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짖지 않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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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 짖지 않는 나라

김홍묵

2006년 09월 11일 (월) 00:00:00

“요즘 북한의 개는 짖는 일이 없단다.”
“왜 그런데?”
“생각해 보라고. 사람 먹을 것이 없는데 개가 뭘 먹고 짖을 힘이 있겠나?”
한중 수교 직후 중국 연길(延吉)에 공장을 지어놓고 자주 드나들던 한 기업인의 말이 생각 나 쓴 웃음을 지어봅니다.

웬 뜬금없는 개소리냐구요? 연일 신문과 방송 뉴스에 개를 주제로 한 은유가 끊이질 않으니 개 타령이 나올 수밖에 없지요. 분명 사람을 두고 한 말인데 지위의 상하 구별 없이 개에 비유되는 세태이고 보니 허망하고 짜증스럽기도 합니다.

바다 속처럼 오리무중인 ‘바다이야기’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해진 판에 ‘도둑을 맞으려니 개도 안 짖더라’ 한 대통령의 푸념이 개 이야기의 발단이 아닌가 합니다. 전국이 도박나라가 되어 숱한 서민이 바다에서 바닥의 나락(奈落)으로 떨어져 신음하고 있는데도 짖는(보고, 경고)부하나 기관이 없었다니 참으로 한심스럽고 개탄할 일입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개에 얽힌 실화 한 토막을 소개할까 합니다. 친일 개화파로 몰리던 김윤식이 죽자 박영효 등 동지들이 사회장으로 장사를 치르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나라를 망하게 한 자를 어떻게 사회장으로 치르느냐는 반대여론이 비등했고 어떤 이는 김윤식을 개 같은 놈이라고 극언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논란을 듣고 있던 월남 이상재(月南李商在) 선생이 “그래도 대접을 한 셈이지” 라고 한 마디 했습니다. “아니 개라고 한 것이 대접해서 한 말이요?” 장례위원들이 놀라 질문했지만 월남은 태연히 “그래도 개는 주인을 알아보거든” 하고 덧붙였다는 것입니다.

개는 가장 먼저 사람에게 순치(馴致)되어 사람과 제일 친근해진 동물입니다. 오늘날 서양 사람들은 유럽에서 가장 신장된 권리로 견권(犬權)을 꼽고 있습니다. 불과 백 년 전만 하더라도 개에게 입마개를 씌우지 않으면 경찰이 그 주인을 잡아갔지만, 이제는 거꾸로 개에게 입마개를 씌웠다가는 처벌을 받습니다. 동물학대죄 때문입니다.

세계 각국의 개와 관련된 속담도 개의 유용성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 보다 은혜를 아는 개가 더 낫다.’(페르샤)
‘집의 개가 멀리 떨어진 친척보다 낫다.’(페루)
‘개는 나의 친구, 아내는 나의 적, 아들은 나의 주인.’(영국)
‘개는 자기 형제의 귀를 물지 않는다.’(이집트)

모두 충성스럽고 의리를 지키는 개의 아름다운 습성을 기린 말입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 주변에서는 개의 나쁜 습성을 빗대는 일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개를 따라가면 측간으로 간다.’
‘개와 친하면 옷에 흙칠한다.’
‘못된 강아지 보리 멍석만 골라 똥 싼다.’ 따위의 속담에서부터 개도령, 개구멍 서방, 개망초 등 접두어로 붙여 개를 개 취급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인간성을 양분하는 잣대로 자주 등장하는 개를 두고 아프리카의 피그미 족은 ‘한 해만 있어도 개는 주인을 닮는다’고 합니다. 짖을 때 짖지 않고 양 떼를 물어 죽이거나 주인의 그릇된 말도 무조건 좇는 주구(走狗)라면 개 나무라듯 하지만 말고 구팽(狗烹)하는 편이 동네 사람들에게 득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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