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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기념관에서 만난 격 높은 제스처 ‘Pardon’
이성낙 2018년 02월 27일 (화) 00:02:51

지금보다 반세기 이상 앞선 1960년대의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독일로 파견된 광부들이 독일 땅을 밟은 지 반년이 지났을 무렵, 필자는 탄광지역인 ‘루르(Ruhr)’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지역의 한 마을에는 파독 광부들이 몇몇 집에서 ‘삼삼오오’ 분산되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광부들과 집주인들 간에 집단적인 갈등이 생겨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필자가 방문하자, 양측이 필자에게 도움을 청하며 중재를 부탁했습니다. 필자가 양측이 불편해하는 사항을 들어보니 그들의 대표적인 불만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광부들은 이른 아침 ‘출근’할 때면 ‘하숙집 주인’이 갱(坑) 안에서 먹을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싸서 주는데, 가끔 누룽지 같은 것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면 인격모독을 당하는 것 같아 심기가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필자가 독일 빵은 양쪽 끝부분을 <der Knust>라 하는데 가장 맛있기 때문에 필자도 친구들과 함께 식빵을 칼로 자를라치면 서로 그 부분을 “자기 몫”으로 차지하려고 경쟁한다며 결코 담배꽁초처럼 버리거나 맛이 없는 부위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오해가 풀렸습니다.

그런데 독일 측 불평사항이 필자에게는 흥미로웠습니다. 그들은 한국을 비롯한 동양 사람들이 친절하고 예의 바르다고 알고 있는데, 한국인 광부들에게선 도대체 “고맙다(Danke schoen)”는 말을 들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한국인들은 “부탁합니다(Bitte,)”, 또는 “미안합니다(Entschuldigung, Pardon)”라는 말도 전혀 하지 않는다며 광부들이 ‘거칠고’ ‘무례’해서 고깝다는 느낌마저 들고 그래서 아주 불편하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에 필자가 우리 정서에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란 말이 있다. 한국인은 고맙다는 표현을 어색해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 덧붙여 필자는 한국인이 “여기서 담배를 피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표현한다면 거기에는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우리 어법에서는 서양 언어처럼 ‘Dank’, ‘Bitte’, 또는 ‘Pardon’ 같은 말을 따로 쓰지 않는다.”라며, 언어의 관습 차이가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랬더니 독일 집주인들은 오히려 자기들의 행동이 사려 깊지 못했다며 부끄러워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필자는 독일에서 한국인들끼리 모이면 서양 문화권에서 적응하고 살려면 ‘Danke schoen’, ‘Bitte schoen’, ‘Pardon’이란 표현을 증기기관차가 ‘칙칙 폭폭, 칙칙 폭폭…’ 소리 내듯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고 일러 준다 했습니다. 그러자, 독일인들이 환하게 웃으며 부질없이 오해하였다며 쑥스러워하였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註解: 당시에는 증기기관차가 심심치 않게 운행하던 시대라 그런 비유가 가능했습니다.)

필자에게 그렇게도 익숙한 낱말 ‘Pardon’이 아주 다른 의미가 있는 줄을 몰라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 L.A. 근교에 있는 미국 37대 대통령인 닉슨(Richard Nixon, 1913~1994, 재임: 1969~1974) 대통령의 기념관(Presidential Library and Museum)을 찾아갔을 때의 일입니다. 기념관을 둘러보며 그의 성장과정과 정치계 입문과정, 정치인으로서 ‘길 닦음’ 과정, 대통령 당선 전후의 모습, 대통령으로서 이룩한 ‘죽(竹)의 장막(Bamboo Curtain)’을 ‘핑퐁외교’를 통해 뛰어넘었던 외교적 쾌거,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 총리와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 주석을 만나며 나눈 일화들을 생생하게 전해 주는 시청각자료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닉슨 대통령이 어떻게 ‘워터게이트(Watergate scandal)’에 얽혔는지를 소상하게 설명하는 자료도 있었습니다. 당시 사용하였던 증거자료로 소형 녹음기까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필자에게는 닉슨기념관의 마지막 부분이 드라마틱하였습니다. 닉슨 대통령이 탄핵에 몰려서 백악관을 떠날 때, 백악관 스태프들의 따듯한 환송을 받으며 대통령 내외가 전용 헬리콥터에 오르던 모습, 대통령 전용기로 그의 고향 L.A.공항까지 ‘끝까지 예를 다하여 모시는 모습’과 그의 서거에 즈음하여 역대 대통령이 함께 자리하여 애도의 뜻을 표하는 장면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필자에게는 그것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실은 그것이 당연지사인데도 필자에게 왠지 생소하게까지 느껴지는 구석이 있었던 것은 우리 사회의 일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씁쓸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탄핵된 대통령을 그렇게도 격식을 갖춰 환송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며 닉슨 대통령의 퇴임과정을 설명하는 세션으로 돌아가 다시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거기서 필자가 놓쳤던 작은 사진에 붙은 설명 가운데 ‘Pardon’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것은 “Granting Pardon To Richard Nixon(리차드 닉슨의 사면을 승인하다.)”이라는 공문내용이었습니다. (사진자료). 미합중국의회에서 탄핵과정이 진행되는 막바지에 닉슨 대통령이 스스로 하야(下野)하자 부통령으로 대통령직을 넘겨받은 38대 포드(Gerald Ford, jr., 1913~2006, 재임: 1974~1977) 대통령이 자신의 첫 행정조치로 전임 대통령인 닉슨을 직권으로 사면(赦免) 즉 ‘Pardon’하였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격 높은 정치적 제스처를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Pardon’이라는 말이 품은 큰 뜻을 반추하고 다시 반추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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