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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스티븐 호킹’을 만나며
이성낙 2017년 11월 21일 (화) 00:04:52

얼마 전 가나아트센터에서 2017년 <JW ART AWARDS, 꿈을 그리다>라는 미술 전시회 겸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JW중외학술복지재단(이사장 이종호 명예회장)이 주최하고 (사)꿈틔움(이사장 이성규)이 주관하는 것으로, 지체가 자유롭지 않은데도 오직 화가의 열정을 불태우며 작품에 몰두한 작가에게 수여하는 특별한 전시회 및 시상식입니다.

시상식과 함께 올해의 입선작을 비롯해 장려상, 우수상, 최우수상 그리고 대상에 선정된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로, 흔치 않아서 더욱 특별한 전시회였습니다. 작품을 감상하며 작가가 겪고 있는 아픔을 찾으려 했다면 크게 실망스러웠을 것입니다. 작품에서 작가들의 그 어떤 정신적 아픔이나 신체의 불편함을 전혀 감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느 전시장의 작품들과 다름없이 그 어떤 어두운 기운도 감돌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상식이 끝나고 작가들이 자기 작품 앞에서 설명하는 모습에서 작품과 작가의 ‘예술적 고리’를 보았습니다. 그중 필자에게 큰 감명을 준 작가는 다름 아닌 전동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이윤정(1973 년생) 화가였습니다.

작가의 작품은 일견 프랑스 인상파의 창시자 클로드 모네의 ‘수련화’를 연상케 했습니다. 그런데 그림 제목이 ‘세연지(洗然池)’인 것을 알고 순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시선(詩仙) 고산 윤선도 선생이 저 먼 보길도에서 은거하며 지낸 곳의 연못을 이곳 서울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우연히 어느 책에서 전남 보길도의 연못 세연지를 보고 좋아하자, 부친이 그 먼 곳에 내려가 사진 찍어온 것을 그림에 옮긴 것이라고 합니다. 딸과 부친의 ‘합작’이라 더욱 밝은 빛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윤정 작가는 심한 뇌성마비로 몸을 가누기가 무척 힘든 데다 얼굴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 시선과 시각이 많이 제한되어 자유롭지 않은 상태인데도 작품을 제작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발가락으로 붓을 잡고 배합된 색채 안료를 캔버스에 옮기면서 그렇게 섬세하게 연잎과 연꽃을 그려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지요.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숙연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건 바로 감동적인 ‘인간 승리’의 한 본보기였습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 단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하나는 JW그룹이 15년 전부터 뇌성지체장애인으로 구성된 홀트장애인합창단 <영혼의 소리로(Voices of the Soul)>를 후원해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노래 가사의 한 소절을 외우는 데 일주일도 더 걸린다는 이들에게 재활 의지를 북돋아주기 위해 노래를 배우게 하고, 음률에 따라 몸을 움직이게 하는 합창단을 후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리 소문도 없이 말입니다.

수년 전 필자는 이종호 명예회장으로부터 ‘영혼의 소리로’ 합창단을 이끌고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열린 <2009년 안톤 브루흐너 국제합창대회(Anton Bruchner Choir Competition and Festival)>에 참가한 일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합창단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마치자 청중 모두가 기립 박수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들은 정말 ‘천사의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간접 체험을 하는 필자도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스토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윤정 화가와 그의 작품을 보는 동안 1990년 한국을 찾은 세계적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와의 만남이 떠오른 것입니다. 당시 우주의 ‘블랙홀’에 대한 얘기가 많이 회자되던 시점에 호킹 박사가 한국을 방문한 터였습니다. 일반 시민을 위한 호킹 박사의 공개강좌에도 능동적으로 참석했고, 기회가 주어져 호킹 박사 일행과 저녁 식사까지 함께 했습니다.

그때 필자는 자연스레 호킹 박사를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필자는 호킹 박사만큼 심한 장애를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박사는 젊은 연구원 시절부터 서서히 진행되기 시작한 근육 신경계의 희귀 질환인 ‘근위축성 측삭경화증(筋萎縮性 側索硬化症,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ALS)’을 앓고 있습니다. 눈동자 굴림, 입 움직임, 숨쉬기, 소화 기능과 손가락 몇 개의 제한적 움직임만이 외견상 ‘정상’일 뿐입니다. 박사는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가누지 못해 식사할 때면 조수가 먼저 한 팔로 얼굴을 바로 세우고, 다른 한 손으로 음식을 박사의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힘들어하며 식사하는 동안 두 조수가 번갈아 그 동작을 반복했습니다.

호킹 박사가 눈짓으로 김치를 달라고 했는지 조수는 김치를 자꾸 그의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육류나 다른 반찬보다 그렇게 김치를 계속 먹었습니다. 필자는 좀 걱정이 되어 너무 맵지 않으냐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박사는 싱긋 웃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컴퓨터 스피커로 “Some like it hot”이라고 답했습니다. 참으로 유머 넘치는 순발력이었습니다.

호킹 박사를 만나고 귀갓길에 1990년 그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며 ‘만일 호킹 박사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이란 질문을 던지고 또 던졌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벽이 높아도 너무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자신의 장애를 딛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한 화가를 보며 스티븐 호킹 박사를 만나서 던졌던 질문을 되풀이하게 됩니다. 참으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참고로 1959년대 빌리 와일더가 감독하고 마릴린 먼로, 토니 커티스와 잭 레몬이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 <Some Like It Hot>이 국내에서는 <뜨거운 것이 좋아>로 소개되고, 호킹 박사가 하고 싶은 말은 PC 모니터에서 한 낱말 한 낱말 찾아 문장을 조성하고 엔터(Enter) 키를 누르면 스피커에서 합성된 언어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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