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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강발과 특별자치도
김양수 2008년 01월 17일 (목) 00:32:19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로 시정거리 100m도 안 되는 박무현상에 제주 섬 전체가 자욱한 안개에 묻히면서 겨울 속에 눅눅함까지 가장한 봄 같은 날의 일입니다. 관광을 겸한 세미나 일정을 마친 지인 두 분이 공항에서 다급한 기별을 해 왔습니다. 느닷없는 기상변화로 항공기 이ㆍ착륙이 끊기면서 막막하기만 한 것이 갑자기 무인도에 표류한 것 같은 당혹감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영상 2~3도의 겨울 날씨가 12도까지 올라가면서 눈이 되지 못한 미립자들이 수승화강(水乘火降)의 섭리를 타고 안개비 되어 흩뿌리는 공항에는 섬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로 북새통이었습니다. 두 분은 사지에서 헤어 나온 사람들처럼 비장한 모습으로 나를 맞았고 두 분의 열패감과는 상관없이 느닷없는 상황이 아니고는 접할 수 없는 정감을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비행기가 정상 운항되려면 안개가 걷혀야 하고, 불가피하게 하룻밤을 더 머물러야 한다는 걸 인지한 두 분은 포기한 듯 여벌로 남은 시간은 나에게 맡긴다는 의중이었습니다. 나는 두 사람이 일정대로 떠나지 못한 아쉬움이 얼마나 클까, 어긋난 일정에 대한 낭패는 또 얼마나 안타까울까 하는 생각에 마치 내 잘못인 양 미안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안개비 자욱하게 흩뿌리는 공항 부근의 배경은 낭만을 넘어 서로의 간극을 가름할 수 없는 환상적인 정경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장 이 섬을 떠날 수 없다는 사람들의 시각으로는 무심한 안개비가 짜증의 대상일 뿐인 것 같아서 더없이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제때 떠나지 못해 발 묶인 관광객들의 안절부절은 아랑곳하지 않고 온 세상을 잿빛으로 덮어가는 안개비를 헤치고 톨게이트를 빠져 나오면서 사실 나는 두 분이 남는 시간을 소진해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으로 다음 일정에 부담을 느껴야 했습니다. 섬에 갇힌 것과 같은 그들의 답답한 심사를 무엇으로든 보상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었습니다.

다소 출출하기는 하지만 저녁시간이 어중간하다는 말을 듣고는 다짜고짜로 이곳 사람들이 즐겨 찾는 허름한 식당으로 차를 돌렸습니다. 날씨 분위기도 그러려니와 추적이며 젖고 젖어 드는 안개비로 잔뜩 웅크러들 수밖에 없는 우울함을 달래기에는 그나마 소주가 제격이라는 배려라면 배려라는 심사에섭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시내 중심이면서도 관광지로 알려진 삼성혈과 자연사 박물관이 있는 이른바 국수거리라 불리는 한적한 도로변이었습니다. 긴 말이 뭐 필요하냐는 우격다짐 식으로 아강발(돼지 족발의 맨 끝 부분) 한 접시에 고기국수를 주문하자 마침내 모든 상황을 인식한 지인이 이곳 소주 맛이 일품이라면서 주문을 거들었습니다.

아강발이라는 생소함을 무릅쓰고 젓가락으로 뒤척이다가 술안주로 몇 차례 맛을 보더니 뭐 이런 안주가 다 있냐면서 계속 입맛을 다시는 거였습니다. 추가로 한 접시를 더 내고서야 수 차례 방문을 해 봤지만 처음 먹거리다운 맛을 접한다면서 "이야말로 특별자치도의 특별한 맛이다” “항공기 결항 덕이다”하는 너스레가 정겨웠습니다.

아강발의 독특함과 고기국수의 감칠맛, 소주의 싸아한 맛에 유리창 넘어 질정할 수 없는 안개비가 쓸려갔다 쓸려드는 사이 난상담소는 좌충우돌 무한질주를 계속했습니다. 취기도 취기려니와 콜라겐 덩어리 아강발에 흑돼지 고기국수가 촉발하는 말 나눔 끝에는 이 먹거리야말로 특별자치도의 브랜드여야 한다는 주장이 서슴없었습니다.

흔히 회, 고등어 갈치조림, 자리돔 등 바닷고기만이 제주도의 맛으로 알려졌고 그나마 제주도 흑돼지라는 소문은 나 있지만 처음 맛보는 아강발 예찬에 침이 마르는 거였습니다.

특별자치도와 국제자유도시가 되려면 가장 제주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걸 누차 강조하면서 안개비를 흠뻑 맞고도 즐겁던 그들의 모습이 새삼스럽기만 합니다.

무늬만이 아닌 실체가 특별자치도가 되려면 제주에만 있는 특별한 무언가를 찾아 그것을 세계에 자랑할 브랜드로 가꿔야 한다는 과제가 안개로 떠 자욱하기 때문입니다.

김양수 : 현재 JIBS(제주방송)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1978년 KBS에 입사한 후 보도본부 문화부차장, 제주총국 보도국장, 제작 부주간, 시사보도팀장을 역임했다.1990년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바람도 휴식이 그리울 것이다’ 등 4권의 시집을 냈고 국제펜클럽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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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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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하 (122.XXX.XXX.173)
아강발 포함 지난 일곱편의 주옥 같은 글을 잘 읽었습니다. 곶자왈공유화재단 모임 자리에서 알려주신 직후 찾아왔는데 요즘 같이 제멋대로 된 글들이 인터넷에 난무하는 세상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새삼 감탄하면서 님께 감사 드립니다. 다음에는 제주도의 '곶자왈에 대한 멋진 글 한편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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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1 13: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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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24.XXX.XXX.49)
제주는 한국이 자랑할 수 있는 자연과 기후가 있는 곳입니다. 여러면에서 개발을 해야하지만 자연의 손상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합니다. 15년전의 아름다운 함덕, 일출봉 입구들이
무계획한 건축물, 난립한 간판들로 인하여 부끄러울 정도 이었습니다. 깨끗하고 조용한
제주, 독특한 풍경, 제주의 특별식을 고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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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01 12: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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