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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은 아니 되오
김창식 2017년 10월 18일 (수) 00:05:57

추석 같은 명절 연휴나 제사처럼 가족 친지가 모이는 날 물색없는 집안 어른이 나름 걱정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젊은 층은 듣고 싶지 않은 그 같은 말 중 상위권을 점하는 스테레오 타입 물음은, “결혼 소식은 좀 있고?” “취직은 언제 하남?” “애는 언제 낳을 겨?” 대화가 이어지다 끊깁니다. “아, 예. 그것이 아직…. 죄송합니다.” “뭐 죄송할 것까지야 없고. 그래도 일찍 아이를 봐야….” 이어지는 속내는, “그래야 더 많이 낳을 수 있을 테니까.”

살다 보면 사람들과 이런저런 일로 말로 엮이기 마련이지요. 칭찬하고 북돋는 말로 좋은 관계를 맺기도 하고, 의도적이거나 무심코 내뱉는 습관적인 말로 관계가 엇나가기도 덧나기도 합니다.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평상시에 주고받는, 그래서 언뜻 지나치게 마련인 평범한 말도 그러하지요. 곰곰이 따져보면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숨은 의도가 있어 원래 뜻대로 사용되지 않은 말들이 많습니다. 이 또한 말의 묘미, 아니 폭력적 속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님 말고

“내가 잘못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저런 말이 들리던데… 그랬다며?” 확인되지 않은 궂은 소문을 ‘포도 잎 사이로 부는 바람결에 듣거나’ ‘트윗 트윗 작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당사자에게 무슨 ‘복음(福音)’인 양 미소를 띠며 전해주는 말법입니다. 이른 바 “…카더라” 통신이에요. 음지(陰地)에 사는 소문의 속성상 그것을 가감 없이 전달하기는 어렵습니다. 눈덩이처럼 부풀려지기 마련이죠. 때로 상상력을 발휘한 의혹이 가미되거나 주관이 틈입하여 사실을 왜곡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일로 고심하던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안겨주기도 하지요. 듣는 사람이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하거나 못마땅해 하면 발설자는 짐짓 눙치거나 도리어 화를 냅니다. "누가 뭐래? 아님 말고!”

#그랬단다

“어쩌구저쩌구… 이렇구저렇구 해서 그랬단다.” 종편 방송 팩트 체크도 아니고, 자기가 무슨 차라투스트라라고. 부담 없는 사적인 모임에서 화제를 주도하는 ‘말빨 센’ 사람이 이 같은 말투를 사용합니다. 내용인즉슨 별것도 아닌, 이슈가 되고 있는 정치인의 부도덕한 언행이나 연예인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에 관련된 ‘결정적’ 정보를 독점하여 쐐기를 박는 것이에요. 동창회 같은 데서는 옛 학창시절의 어렴풋한 추억을 3D 입체 화면으로 박진감 있게 재현합니다. 마침 기억력 쇠퇴를 치매의 전조 증상이 아닐까 의심하는 다른 친구들은 리더의 ‘총기 있음’에 감탄하며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그렇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발설자 자신도 확실치 않은 기억을 ‘아마 그랬을 거야’라면서 대충 때려 말한 것이거든요, 믿거나 말거나. 아님 말고!

#알아서 해

“그랬단다. 그러니까 알아서 해. 알아서 하라고.” 친구 사이는 물론 연인이나 배우자, 부모 자식 사이의 대화에서 자주 오가는 말입니다. 그러니 ‘가족 용어’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듣는 사람의 판단에 맡기는 듯한 이 말이 선택을 강요하거나 의사결정을 속박하는 ‘갑(甲)을(乙) 용어’로 쓰인다는 것이 문제지요. 말하는 사람이 원하는 답변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입니다. ‘답정너’라는 신조어도 있잖아요. ‘듣고 싶은 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그것을 말하기만 돼’. 듣는 사람이 행여 다른 의견을 내세우기라도 하면 아까의 주장과 논리를 되풀이하며 다그칩니다. “그래도 못 알아듣겠어?” 알아서 한 일의 결과가 성에 차지 않으면 다시 추궁할 거예요. “알아서 한 것이 그 모양이냐?” 이쯤 되면 속수무책입니다. “너나 잘 하세요!” 잠깐, 가까운 사람 사이에 이 같은 말이 오가는 관계가 그나마 바람직한 것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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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 (218.XXX.XXX.2)
깊어가는 가을입니다. 단풍이 설악산 서북능선을 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서북능선에 부는 바람처럼 시원 시원한 글 잘 읽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입니다. 김교수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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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2 13: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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