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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하는 것이 싫습니다
신현덕 2018년 02월 12일 (월) 00:01:51

이발소 문을 들어설 때 왠지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머리를 깎는 것이 참 싫기 때문입니다. ‘신체와 털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감히 훼손할 수 없다’(孝經)며 단발령을 거부하던 조선 말기 양반들과 같은 이유는 아닙니다. 싫은 이유를 꼭 집어서 무엇이라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어떤 트라우마 때문도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 어렸을 적 동네 이발소에 갔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던 기억 때문일 가능성은 있습니다.

제가 자란 충청도 시골 마을 이발소의 기계는 오래된 것이었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한 손으로 작동하는 날씬한 이발 기계(바리깡)가 아니었습니다. 민속촌에서도 찾기 힘들 것 같은, 자루가 나무로 되어 있고, 두 손을 동시에 움직여 머리를 자르는 아주 구식이었습니다. 그것조차도 이가 빠졌습니다. 이발사가 아주 조심조심했지만 종종 머리칼이 끼었습니다. “아얏!” 하고 소리를 지르면, 이발사가 기계를 살살 빼냈습니다. 그때마다 머리칼이 뽑혔습니다. 생 머리칼이 뽑히는 아픔에 눈물을 찔끔찔끔 흘렸지요.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면도칼은 숫돌에 갈아서 날을 세웠습니다. 미세하지만 날이 빠져 자주 피부가 긁히곤 했습니다. 뜨끔하고 느낄 때는 칼날에 벤 것입니다. 이발사는 면도날에 묻힌 비누거품을 닦아내던 신문지 조각을 작게 찢어서 그곳에 붙였습니다. 기계독이 옮아 고생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머리를 깎고 나면, 아이들은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톱밥 난로 위의 더운물로 머리를 감는 어른들이 부러웠습니다. 쇠죽 쑤는 가마솥에 대야를 넣어 데운 물로 머리를 감았습니다. 그때까지 족히 두세 시간은 전전긍긍(戰戰兢兢)이었습니다. 아무리 조심해도 머리칼이 내의 속으로 들어가 간질간질했습니다. 옷을 벗어 털어도 2~3일은 하나둘씩 남아 따끔따끔하게 살갗을 찔렀습니다. 그게 아주 싫었습니다.

서독에서 공부하는 2년 넘는 기간, 이발소에 한 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이발요금이 학교 식당 한 끼 식사비의 10배나 된다고 핑계를 댔습니다. 실제로는 예약하고, 기다리고, 성의 없는 가위질이 못마땅했습니다. 경험이 전혀 없던 아내가 가위를 들었습니다. 정말 엉터리였습니다. 당시 서울에서 인기몰이를 했던 텔레비전의 한 연속극 주인공인 호섭이의 머리를 닮았다고 놀림도 받았습니다. 몽골에서는 이발소에 가기가 더 싫었습니다. 이발소마다 공산국가의 특징인 번호가 매겨져 있었습니다. 제1호, 제2호 등등. 이 번호가 공동묘지의 묘지 번호를 연상케 했습니다. 당연히 싫었습니다. 요금이 일반 이발소보다 훨씬 비싼 외교관 이발소를 이용했습니다. 그곳만 유일하게 번호가 없었습니다. 중국에서도 핑계만 있으면 이발소에 가지 않았습니다. 누가 제 머리가 길다고 말하면, 그가 다니는 이발소에 함께 갔습니다. 머리 모양을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전형적인 동그란 중국 스타일이거나, 펑크에 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펑크는 서독에 있을 때 극우청년들이 하던 머리 모양에 가까워 역시 싫었습니다.

지금도 이발소에 갈 때가 되면 아내로부터 여러 차례 경고 아닌 경고를 받습니다. 보기 싫다는 말로는 꿈적도 않으니, 요즘에는 상노인 같다고 말합니다. 아직 노인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걸 아는 아내의 비틀린 말을 듣고서야 겨우 머리 자를 생각을 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이상한 것이, 장발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대학 때 흔히 반항의 표시로 한 번쯤 장발을 할 만도 했었는데 싫었습니다. 비듬 가려움 그리고 냄새까지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규정보다 머리가 길어 강제로 깎인 적은 있습니다. 군 복무 기간이 반년쯤 남았을 때였을 겁니다. 당시 용산 육군본부 정문에서 장발로 지적을 받았습니다. 곧바로 근처에 있던 이발소로 갔습니다. 이발사가 가능하면 길게 깎아 달라는 저의 주문을 성실하게 지켰습니다. 거울을 보니 참 멋있는 장교였습니다. 당당하게 정문에 갔는데 불합격이었습니다. 이발사가 "그 정도면 괜찮을 텐데”라며 손질했습니다. 이러기를 3번 만에 겨우 통과했습니다.

미용실에도 몇 번 가봤습니다. 거기는 더 싫습니다. 머리 모양은 어떻게 평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머리 감는 것이 걱정됩니다. 이발소에서는 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감는데 미용실에서는 반대입니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앞쪽에서 뒤로 물을 뿌리며 감깁니다. 방송사 코디가 권유하여 10여 년 전쯤 그의 미용실에 갔습니다. 첫 번째였습니다. 거기서 귀에 물이 들어갔습니다. 그 뒤로는 주로 이발소만 다녔습니다.

지금 다니는 이발소는 처가 가까이 있습니다. 그곳은 그나마 마음이 편해 부담 없이 찾아갔었습니다. 최근 이발소를 옮길 이유가 생겼습니다. 지난 몇 년간, 매주 일요일 장모를 모시고 식사를 했고, 한 달에 한 번 근처의 이발소에 갔었습니다. 장모께서 요양병원에 장기 입원을 하셨습니다. 마음이 편안한 이발소를 새로 물색해야 하는데 쉽지 않아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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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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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99.XXX.XXX.160)
ㅎ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사실 자기 맘에 드는 미용실 이발소 찾기 어렵습니다. 전 젊어서 일 할 때 시간이 없어서 아니 머리에 쓰는 시간이 아까워 항상 생머리 묶고 다녔는데 지금도 묶고 다닙니다. 물론 머리를 제가 자르고요. 말씀처럼 옷 속에 머리 카락 하나만 들어가도 못 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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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2 13: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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