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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러시아 스캔들’의 이면
임종건 2018년 04월 23일 (월) 00:10:55

지금 미국에선 2016년 대선 때 러시아가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의 당선을 위해 민주당의 힐러리 후보를 흠집 내는 정보를 수집해 트럼프 진영에 전달했다는 이른바 ‘트럼프-러시아 유착 스캔들’에 관한 뮬러 특검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행 중이다.

뮬러 특검의 조사 결과 유착혐의가 인정되거나, 혐의를 덮기 위한 사법방해가 인정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정통성은 크게 손상이 되고, 탄핵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바로 여기에서 나의 궁금증은 시작됐다. 러시아가 왜 미국 선거에 개입해 특정 후보를 지지하려 했냐는 것이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 두 나라는 적대관계였다. 소련의 입장에선 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 미국의 대통령은 똑같은 적이었다.

구 소련의 해체 이후 미국과 러시아는 냉전시대의 적대관계는 아니었지만 우호관계도 아닌 잠재적 적대관계였다. 미국의 민주당 출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시리아 사태와 우크라이나 사태 등을 둘러싸고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푸틴 대통령이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후보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으리란 점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고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러시아에 유리할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 얼른 집히는 게 떠오르지 않았다.

미국의 공화당은 대체로 힘을 앞세운 대결주의를 선호하는 정당이다. 그 대표적인 대통령이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으로 소련을 지구상에서 도태돼야 할 ‘악의 제국’으로 규정하는 등 대결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끝내 소련을 해체시켰다.

푸틴의 입장에선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표방한 트럼프 대통령이야말로 ’제2의 레이건‘이 될 우려스런 인물일 수도 있다. 전통적인 미·러 관계나 일반적인 국제관계에서 보더라도 러시아가 미국의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은 인간적 호감의 산물이기보다는 정치적 계략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최근에 나온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의 자서전과 방송인터뷰가 이 의문을 풀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대선 기간에 불거진 트럼프의 숱한 섹스 스캔들 중 모스크바 호텔에서 벌였다는 스캔들이 사실일 수 있다고 밝혔다.

2013년 모스크바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 때 이 행사의 주관 회사 대표로 모스크바에 간 트럼프가 그곳 리츠칼튼 호텔에서 소련의 창녀들과 어울렸고, 창녀들이 침대에서 서로에게 오줌을 누게 했으며, 이 장면을 찍은 영상테이프를 러시아 정보기관이 갖고 있다는 것이 스캔들의 골자이다.

영국 첩보기관의 러시아 담당 요원이 입수했다는 이 정보는 대선 기간 중 잠시 화제가 됐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완강한 부인과 함께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가 코미의 발언으로 무게감이 얹히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됐다.

국가 기관이 개입됐다는 점에서 이 섹스 스캔들은 트럼프의 상스러운 막말이나 포르노 배우와 같은 잡다한 여성들과의 엽색행각과는 차원이 다르다. 적대국 사이의 관계에서 상대의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는 쪽이 유리한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후보의 당선을 바랬다면 바로 그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것을 유추케 하는 상황이 작년 1월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이 몰도바 대통령과 가진 합동기자회견에서 있었다.

"트럼프의 모스크바 스캔들이 사실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푸틴은 ‘모르는 일’ ‘그럴 리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어진 말이다. “그는 성인이고, 수년 동안 미인대회를 주최하면서 세계의 미녀들과 사교를 해온 사람이다. 사회적 책임의식이 희박한 창녀들을 만나러 호텔로 달려왔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 비록 러시아의 창녀가 세계 최상급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의 이 말은 트럼프의 스캔들을 부인해주기보다 매우 함축적으로 조롱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트럼프의 모스크바 스캔들이 사실이라면 푸틴이 트럼프를 지원해야 할 필요충분조건은 잘 갖추어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푸틴 대통령과, 또 러시아와 친구가 되겠다고 공약했으나 지금 미·러관계는 ‘신냉전시대’라고 할 정도로 악화했다. 트럼프 측에서 관계회복을 시도했다가는 스캔들을 물타기 한다는 오해를 받게 돼 있다. 세상을 거칠 게 없이 살아온 대통령의 업보가 깊어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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