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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신세가 된 보잉 747
김수종 2018년 02월 21일 (수) 00:02:21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익숙하던 물건이 사라지는 것은 섭섭한 일입니다. 특정 물건 하나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제품이 단종(斷種)된다는 것은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에 아련한 상실감을 줍니다.

점보제트 보잉 747기의 퇴장이 그럴 것 같습니다. 몇 년 전부터 보잉사가 747기를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더니 세계의 항공사들이 이 모델의 운항을 중단하고 있습니다.

항공 교통이 가장 발달했고 보잉항공사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지난 1월 4일 747 여객기의 국내선 운항이 멈췄습니다. 이날 델타항공이 애틀랜타 국제공항에서 마지막 747 여객기를 이륙시켰습니다. 3시간 반 후 이 비행기는 애리조나 사막에 있는 ‘파이널 에어파크’ 활주로에 착륙했습니다. 여기가 바로 ‘비행기 공동묘지’란 별명이 붙은 항공기 폐기장입니다. 그날 마지막 비행을 한 747기에는 항공사 관계자와 기자들만 타고 있었다고 합니다. 747 시대의 고별식이었나 봅니다.

보잉이 지난 50년 동안 생산한 747기는 1,500대가 넘고, 그중 약 500대가 루프트한자, 대한항공 등 세계 유수 항공사의 로고를 달고 아직 세계의 하늘을 날아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종은 급속히 사라지거나 화물기로 개조되어 비행기 여행자에겐 낯설어질 것입니다. 지금은 ‘747’이란 세 자리 숫자만으로도 점보기를 연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2030년쯤에는 무슨 암호 코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종종 가는 편인데 공항 계류장에 노상 보이던 한두 대의 747기를 이제 쉽게 볼 수 없습니다. 한국 항공사들도 747 철수를 준비하는 모양입니다.

1970년 팬암 항공사가 747기를 처음 구입하여 뉴욕-런던 간 대서양 항로 운항에 처음 투입했을 때, 이 항공기는 ‘하늘의 여왕’이란 칭송을 받으며 군림했습니다. 미소 냉전이 한창 진행되던 당시 팬암 사장은 “보잉747은 평화의 대륙간탄도탄(ICBM)”이라고 흥분했습니다. 종전 비행기와는 비교할 수 없게 크기, 속도, 항속거리, 안전성이 뛰어난 대형 비행기가 파괴의 핵무기가 아니라 400명 이상의 사람을 대륙을 건너 실어 날랐기에 붙여진 것입니다.

1972년 한국 유일의 항공사였던 대한항공이 보잉 747기를 도입하여 김포-LA 항로에 투입했습니다. 그 후 대한항공의 성장은 747기의 보유 대수로 평가될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당시 조중훈 대한항공 CEO가 음력 초하루와 보름마다 여명에 돼지 머리를 올린 고사 상을 거대한 747점보기 앞에 차려놓고 절을 했던 일화는 유명합니다.

2017년까지 747기가 추락하거나 충돌해서 기체가 파괴되고 인명피해를 낸 항공 사고는 61건으로 승객과 승무원 3,722명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747은 한국인들에게도 한많은 기종입니다.  1883년 소련 전투기에 의해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되어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한  KAL 007편이 747이었습니다. 또 1997년 228명이 사망한 대한항공 괌 추락 사고 비행기도  747이었습니다. 

보잉 747은 세계로 진출하는 한국인들을 참 많이 실어 날랐습니다. 동체가 큰 데다 앞 부분이 2층 구조여서 혹등고래 같은 747의 모습을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실내 가로 좌석이 10개가 되는 넓은 객실은 밀폐된 비행기 안에서 여유를 느끼게 합니다. 고공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양쪽 날개에 달린 4발 엔진은 쌍발 엔진 비행기보다는 훨씬 심리적 안정감을 줍니다.

20세기 후반 그렇게 각광받던 747이 21세기 들어 퇴장하게 되는 이유는 알고 보면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과거 한꺼번에 대규모 승객을 실어 나를 수 있는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던 항공 수송 시대가 저물었다는 겁니다. 항공 시장은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20세기 거점(Hub)공항 연결시대에서 도시와 도시를 직항으로 촘촘히 연결하는 시대로 급속히 바뀌고 있습니다. 따라서 항공사들이 중소형 항공기를 선호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50년 전 처음 나왔을 때에 비해 보잉 747은 훨씬 기술적으로 진보했고 소재도 첨단화했습니다. 그러나 4발 엔진이어서 연료소모가 많고, 또 한꺼번에 사오백 명의 항공 수요자를 모으는 것이 비효율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항속거리도 길고 연료 효율이 좋은 보잉 777같은 쌍발비행기가 더욱 항공사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겁니다.

보잉사와 경쟁하는 에어버스는 2000년 747에 대항하기 위해 A380 제작에 들어가서 2007년부터 항공사 노선에 투입했습니다. 완전한 2층 구조에 4발 엔진을 장착한 A380은 최대 850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초대형 여객기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항공사들이 중소형 비행기를 선호하면서 너무 큰 A380 구입을 꺼린다는 겁니다. 이 비행기는 연간 6대의 주문을 받아야 계속 생산이 가능한데 작년 주문을 받지 못해 생산 중단 위기에 빠졌다가 가까스로 아랍에미리트 항공과 협상을 통해 36대 주문을 받아 단종의 위기를 피했지만 장래가 밝지는 않다고 합니다.

현대 항공우주공학의 총아로 칭송받던 보잉 747이나 A380이 공룡의 신세로 내몰리는 것을 보며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떠올려 봅니다. “크고 강한 자가 아니라 적응을 잘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이 민간항공 분야에서 적용되는 것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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