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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은 ‘다음’에 나온다!
정숭호 2017년 12월 27일 (수) 00:04:25

올 한 해 소설을 꽤 읽었습니다. 시간은 많고, 해야 할 일은 별로 없고…, 그래서 제목만 들어서 알 뿐, 바쁘다는 핑계로 읽지는 않은 소설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렇게 읽은 소설  가운데 작가가 “사실은 이게 나의 대표작이오”라고 콕 집어 언급했거나 그 비슷한 말을 남긴 작품이 꽤 있었습니다. 대표작으로 알려진 작품이 아닌 작품을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은 작가들이 여럿 있더라는 거지요.

빅토르 위고(1802~1885)가 대표적입니다. 위고는 1869년 작 ‘웃는 남자’ 출판 3개월 전에 “사실 저는 ‘웃는 남자’보다 더 나은 작품을 쓰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영국 최고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정쟁의 희생양으로 인신매매단에게 납치돼 언제나 웃고 있어야 하는 얼굴로 성형수술을 받고는 광대로 살다가 귀족 지위를 회복했지만 모략과 중상, 수탈과 착취, 애욕과 허영, 시기와 질투 따위의 악덕으로 이뤄진 귀족적 삶을 거부하고 불쌍히 죽어간 한 사나이의 삶을 담은 이 작품.
읽으면서 깊은 재미와 함께 뼛속 깊이 파고드는 날카로운 비유와 교훈에 찬탄을 거듭하긴 했는데,  작가가 이 작품을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노트르담의 꼽추(1831)’나 ‘레미제라블(1862)’ 보다 더 나은 작품이라고 말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위고가 이런 말을 한 건 이 소설을 더 팔아보려는 홍보를 위해서가 아닐까, 의심도 슬쩍 들었습니다. 그가 어떤 작품을 써놓고는 많이 팔렸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출판사에 ‘?’ 하나만 달랑 써보내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어서입니다. 출판사는 답장에 ‘!’ 하나만 찍어서 보냈다고 하지요. ‘많이 나가고 있다!’를 줄인 거랍니다.) 

소설은 물론 영화로도 많은 이에게 충격을 줬다는 ‘롤리타(1955)’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899~1977)도 자기 작품 가운데 자전적 소설인 ‘재능(1938)’을 가장 좋아한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이 작품은 러시아어로 글을 쓰다가 1940년 미국으로 이주한 후, 영어 소설로도 대가가 된 그의 마지막 러시아어 소설입니다. 러시아적 대자연과 정취, 고아(高雅)한 품격과 수준 높은 지성 속에서 성장한 한 청년의 모습을 그린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대문호’로 꼽히는 선배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와 투르게네프를 수준 낮다고 비판한 나보코프의 그 건방진 듯한, 그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존감의 원천을 짐작하게 됐습니다.

밀란 쿤데라(1929~ )는 좀 묘한 방법으로 자신의 대표작을 알렸습니다. 그는 1990년에 낸 ‘불멸’의 후반에 자신을 등장시키고는 작중 다른 인물에게 “이 소설(불멸)의 제목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했어야 했다”고 말합니다. 1982년에 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힌 지 이미 여러 해인데, 새로 쓴 소설에 그 제목을 붙이고 싶다고 한 것은 대표작을 바꿔달라는 것이지 싶습니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지만 구성이 너무 복잡해 어설프게 내용을 소개하느니 이 작품에 대해 전작들보다 ‘성찰과 철학적 농도가 깊어졌다’고 평가한 서평 한 구절을  전해드리렵니다.

‘두 도시 이야기’,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럴’, ‘위대한 유산’, ‘황폐한 집’ 등 숱한 대작을 남긴 찰스 디킨스(1812~1870)는 1844년에 연재가 끝난 ‘마틴 치즐위트의 모험’이라는 연작 소설을 자신의 최고 작품이라고 말했다는데 정작 그의 작품 중 인기가 가장 낮은 작품이 이 소설이라고 합니다.

문학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작가 자신이 꼽은 대표작과 독자가 꼽은 대표작이 다른 경우가 있더군요.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등의 '대표작'으로 진화론을 설파하는 데 앞장서온 리처드 도킨스(1941~ )는 얼마 전 우리나라의 한 생물학자와 대담을 하다가 “선생의 대표작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내 나름 대표작으로 생각한 책이 있는데 독자들은 눈길조차 안 줬습니다”라는 식으로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책을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많은 베스트셀러를 써낸 대담자 역시 “저도 제 대표작이 전혀 안 팔린 경험이 있습니다”고 맞장구를 쳤더군요. (제목을 알면 한 권 사보았을 텐데….)

오늘 ‘대표작’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은 건 연말을 맞아 ‘올 한 해를 나는 어떻게 보냈나’ 생각하게 된 게 이유인 것 같습니다. ‘잘한 건 무엇이고 아쉬운 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는 건 ‘무엇이 올해 나의 대표작이며, 무엇이 나의 최졸작인가’를 스스로 더듬어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내 결론은 ‘내가 무슨 대표작이 있기나 하겠어’라는 것이었고, 그 생각이 ‘다른 이들은 자기의 대표작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나’라는 것으로 번진 것이지요. 설령 내가 대표작을 꼽은들 다른 이들이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고요.

대표작은  언제나 ‘다음’에 나온다는 천양희 시인(1942~ )의 시 한 편을 옮깁니다.  ‘다음’이 제목입니다.

어떤 계절을 좋아하나요? 다음 계절 / 당신의 대표작은요? 다음 작품
누가 누구에게 던진 질문인지 생각나지 않지만 / 봉인된 책처럼 입이 다물어졌다
나는 왜 다음 생각을 못했을까
이 다음에 누가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 나도 똑같은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시인인 것이 무거워서 / 종종 다음 역을 지나친다

올해 대표작을 못 만든 분들, 내년에는 만드실 줄 믿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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