하라 시게아키(日野原重明) 박사의 사망과 관련한 글을 ‘자유칼럼’에 썼습니다(8월 8일자). 글 제목은 ‘나이 먹는다는 것은 성숙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뉴욕타임스도 히노하라 박사의 부음 기사를 비중 있게 다뤘는데 ‘106세 의사가 일본에게 오래 사는 법을 가르쳤다’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히노하라 박사는 1911년생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탈한 한일합병 이듬해에 태어났으니 파란만장한 20세기를 다 겪고 4차산업혁명이 싹트는 21세기까지 경험한 사람입니다.
히노하라 박사는 그의 장수가 화제가 아니라, 스스로 과식과 조기 은퇴를 거부하고, 일본이 세계 최장수 국가가 되도록 창의적인 의학적 조언과 병원 임상시설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그의 삶의 궤적이 관심거리입니다. 그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구경하겠다는 스케줄까지 짜놓고 타계한 게 아쉽지만, 그의 소신대로 생명연장 장치를 거부하고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편안히 눈을 감았다는 사실은 먼 동화나라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몇 달 전 외신에 소개된 늦깎이 성공사례를 읽으면서 나이 먹은 사람들의 천재성을 꽃피우는 것은 그 사람이 사는 사회 환경이라는 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창의력이 사라진다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들이 사회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46년 2차대전 직후 24세 나이로 시카고대학 물리학과에 지원한 제대 군인 죤 굿이너프는 교수로부터 “너무 나이가 들어 성공할 수 없으니 포기하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가 바로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스마트폰의 리티움이온 배터리를 발명한 사람입니다. 1980년 그의 나이 58세 때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올해 95세인 굿이너프 박사는 그가 봉직한 텍사스주립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새로운 배터리를 고안하여 최근 특허출원을 한 것입니다. 이 특허가 상업화될 경우 배터리는 더욱 값싸지고 가벼워지며 안전해지게 된다니 늙은 과학자의 천재성이 빛나는 것을 보게 되는 겁니다.

굿이너프 박사의 인생이 말해주는 것은, 사람은 나이를 많이 먹어도 두뇌활동은 그 사람의 열정과 목적의식에 의해 창의성을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굿이너프 박사는 어린 시절 냉장고가 아니라 아이스박스에 음식을 저장하고 석유램프를 쓰던 시대에 태어나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구입한 포드 휘발유 차를 탔습니다. 1970년 석유위기 때 그는 에너지를 배터리에 저장해서 쓰면 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서 배터리 연구에 몰입했고, 그게 성공하여 오늘날 휴대전화와 전기자동차에 쓰는 리티움이온 배터리를 발명한 것입니다.
그가 새로 출원한 배터리 특허가 상업화에 성공하면 전기차 보급은 더욱 앞당겨지고 세상은 더욱 편해질 것입니다. 덩달아 그가 최고령자로 노벨상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하니 기대도 됩니다.

늦깎이 성공에 대한 굿이너프 박사의 인생관이 특이합니다. “거북이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거북이는 계속 기어가야 합니다. 인생을 기어가는 것도 이득이 될 때가 있습니다. 다른 분야에 곁눈질하다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거든요." 그는 물리학 공부를 시작으로 화학에 뛰어들었다가 다시 소재과학을 연구해서 리티움이온 배터리을 고안해낸 겁니다. 그의 곁눈질은 과학 쪽만 아니고 사회 및 정치현상으로도 돌렸기에 온실가스를 줄이는 배터리 연구에 열정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노년의 장점에 대한 그의 생각이 참 흥미롭습니다. 노년은 새로운 지적(知的) 자유를 준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일자리를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저커버그는 2007년 그의 나이 23세 때 스탠퍼드대학 행사에서 “젊은 사람이 정말 훨씬 스마트하다.”고 말했고, 그 이후 실리콘밸리에서는 젊은이 흠모열이 더욱 달아올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후 저커버그는 그런 말을 한 것에 사과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한 연구재단이 조사한 것을 보면 발명가의 절정 나이는 40대 후반이고 연구경력 전체를 놓고 볼 때 후반기에 더욱 생산력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히노하라 박사나 굿이나프 박사 같은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화제가 되는 것이긴 하지만, 정년을 맞아 은퇴하고서도 20~30년을 방황하게 될 이 시대의 노·장년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나올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각자 나름대로의 조그만 일을 찾고 국가나 사회가 이를 장려하고 도와주는 정책을 펴는 데 청년실업에 쏟는 정부 투자의 10분의 1이라도 투입한다면 사회가 좀 밝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 활기차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청년 세대에게 더 희망을 주는 길이 아닐까요.

나이를 먹을수록 창의력이 말라버린다는 게 일반적인 통념입니다. 한국 사회에 더욱 그런 통념이 강한 것 같습니다. 본인도 가족도 모두 소년출세를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장수사회 또는 노령사회로 접어들었습니다. 늦게 피는 꽃처럼 환경이 뒷받침되면 나이를 먹어도 지혜와 잠재했던 창의력이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창의력은 나이와 함께 쇠잔해버린다는 일방적인 편견과 싸우고, “이제 나이가 들었는데 그만 쉬시죠.” 라는 주변 분위기에 주눅 들지 않는 노년의 이유 있는 반란이 필요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본인을 위해, 가족을 위해, 그리고 사회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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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선 (121.XXX.XXX.119)
김수종 선생님 반갑습니다.
전에 유한킴버리 문국현사장님의 초청으로 금강산에 같이 갔던 자연환경국민신탁 정구선 평의원입니다.
제 나이도 내년이면 80세가 됩니다. 아직도 광주NGO시민재단 이사장 등 몇가지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만, 내년부터는 책임맡는 일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할 수 있는 회원활동에만 참여하고자 마음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도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는 일이 있어야 좋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너무 일찍 힘빼지 말아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글 써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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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5 22: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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