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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컵, 우리 사회의 품격을 말한다
이성낙 2017년 10월 24일 (화) 00:00:59

예술의전당(서초구)은 서울의 명소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입니다. 나름대로 접근성도 편리하고 오페라, 콘서트, 미술 및 서예 같은 다양한 장르의 문화 행사가 펼쳐지기도 하며, 야외 ‘음악 분수(Music Fountain)’ 마당은 휴식처로 많은 사람의 발길을 끌어들입니다. 서울의 복합 문화 공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예정된 행사 시간보다 30~45분 일찍 도착해 여유로운 마음으로 차향을 즐기곤 합니다. 그런데 한 번은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콘서트홀 내 커피숍에서 주문한 에스프레소가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겨 나왔습니다. 음료를 받는 순간 당혹감을 감출 수 없어 혹시 에스프레소용 소형 머그잔에 담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사기 용기는 어떤 형태로든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술의전당 구역에서는 몇몇 특정한 곳(식당)을 제외하곤 언제나 다양한 음료수를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마시곤 했습니다.

바로 얼마 전 국내 모 대기업이 주관한 행사장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주최 측에서 임시로 설치한 리셉션 장소를 찾아갔습니다. 행사를 주관한 기업 이미지에 걸맞게 서빙 요원의 옷차림이 보통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용모가 단정한 데다 몸에 걸친 복장 또한 일품이었습니다. 필자가 자리를 잡자 서빙 요원이 주문을 받아 갔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긴 샴페인이 나왔습니다. 어처구니가 없고 한편으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샴페인은 연말 연초 축하연, 결혼 축하연, 생일 축하연 같은 특별한 자리가 절정에 이르면 ‘음료수의 여왕’으로 등장합니다. 이때 샴페인은 그에 걸맞은 날씬한 크리스털 유리잔에 담겨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샴페인을 일회용 컵에 담아 마신다면 이는 마치 ‘개(犬) 목에 진주 목걸이’와 같은 경우라 할 것입니다. 외신에 나갈 만한 가십 수준입니다. 이는 초빙받은 사람에 대한 예의도 아니거니와 행사 주최자의 품격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해 몇 년 전 뮌헨 대학교에서 겪은 ‘사고’가 생각납니다.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여유가 있어 교정을 거닐던 중 커피가 생각나 자동판매기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교정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도 자동판매기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겨우 건물 한쪽 구석에 숨기듯 놓은 자동판매기를 보곤 기기가 제시하는 소정의 금액을 지불했습니다. 그리고 ‘커피 버튼’을 자신 있게 누른 필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컵도 없는 상태에서 커피물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자동판매기처럼 일회용 컵이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황당해하는 필자를 지켜보던 한 학생이 친절하게도 자기 배낭에 매달려 있는 스테인리스 휴대용 컵을 빌려주려 하였습니다.

일회용 컵의 반(反)환경적 폐해를 새삼 깨우치는 현장 교육을 받은 셈이기도 하지만 품격을 지키려는 그 사회의 속내도 보았습니다. 실제로 유럽 도시의 공공 행사장이나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우리와 달리 자동판매기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소비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자동판매기를 요란하게 디자인하지도 않습니다. 파리 중심가의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맥도날드 점포의 로고는 다른 점포의 것보다 작은데다 전형적인 강한 노란색 대신 흰색을 쓰고 있는데, 업체에 이를 ‘강요한’ 시 행정 담당자의 눈높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필자는 유럽이 그들의 생활환경을 지키기 위해 나름의 기준을 세워놓고 불편을 감수한다는 점에 주목하게 됩니다. 반면 우리 사회는 ‘편리하면 많은 것을 용인·용서’하고 ‘편한 게 좋은 것’이라는 사고에 너무 익숙한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회가 지향하는 품위를 지키고 가꾸려면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일정 부분은 감수하고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개개인의 행동거지(行動擧止)부터 시작해 사회가 추구해야 할 덕목입니다. 이러할 때 자연스레 개인의 품위는 물론 사회의 품격 또한 지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근래 한반도를 덮치고 있는 전운(戰雲)이나 국내외 경제 상황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말 좀 한다는 사람들이 떠벌리는 격한 언행을 마냥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당혹감 때문일 것입니다. 이는 개인의 품위는 물론 사회의 품격이 ‘날개 없는 추락’을 하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일회용 종이컵이 지닌 ‘편리함’ 때문에 이를 ‘격 없이’ 사용하는 사회 정서와도 분명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회용 컵, 우리 사회의 품격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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