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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 보는 안락사 문제
황경춘 2018년 05월 17일 (목) 00:24:39

호주의 저명한 학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위해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락하는 스위스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04세의 생을 원하는 대로 자신의 손으로 마쳤다는 이달 초의 신문 보도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정확히 저보다 열 살 위인 데이비드 구달 박사는 평소에 건강한 몸으로, 생태계 권위자로 대학교수로 있으면서 많은 책도 써내고 90세 때까지는 테니스를 즐길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행복한 생활을 이어 온 데이비드 구달 박사는 100세가 되면서 시력이 약해지고 차츰 일상생활에 권태감을 느끼게 된 끝에, 가족의 동의를 얻어 안락사를 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많은 동년배와 저보다 젊은 나이의 친구들을 앞세워 저승으로 보내고, 어느덧 90줄에 들어선 지 오래인 저는 죽음에 대하여 가끔 진지하게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도 곧 하찮은 일상사에 휩쓸려 예전과 같이 건강에 조심하면서 적당히 여생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지난 2월 통풍이라는 이름만 알고 있던 혹심한 통증을 수반하는 병으로 병석 신세를 지고 난 뒤부터, 죽음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통풍으로 거동의 제약을 받고 운동을 게을리한 결과, 체력의 감퇴가 상상외로 빨리 와, ‘90대 중반의 노구’라는 자신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자유칼럼그룹의 봄·가을 소풍에 부부동반으로 한번 빠짐없이 동참해 오다가, 이달 말에 예정된 금년 봄 소풍에는 불참한다고 통고했습니다.

탁상 캘린더에서 3개월 전에 예약해 둔 구청 보건소의 신체검사 일정을 발견하고, 아침 식사를 걸은 채 200~300미터 거리에 있는 가까운 보건소로 지팡이를 짚고 나섰습니다. 아침 10시가 넘어 보건소를 나서면서 가까이에 있는 추어탕 집 생각이나 걸음을 돌려 추어탕 2인분을 포장해 받아 귀갓길에 올랐습니다. 식전이어서 그런지 갑자기 하체 피로가 심해져 짧은 거리를 두 번이나 쉬었다가 땀을 많이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구달 박사처럼 인생에 권태감은 아직 느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에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니, 짜증을 낼 때가 많아졌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가까운 공원까지의 산책과 가벼운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지 오래이지만, 하체의 불안정과 미세먼지 등 갖가지 핑계로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달 박사는 100세 되면서 시력이 약해지고 체력이 생각 외로 빨리 소진되어, 평소 해 오던 학구(學究)생활을 계속할 수 없으니 자기 생명의 연장에 큰 의의를 찾지 못하고 안락사를 택하였습니다. 저는 5~6년 더 살 자신이 이번 경험으로 많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직 삶 자체에 권태감을 느낄 정도의 달관(達觀)을 얻지도 못했습니다. 생에 대한 미련이 아직 남아 있는 일반 소인배(小人輩)의 한 사람에 불과한 것이지요.

우리나라에도 존엄사법이 만들어졌습니다. 2년 전 존엄사와 안락사에 관한 글을 써 여러 생각을 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안락사를 스스로 택할 경지에는 아직 가지 못했지만, 존엄사를 원해 추한 자기 마지막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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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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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99.XXX.XXX.160)
고생이 너무 많으셔요 선생님. 저도 오래 힢 통증때매 고생하는데 체력 저하도 때로 나타납니다. 안락사 내용의 글을 올리신 게 매우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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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7 13:24:21
0 0
지대식 (1.XXX.XXX.222)
항상 내 자신을 돌아보게끔 만드는 선생님의 칼럼을 꾸준히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힘내시고 매일 유쾌하고 신나는 나날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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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7 10:02:35
1 0
정병용 (121.XXX.XXX.133)
항상 건강한 신체와 건전한 정신으로 좋은 칼럼을 쓸 수 있도록
하느님의 가오가 있길 기원합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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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7 09:30:33
1 0
수탉 (222.XXX.XXX.194)
빨리 건강해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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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7 09: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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