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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시간
임철순 2006년 12월 26일 (화) 00:00:00
아침에 출근을 하다 보면 늘 만나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어디쯤 가면 누구, 거기서 조금 더 걸어가면 또 누구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되는데, 평소보다 늦게 집에서 나오면 마주치는 장소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서로 인사를 나눈 적이 없으니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어쩌다 그들이 보이지 않으면 괜히 궁금해지는 게 사실입니다. 어떤 처녀는 언제나 조그만 입을 꼭 다문 채 사람을 쳐다보지 않는 새침데기 표정으로 걷기 때문에 눈이 마주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눈이 마주친 적이 없어도 거의 매일 나와 만난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자들은 안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든 걸 다 보지 않습니까?

그렇게 아침마다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같은 회사의 경비원들도 있습니다. 24시간 철야근무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그들과는 언제나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밤을 새운 그들은 약간 피곤해 보이지만 이제 하루를 온전히 쉴 수 있게 됐다는 편안함과 행복함을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월급이 적든 많든 집에서 가깝든 멀든 매일 출근하고 퇴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매일 서로 엇갈리다 보니 같은 일을 하는 게 아닌데도 마치 그들과 내가 교대근무를 하는 기분이 듭니다. 그러다가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까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낮과 밤이 이곳과 다른 그 곳에서는 내가 알거나 또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와 반대로 교대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내가 집에 들어가는 동안 어떤 여자는 잠에서 깨어 일어나고 내가 잠을 자는 시간에 그녀는 바쁘게 활동합니다. 하는 일이 다르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저마다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이제 2006년이 2007년과 교대를 하는 시간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세밑은 언제나 어수선하고 좀 쓸쓸하지만, 새해에는 그래도 뭔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보게 됩니다. 그리고 연말이면 어느 조직 어느 기관이든 물갈이를 합니다. 그것은 물러가는 사람의 자리를 새 사람이 채우고 승진 전보인사를 통해 조직의 활력을 다지는 일입니다. 물론 잘못되면 부작용이 더 큰 게 인사입니다.

지금은 교대시간입니다.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린다는 조병화의 시 <의자>도 생각나는 시간입니다.

인간은 삶의 각 단계에서 그 때 그 때 필요한 것들을 터득하고 졸업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먼저 것 위에 새 것을 쌓으면서 점차 나선형으로 조금씩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삶의 각 단계를 충분히 졸업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미련이 생기는 가 봅니다.

신문사 사회부장 편집국장을 거친 선배가 주필로 일할 때 “내가 지금 사회부장이라면 더 잘 할 텐데”하는 후회의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를 비롯해 술자리에 함께 있던 후배들은 속으로 “얼마나 더 해먹으려고…” 이런 반응을 보였습니다만, 지금은 그 말의 뜻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그가 특별히 사회부장을 거론한 것은 그 자리가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보도를 맡은 자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삶의 고비를 돌이키면 어쩔 수 없이 후회와 미련이 남습니다. 지금은 그 때보다 더 분별이 생긴 것 같고 철이 더 든 것 같고 인간과 사회에 대해 좀 더 따뜻하게 볼 수 있는 여유도 있는 것 같고 한데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요. 자리는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고 후배는 선배의 잘잘못을 보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법이니까요.

차장이 되기 전에는 차장 공부를 하고 부장이 될 무렵에는 부장 공부를 해 놓아야 하는데, 삶의 고비와 단계마다 만족할 만큼 자신의 특성과 자질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그 자리를 졸업하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참 드뭅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애써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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