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름의 바다 태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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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름의 바다 태안에서

방석순

2008년 01월 28일 (월) 00:28:22

죽음처럼 깊은 침묵에 잠겼던 바닷가에 돌연 활기가 넘쳐납니다. 사라진 물새 대신 젊은이들의 낭랑한 웃음소리가 파도 위를 경쾌하게 날아오릅니다. 아직도 이른 시각 노랑 파랑 잿빛 흰색... 갖가지 색깔의 방제복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의 바지런한 손길이 시름에 겨운 겨울 바닷가 모래와 자갈, 돌, 바위를 어루만지며 태안의 아침을 깨웁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들과 태안에 가기로 약속한 그날은 마치 어릴 적 소풍가던 때처럼 들뜬 기분이었습니다. 꼭두새벽에 깨어나 이것저것 준비물들을 챙기고 약속시간보다 이르게 현관문을 박차고 나섰습니다.

친구가 다니는 교회 버스를 타기 위해 이른 새벽 네 명이 잇달아 택시에 합승했으니 기사에겐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택시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차, 깜박 잊고 모자를 빠뜨렸네”하고 걱정했더니 나이 지긋한 기사가 불쑥 털모자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마침 어떤 손님이 새 모자를 차에 두고 갔다면서. 우리 일행이 태안으로 간다는 걸 눈치 챈 것이지요.

교회 봉사대원들을 태운 버스는 앉자마자 김밥, 떡, 귤, 사탕에 커피까지 한 아름 안겼습니다. “이거 꼼짝없이 봉사하게 만드는군.” 누군가의 농담처럼 차안 분위기가 마치 전선으로 떠나보내는 장병 대하듯 해서 태안으로 향하는 결의를 새로이 다지게 했습니다.

좁은 해안 길을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수많은 버스들이 줄지어 들어갑니다. 우리 일행이 도착한 곳은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태안반도의 북서쪽 만리포와 신두리 사이의 개목항이라는 곳입니다.

자그마한 포구에 좁다란 모래밭이 깔려 있습니다. 모래밭을 감싸듯 포구 외곽에는 돌과 바위가 포개어져 있습니다. 굴양식, 조개잡이가 생업인 이곳 바닷가는 잘게 부서진 조개껍질이 모래와 뒤섞여 유난히 하얀빛입니다.

먼저 도착한 자원봉사자들이 벌써 판을 벌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입었다 벗었는지 지급받은 부직포 방제복 상태는 엉망입니다. 지퍼가 떨어져 앞가슴이 터진 것, 허벅지가 드러난 것, 등어리가 구멍난 것, 옆구리가 꿰어진 것... 모두들 서로 손가락질해가며 가가대소합니다. 원주민도 물새도 모두 어디론가 떠나버린 바닷가에 봉사자들이 떠드는 소리만 가득합니다.

“와! 왕건이다. 왕건이-”
넓적한 돌을 뒤집던 젊은이 하나가 소리를 지릅니다. 예전엔 분명 게나 굴조개가 숨어 있었을 돌 밑바닥에 지금은 시커먼 타르 덩어리가 엉겨 붙어있습니다.

제법 희끄무레해진 모래밭이지만 호미나 삽으로 한 뼘 깊이만 파보아도 이내 거무죽죽한 기름 뻘이 암반 위를 지층처럼 덮고 있습니다. 처음 모래밭을 밟으며 “이야, 그 동안 열심히들 치워서 많이 깨끗해졌네”하던 감탄사도 이내 한숨으로 바뀌고 맙니다.

끊임없이 파도에 닦이고 씻겼을 텐데 자갈 돌 모두가 기름 솥에서 건져 올린 듯 누런빛입니다. 움푹 팬 바위틈에 매달린 아기 고동은 벌써 숨을 거둔 지 오랩니다. 손가락이 닿는 순간 배꼽을 드러낸 채 맥없이 물속으로 굴러 떨어집니다. 그 위로 무지개색 기름이 번져갑니다.

막대기로 바위틈새 기름을 긁어내는 사람, 돌 하나하나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부직포로 문지르는 사람, 모래바닥을 걸레질하듯 밀어보는 사람... 오늘도 수많은 개미 일손들이 기도하듯 오염된 태안의 바닷가를 문지르고 닦습니다. 그러나 일순간의 오판과 태만이 저지른 실수의 대가는 가혹하고 무섭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재난의 참상을 보노라면 자원봉사의 갸륵한 손길도 너무나 미약해 보입니다.

