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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가다
김창식 2018년 04월 27일 (금) 00:12:08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포스터  
  (네이버 영화 이미지)    

지난 13일 밀로스 포만 감독이 별세했습니다. 향년 86세. 체코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포만 감독은 많지 않은 작품으로 거장 반열에 오른 흔치 않은 감독이죠.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은 물론 흥행에도 성공하여 감독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작품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1975)>와 <아마데우스(Amadeus, 1984)>입니다.

‘아마데우스’는 모짜르트의 이름이지만 모짜르트를 제1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오만하고 방탕한 천재 음악가를 경쟁자 살리에리의 시선을 통해 그려낸 영화였죠. ‘천재를 시기한 평범한 궁정 음악가의 질투가 빚은 광시곡(狂詩曲)’이라고나 할까요. 이상한 것은 천둥벌거숭이 천재를 파멸로 몰아넣는 음모의 화신 살리에리에게서 연민이 느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살리에리를 연기한 F. 머레이 에이브라함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죠. 화려한 비주얼의 영화임에도 한편으론 우울한 화두를 안긴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노력하는 자는 천재를 넘어서지 못한다!’

밀로스 포만 감독의 작품 중 <아마데우스>와 함께(어쩌면 한층 더!)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영화는 정신병원을 무대로 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입니다. 아카데미상 5관왕(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본상)에 빛나는 명품 걸작영화예요. 90여 년에 이르는 아카데미 영화 역사상 주요 5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는 단 3편밖에 없으니, 이 영화가 얼마나 대단한 영화인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먼저 수상한 다른 두 영화는 고전 스크루볼 코미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It Happened One Night, 1934)>과 공포 스릴러물인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 1973)입니다.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맥머피(잭 니콜슨)는 정신병을 가장해 병원으로 후송됩니다. 병원의 차분한 평화로움 뒤에 알게 모르게 가해지는 음험하고 비인간적인 질서가 자리하며, 체제의 중심에는 수간호사 래취드(루이스 플레처)가 있습니다. 맥머피는 인디언 추장 브롬덴(윌 샘프슨) 등 동료 환자들이 억압에 짓눌려 그날그날을 영위하는 영혼 없는 인간들임을 알게 됩니다. 맥머피는 병원을 탈출하려다 미수에 그쳐 강제 뇌수술(로보토미)로 식물인간이 됩니다. 맥머피의 반항적 DNA는 뜻밖에도 소외된 자의 상징인 인디언 추장 브롬덴에게 전해집니다. 체제순응형인 벙어리 브롬덴은 맥머피를 안락사시키고 병동의 창문 밖 여명을 향해 탈출합니다.

희화적이면서도 리얼한 연기를 펼친 미워할 수 없는 악동(惡童) 잭 니콜슨은 작은 거인 맥머피 역으로 메소드 연기의 진경을 보여주었습니다. 가학적인 수간호사 래취드 역의 루이스 플레처 역시 묵언의 연기로 새디즘 연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호평을 받았고요. 그 무렵 영화를 본 사람들 사이에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누구인가를 놓고 웃지 못할 설왕설래가 있었습니다. ‘새’는 인디언 추장 브롬덴입니다. 엔딩 시퀀스에서 창문을 뚫고 자유를 향해 날아가는 브롬덴은 벙어리도 아니었을뿐더러 이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현자(賢者)였습니다. 다만 스스로 용기를 불러일으키지 못하였을 뿐. 그것을 맥머피가 깨우쳐 주었던 것이었지요.

‘뻐꾸기 둥지(Cuckoo's Nest)'는 영어로 ’정신병원‘을 가리키는 속어입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원래 인디언 전래동요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닫힌 사회에서의 탈출, 자유를 향한 비상을 상징하는 잠언으로 읽히지만,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의 건너뜀도 은유합니다. 새는 하늘 밖 또 다른 하늘(天外天)로 날아간 것인지도 모르지요. 밀로스 포만 감독의 명복을 빕니다.

“새 한 마리는 동쪽으로 날아갔고, 다른 한 마리는 서쪽으로 날아갔으며, 또 다른 한 마리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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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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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 (222.XXX.XXX.194)
영화를 사랑하시는 김창식교수님 포만 감독이 별세했으니 허전하시겠습니다.
그러나 새싹은 다시 피어나고, 꽃은 져 새 열매가 익어 새 세상이 되는 것이니 너무 상심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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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1 09: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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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2.XXX.XXX.66)
공감과 위로 감사합니다,수탉님. 닭은 울고 뻐꾸기는 날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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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0 1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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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박 (59.XXX.XXX.34)
감사합니다. 품격높은 글에서 많이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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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7 13: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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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2.XXX.XXX.66)
공감과 격려 감사합니다, 별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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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0 16: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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