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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병 뱃속의 기생충과 옥수수
김홍묵 2017년 11월 28일 (화) 00:01:47

김장철입니다. 한 열흘 전 집사람과 동생들이 모여 공동으로 김치를 담그는 일에 동원되어 이틀간 곤욕을 치렀습니다. 밭의 배추와 무를 뽑아 나르고, 겉잎을 쳐내고, 칼로 쪼개 밤새 소금물에 절이고, 절인 배추를 건져 물기를 빼고, 무를 채 썰어 갖은 양념과 젓갈에 버무리고, 배추에 속을 넣어 김치 통에 담는 과정은 분업과 협업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난생 처음이라 간 맞추고 맛내는 일에은 범접도 못 하고, 무거운 것들을 들어 옮겨 주는 일만 했더니 허리가 뻐근했습니다. 하지만 얼갈이김치를 안주 삼아 마시는 막걸리는 꿀맛이었습니다. 이 맛에 정성을 다해 김치를 담그는구나 싶어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김장일 경험을 하면서 배추가 맛있는 김치가 되려면 다섯 번을 죽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밭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칼질로 반 토막 나면서 두 번 죽고 △소금물에 절어 세 번 죽고 △속속들이 양념을 발라 독에 넣을 때 네 번 죽고 △김칫독을 땅속에 파묻을 때 다섯 번째 죽는다고 합니다.
수백 년을 되풀이해온 일이지만 배추의 운명과 인간의 지혜가 잘 어울려야 맛있는 김치가 탄생하고, 맛 나는 세상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김치가 숨도 죽기 전에 정치권에선 사람 죽이는 말 폭탄이 연달아 터져 영하의 추위 이상으로 가슴을 썰렁하게 휘몰아쳤습니다. 총상으로 의식을 완전히 잃은 북한 귀순병을 가까스로 살려놓은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상센터장, 김관진 전 국방장관을 구속적부심에서 풀어 준 재판장 신광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김 장관 석방을 “다행”이라고 한 송영무 국방장관에 대한 공박이 그것들입니다. 특히 정치권은 신 부장판사를 “우병우와 TK 동향, 연수원 동기로 같은 성향”(송영길 의원) “적폐 판사”(안민석 의원)라고 공격했습니다. SNS에선 '재선충' ‘처단’을 외치는 매도와 청와대 사이트를 향한 ‘법원 개혁’ 청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왜 법을 만드는지, 법은 누가 집행하는지, 정치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떼거리 지어 떼를 쓰면 떼법이 만들어지고, 떼쟁이들이 떼창하면 제도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인지, 까고 까서 속까지 다 파내 먹을 양파가 없어지면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는 건지…. 쉬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사경의 환자를 살려낸 의사를 이념적 잣대로 비판한 어느 국회의원의 발언입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지난 13일 귀순한 북한 병사의 수술 경과와 정황을 설명한 이국종 센터장의 브리핑 내용을 두고 ‘인격 테러’라고 페이스북을 통해 비난했습니다.

귀순병의 몸 안에서 수십 마리의 기생충이 나오고, 위에서 옥수수가 적출됐다는 사실을 공개한 브리핑 내용 때문에 북한군 추격자로부터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부정당한 귀순병이 또다시 인격의 테러를 당했다는 요지입니다.
김 의원은 이어 “이런 환자는 처음”이란 의사의 말을 그대로 보도한 매체들을 향해 “우리 언론은 귀순 병사에게 총격을 가한 북한 추격조와 똑같은 짓을 한 것”이라며 “우리가 북한보다 나은 게 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뒤늦게 사과를 했지만 그의 사과에 진심이 담겼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국종 센터장이 공개한 내용은 온 국민의 이목이 쏠려 있는 귀순병의 생사 여부와 함께 탈출 동기, 북한군의 식량 사정, 북한 인민의 위생 건강 상태를 가늠하게 하는 살아있는 중요한 첩보라는 전문가의 분석이 타당성 있어 보입니다.
차라리 군병원이 있는데 왜 민간병원으로 후송했는가, 외상센터 헬기도 있는데 왜 미군 헬기를 요청했는가 등을 따지는 게 정치인이 할 도리가 아닐까요?
열악한 의료진과 장비 시설의 우리 군병원을 탓하기 전에 유명한 미국의 월터 리드 육군병원 현황을 보면 우리가 취해야 할 길도 보일 것입니다.

워싱턴 DC에 있는 월터 리드 육군병원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기관 중 하나입니다. 1909년 설립된 이 병원은 병리학자·세균학자이자 군의관으로 혁혁한 공을 세운 월터 리드(Walter Reed 1851~1902)의 업적을 기려 이름 지은 곳입니다. 1·2차 세계대전에 이어 한국전, 월남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등의 부상자를 평생 치료하고 재활을 돕고 있습니다.
의사 800여 명, 직원 3,500여 명 규모의 육군병원은 20개 진료과목 외에 전문가 50여 명이 10억 원대 첨단 재활기기를 운용하는 재활센터와 화상센터,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18세에 의학박사 학위를 딴 리드는 19세기 수많은 사람을 죽인 황열병(yellow fever)이 모기에 의해 감염된다는 사실을 규명한 학자입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묻혀 있다가 미국이 프랑스로부터 파나마운하 건설권을 사들인 뒤 빛을 보았습니다. 건설 인부 1,000명당 167명이 황열병으로 사망하자 잊혀진 리드의 처방으로 1907년 황열병도 퇴치하고 운하도 개통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2년 뒤 월터 리드의 이름을 따 세워진 이 병원엔 트루먼·아이젠하워·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처칠 영국 총리, 팔레비 이란 국왕, 후세인 요르단 국왕이 치료받은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우리나라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리드가 쿠바 전선에 근무할 때 종군의사로 참전한 서재필 박사(徐載弼 1864~1951)가 그의 밑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인연이 있습니다. 또한 196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 박사(趙炳玉 1894~1960)가 이승만과 대적하여 선거운동을 벌이던 중 급환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애석하게도 타계한 곳이 이 병원입니다.
조 박사는 선거 기간에 대여투쟁을 더 강경하게 해야 한다는 야당 인사들의 요구에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지 않으냐”고 응수해 이 말이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큰 정치가다운 금도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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