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영이 외롭지 않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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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이 외롭지 않을 이유

김영환

2008년 01월 04일 (금) 03:08:20

허경영 대선 후보에 대한 평가를 처음 들은 것은 대선을 코앞에 둔 12월15일 택시 안에서였습니다. 60대 운전사는 택시운전기사들의 민정경찰 위촉, 60세 이상에 대한 건국수당 월 70만원 지급, 결혼수당 1억원, 출산 수당 3,000만원 지급 등 물어보지도 않은 그의 공약을 속속들이 꿰고 신나게 설명했습니다.

필자는 선관위에서 준 허씨의 선거 공보물을 선거일까지 읽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버리지 않고 챙겨두었다가 허씨가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가 급등하자 찬찬히 읽었습니다. 그의 유인물만 신문지였습니다. 선거비용을 절감하려는 것이었겠지만 검소한 태도가 드러났습니다. 필자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의 허황되고 시혜적인 대국민 퍼주기가 아니라 재원조달방안이었죠.

그의 공약에 이런 게 있었습니다. 󰡒일본과 유럽은 보도블록을 30년 이상 쓰게 되어있는데 우리는 1년마다 바꿉니다󰡓라고. 물론 1년마다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유달리 자주 바꾸는 것은 사실이죠. 특히 연말에 멀쩡한 걸 서둘러 교체하는 데 우리는 격분했고 방송매체들이 줄기차게 비판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이것은 작은 부분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공직사회가 국민을 얼마나 깔보고 피 같은 세금을 얼마나 방만하게 쓰고 있는가를 그는 고발한 것입니다. 허 씨는 이렇게 해서 연간 예산 320조원 가운데 160조원을 아끼겠다는 겁니다.

그는 1만 원 이상 물품 구입 때 신용카드 사용을 의무화하여 매년 200조원의 탈세를 막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지하경제를 뿌리뽑겠다는 것이죠. 실상 우리나라 지하경제는 늘어나는지 줄어드는지 국민들은 잘 모를 것입니다.

실례를 볼까요. 어떤 건설업자는 1억원을 1만원 권 현찰로 챙겨 가방에 싣고 비행기를 타다가 공항당국이 기록을 남기는 바람에 청와대 비서관과 국세청장의 부패 연결고리가 드러났죠.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1만원 권이 우리 경제 규모에 맞지 않는다고 강변하면서 졸속으로 10만원권 발행을 결정하고 그 도안에 항일 독립투사인 백범 김구 선생의 얼굴을 넣게 되었습니다.

우려대로 10만원권이 보다 간편해진 뇌물로 악용된다면 지하에 잠들어 계신 백범께서 통곡하실 일입니다. 허 후보의 주장이 황당하다고 비난하거나 일소에 부치기 전에 우리나라의 권력형 부패 현황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네티즌들이 허경영을 좋아하는 이유는 정곡을 찌르는 그의 진실함에 있다고 봅니다. 여권에서 반부패국민연대를 만들자고 했었지요. 이명박 당선자는 선거 때 7% 성장, 4만불 국민소득, 7대강국이라는 이른바 747공약을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선진국치고 지하경제 규모가 우리만큼 큰 나라는 없습니다. 바꿔 말하면 지하경제를 줄여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거죠. LG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2002～2003년을 기준으로 GDP 대비 28.8%입니다.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1980년대에는 평균 37%나 됐으나 금융실명제 실시,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투명성 증대 노력으로 낮아져왔답니다.

결국 한국이 7대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려면 지금의 방대한 지하경제로는 어림없다는 점입니다. 역으로 지하경제에 햇볕을 비춰 지상경제로 편입하면 크나큰 성장엔진이 됩니다. 허 후보는 화폐의 변경으로 900조원을 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세계 선진 주요국의 지하경제 비중은 미국(8.4%) 일본(10.8%) 영국(12.2%) 프랑스(14.5%) 등입니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무슨 목적으로 실명제에 도전하는 10만원 권을 찍으시겠다는 건가요?

이명박 당선자는 최근 주요정당 대표와 대선 후보들의 모임을 제의했습니다. 마이너인 허 후보가 이 모임에 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는 총투표의 0.4%인 9만6,756표를 얻었습니다.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 등의 메이저 후보와 텔레비전 토론회에 참여했던 이인제 후보가 0.7%(160,708표) 얻은 데에 비교하면 높은 득표율입니다. 과기처장관을 역임한 정근모 후보의 0.1%(15,380표)와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이러한 득표율은 입으로만 민중을 위하는 정치에 대한 불만과 냉소가 반영된 결과일 것입니다.

허 후보의 공약은 공허하다고 버릴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합니다. 오히려 그 주장의 참 뜻이 무엇인지 깍듯하게 헤아리는 것이 이명박 정부가 국민을 잘 섬기는 방법의 하나라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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