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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담숲의 소나무
정숭호 2017년 08월 29일 (화) 00:01:42

이 뒤틀린 소나무 모습이 며칠째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경기 광주시 도척면 도웅리, 흔히들 곤지암 리조트라고 부르는 ‘화담숲’에서 봤습니다. 화담숲은 LG그룹이 2006년 조성한 곳입니다. 40여만 평의 부지에 우리나라 토종 나무들과 꽃, 민물고기와 곤충을 편히 볼 수 있게 모아놓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란한 탈 것과 시끄럽고 번쩍거리는 공연장, 너저분하고 우리나라 어디서나 똑같은 모습의 노점상과 음식점 따위가 없는 ‘자연친화적 테마파크’여서 차분히 생각에 잠기며 다닐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소나무 정원’이라고 이름 붙은 구역에는 이 소나무 말고도 수십 그루의 뒤틀리고 비비 꼬인 소나무들이 신기하고 괴이한 모습으로 바위 사이, 언덕 여기저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것도 이 소나무만큼 내 눈길을 끌지는 않았습니다. 분재(盆栽) 같지만 바로 옆 ‘분재정원’에서 수백 점의 분재를 전시하고 있으니 분재는 아닌 게 분명합니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말을 돌리지 않고, 배배꼬지 않고 바로 하고 싶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화담숲을 다녀온 지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이 소나무가 눈앞에 선명히 남아 있는 것은 구부러지고 비틀린 모습을 보는 순간 떠올랐던 대다수 인생들의 축도(縮圖)와, 우리나라 역사의 굴곡이 눈 속 깊이 박혔기 때문입니다. 이것보다 더 뒤틀리고 비꼬인 소나무들도 많았지만 이 나무처럼 이런 연상은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사진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고생하며 자란 흔적이 역력합니다. 땅바닥을 뚫고 나온 뒤 한참 동안은 위로 곧게 잘 올라갔습니다. 그러다 무슨 일을 만났는지 옆으로 누워 몸을 뻗더니 얼마 가지 않아 아래로 거꾸로 처박혀 태어났던 땅바닥을 향해 내려갑니다. 그러다가 다시 힘겹게 옆으로 방향을 틀어 겨우겨우 위로  올라가면서 큰 가지 두 개로 나뉘고 거기에 뾰족뾰족 솔잎이 달립니다.

그리 크지도 굵지도 않은 이 소나무가 지금까지 자라면서 방향을 바꿀 때마다 안간힘을 쓰며 버텨낸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집니다. 뭐가 이 소나무를 저리도 괴롭혔나! 자연 상태에서 바람과 눈비를 피하려다 저런 모습이 됐다는 설명을 어디선가 보았는데, 여러 차례 구부러지고 뒤틀린 게 기구하기만 합니다. 사람이 저렇게 자랐다면 벌써 몇 번은 죽었을 겁니다.

구부러진 마디마다, 뒤틀린 자리마다 겪어보지 않은 처지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 서러움이 있었겠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기막힌 곳은 아래로 방향을 바꾸어, 거꾸로 자란 부분입니다. ‘나무란 두 팔 벌려 위로 자라는 생명인데, 해를 향해 위로 올라가는 존재인데, 또 위로 가지 못할 경우라면 옆으로 길 수야 있겠지만 저렇게 땅을 향해 거꾸로 내려가는 경우란 무엇인가? 이승보다 저승이 좋았단 말인가? 사람으로 치면 어떤 억장이 무너지는 일을 겪었단 말인가?’

‘저 소나무도 억지와 궤변, 강압에 짓눌려 아래로 방향을 바꾸어야만 했단 말인가?’ 이런 생각까지 해봅니다. 구체적 사례를 열거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억지와 궤변이 순리와 선의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했을 때 개인이라면 일생이 뒤집어지고, 역사라면 거꾸로 흐른 적이 멀리는 물론 가까운 과거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무는 다시 해를 향해 자라고, 사람은 재기에 성공하고, 역사는 바로잡혀 다시 힘차게 흘러가기도 하겠지만 그때까지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내야만 합니까?

소나무는 기상(氣像)과 기개(氣槪), 굳은 의지를 나타낼 때 자주 비유되나 이 소나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애국가 2절 ‘남산 위에 철갑을 두른 듯’한 소나무는 키가 크고 가지가 쫙쫙 뻗은 낙락장송(落落長松)이지 이렇게 비꼬이고 뒤틀린 모습의 나무는 아닐 겁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멋있고 아취(雅趣)있게 자랐다며 가까이에 두고 싶어 할 사람도 있겠지만 글쎄요, 저라면 ‘다시는 고생하지 말자’는 반면교사(反面敎師)의 역할이면 모를까, 멋있다고 옆에  둘 생각은 없습니다.

겨우겨우 이제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는 저 소나무, 이제 다시는 옆으로도, 아래로도 자라지 않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진작부터 곧게 하늘로 뻗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소나무의 굽은 모습에 대해 이런 질문도 해보고 싶습니다. '스스로 그은 레드라인을 스스로 뭉개기라도 해야 했단 말인가?' 소신과 각오와 맹세가 담긴 '희망'을 포기해야 했을 때의 참담함은 큰 응어리를 만들고, 희망의 주인공이 나아가려던 길의 방향도 바꾸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ICBM과 관련한 대통령의 '레드라인' 발언과 그 발언에 대한 설왕설래들이 뒤늦게 떠올라 하게 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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