기름 유출로 오염된 태안 바닷가를 찾은 사람이 달포 사이 백만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가족, 친구, 기업 단위로, 또 교회 단위로 앞 다퉈 달려 나와 시커멓게 기름칠한 얼굴에 하나 가득 보람과 자랑을 담고 선 모습들이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것도 살지 않는 바다를 확인하게 되면서 자원봉사의 마음도 들뜨기는커녕 죽은 바다처럼 황량해지고 맙니다. 현지 주민들이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허튼 웃음 내는 것조차 죄스럽게 느껴집니다.

사고 직후 정부는 이곳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선 정부 차원의 어떤 방제작업이 벌어지고, 어떤 구휼사업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이렇게 수많은 개미 일손들이 벌이는 봉사가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군과 같은 특수조직이나 중장비를 이용한 보다 장기적이고 조직적이며 보다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방제방법은 없는 것인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지금에 와선 방제라는 소리 자체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이미 오염되고 망가진 뒤니 정화작업이나 재생작업이라야 옳은 표현일 겁니다.

청정 해역 태안은 국내 유일의 국립해안공원입니다. 그러나 이웃한 서산시 대산항에 저유시설이 있어 늘 조마조마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해경은 이곳에 방제정을 취역시키고 유조선 항로를 상시 순찰해 해양오염사고에 신속대응태세를 갖췄다고 자부하던 터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고에서는 기상악화에도 불구하고 삼성중공업의 크레인선과 예인선단의 무모한 항해를 막지 못했습니다. 유조선과의 충돌위험을 예고하는 교신도 충분치 않았습니다.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에도 사고위험에 대한 경고를 보냈을 뿐 안전지역으로 이동하도록 적극적인 조처를 취하지는 못했습니다.

1995년 남해안의 유조선 씨프린스호 사고 이후 해양수산부는 상당한 예산을 들여 대형 방제선들을 건조했습니다. 국가방제능력이 1만600톤이라고 자랑도 했습니다. 그중 한 척이 대산항에 배치돼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고에서 방제선은 무용지물이었습니다. 파도가 높아 아무 역할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잠자는 호수에서나 필요한 장비인 모양입니다.

입체적으로 실패한 재난방지. 그 본보기가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사고입니다. 우리의 재난방지시스템이 전혀 부적절하거나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해마다 겪는 물난리에 대처하는 모습에서 벌써 국가적인 재난방지나 사후 대응에 대한 우리의 실력이나 기대치는 다 드러난 셈입니다.

이런 마당에 생뚱맞게 행정자치부가 태안 복구작업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도록 추진하겠답니다. 그게 지금 그들이 해야 할 일인지 어이가 없습니다.

“모래톱에 찰랑이는 초록빛 바다, 파도를 차고 오르는 물새들의 평화로운 노래 소리, 솔밭을 가르는 해풍, 파란 언덕위에 펼쳐진 노란색 원추리꽃밭...

태안은 눈에 보이는 게 그림이고, 귀에 들리는 게 시입니다. 그래도 태안 가실 땐 꼭 제게 신고하고 가야 합니다. 그 속에 감춰진 인정까지 맛보시려면...”

고향 자랑에 늘 침이 마르던 옛 직장 동료가 생각납니다. 오늘 그는 이 바닷가 어느 구석에서 시커멓게 죽은 굴이랑 게를 집어 올리다가 목 놓아 울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리 (24.XXX.XXX.49)

태안반도는 사찰 내소사와 일몰의 해안이 아름다웠습니다. 더욱이 잘 보존 해야할 갯벌과 청정 해안이 있는 지역으로 정부의 특별 관리하에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한국 정부는 언제나 후진성향을 벗어날까요, 현임 대통령이 거주한다는 봉화마을의 떠들석한 집짓기, 마을 단장이 부끄럽지 않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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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9 0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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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co (211.XXX.XXX.129)

나도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태안 다녀온 알리바이를 대십시오.
왜 현장사진이 없느냐 그겁니다. 사진을 글과 함께 썼어야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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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8 10: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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