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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 만에 금강산에서 큰형님을 상봉하다
이정원 2018년 07월 30일 (월) 00:09:01

2002년 9월 13일, 우리 형제들은 6·25 때 행방불명된 큰형님과 금강산 이산가족상봉 면회소에서 52년 만에 눈물의 상봉을 했습니다. ‘제5차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우리 3형제와 작은 아버지 내외분 등 다섯 명의 남쪽 가족은 6·25 전쟁 중에 돌아가신 줄 알았던 북쪽의 큰형님을 극적으로 만났습니다. 

당시 H대에 다니시던 22세의 큰형님은 6·25 사변이 터지자 미처 피란을 못 내려오시고 9·28 서울 수복 직전에 피란을 오시다 수원 근교에서 후퇴하는 인민군에 붙들려 북한으로 끌려갔다는 것을 끝으로 소식이 두절되었습니다. 그 아비규환의 후퇴 길에 우리는 큰형님이 돌아가셨을 거라고 믿고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된다니 꼭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시골 고향집에서 뒤뜰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놓고 큰 아들의 무사귀환을 비셨던 어머니는 형님을 상봉하기 한 해 전에 한 많은 세상을 뜨셨습니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남북이산가족상봉에 합의하여 2000년도에 제1차 상봉이 남한의 서울 워커힐에서 이루어진 이래 2015년까지 총 20회에 걸쳐 성사되었는데 우리 가족은 2002년 상봉행사에서 큰형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2002년 7월경 이산가족 5차 상봉 행사에 합의한 어느 날 신문과 텔레비전에 돌아가신 줄 알고 있던 큰형님이 남한의 가족을 찾는다는 뉴스가 떴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성함과 헤어질 때 생존했던 6남매의 이름, 그리고 고향 주소가 한 자도 틀리지 않고 보도된 것을 보고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우리 형제들은 엉엉 울면서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나는 이튿날 곧장 남산에 있는 적십자사를 찾아 신고를 마치고 상봉 신청 가족으로 작은아버지 내외분과 생존한 3형제, 도합 5명의 명단을 제출하였습니다. 둘째 형님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날부터 우리 형제들은 형님에게 드릴 선물을 마련하였습니다. 당시는 외투로 토퍼가 유행하여 큰형님과 형수님, 그리고 조카들에게 줄 토퍼 몇 벌과 내복, 러닝셔츠, 양말, 화장품, 비누, 만년필 등과 고장이 덜 나고 값이 비싼 일제 남녀 시계 5개를 구입하였습니다. 미국 달러를 꼭 준비해야 한다고 해서 적십자사에 문의했더니 500달러 정도면 될 거라고 하기에 700달러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달러는 다 빼앗길 거라는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여기에 가족 사진과 형님이 남한에 계실 때 찍은 사진 등을 취합하여 앨범도 만들었습니다.

9월12일 남한 측 가족 500여 명이 속초에서 배를 타고 밤바다를 헤치며 9월 13일 아침에 금강산 항구에 도착하였습니다. 북한의 세관 검사를 마친 후 호텔에 여장을 풀고 곧장 상봉 장소로 이동하여 74세이신 큰형님과 상봉했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오후에는 조그만 여관방에서 가족들끼리만 만나는 자유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런저런 지나온 날들을 얘기하며 어떻게 북한까지 무사히 가시게 됐는지, 북한에서 무엇을 하셨는지, 가족은 어찌 되는지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 사진을 드리며 장남이시니 앞으로는 부모님 제사를 형님이 지내시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형님은 고향으로 늦게 피란하던 중 북한군에 이끌려 어두운 밤을 틈타 태백산을 넘어 후퇴를 하였다는 말씀과 함께 북한에서 고위관리를 지내셨다고 하셨습니다. 형수님과 4남 1녀를 두셨고 평양에 거주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극도로 아끼시고 긴장하는 모습이 엿보였습니다. 문득 이 방 어딘가에 도청장치가 설치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하였습니다. 실제로 상봉장 여기저기에는 보위부원들이 가족들의 대화를 엿듣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큰형님은 머리가 수재여서 공주고보를 졸업하시고 고향에서 교편을 잡으시다 작은 아버님의 권유로 상경하여 H대에 재학 중 6·25를 겪으셨는데 북한에 있던 대졸자들 대부분이 월남하여 고급인력이 부족한 북한에서 고급학력자로 인정을 받아 편하게 지내셨다고 하셨습니다. 준비해 간 선물과 달러를 드리자 큰형님이 뭔가를 선물로 내어 놓는데 식탁보와 인견에 프린트된 그림 한 점 그리고 칠보 화병과 들쭉술 한 병이었습니다. 첫눈에 보니 어떻게나 조잡한지 북한의 생활수준을 더듬어 볼 수 있었습니다. 꼭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보던 그런 물건입니다.

둘째 날은 관동팔경의 하나로 일컫는 삼일포라고 하는 아름다운 호수가 보이는 잔디밭에서 북측이 제공하는 도시락을 먹으며 2차 모임을 가졌습니다. 우리 가족이 먼저 도착하고 큰형님은 버스로 다른 일행과 함께 오셨는데 차에서 내리는 남자 분들을 보니 한결같이 검정 양복에 중절모를 쓰고 있었고 여자 분들은 촌티 나는 반짝이 무늬가 있는 한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나라에서 똑같이 새로 맞춰준 듯싶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마침 YTN 카메라맨이 보이기에 “지금 고향에서 큰형님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빼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니 한 커트 찍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카메라가 우리를 향했고 후에 돌아 와 보니 텔레비전에서 형님과 우리 가족 얼굴을 보았다는 친구들과 친척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오전시간을 보내고 오후에는 모든 상봉가족들이 함께 여흥을 즐기는 오락시간을 가졌습니다. 무슨 기차놀이를 한다고 앞 사람의 허리를 붙잡고 빙빙 돌아가는 놀이를 하였습니다. 그 놀이를 하면서 큰형님과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버지께서 귓속말로 “얘 아까부터 저기 있는 개똥모자를 쓴 사람이 자꾸 우리를 쳐다보는데 뭔가 감시를 하는 거 같다” 해서 옆을 처다 보니 진짜 보위부에서 나온 듯한 사람이 우리들을 째려보고 있었습니다. 아차, 여기가 북한이라는 사실을 깜빡한 것입니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혹 우리가 돌아간 뒤 형님에게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날 오전에 다시 가족 상봉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매점에서 음료수를 사서 마시며 큰형님과 마지막 시간을 보냈습니다. 북측 상봉 가족들이 타고 떠날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북측 가족들과 헤어질 시간이 되자 여기저기서 여자들의 통곡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큰형님도 차에 올라탔습니다. 버스 안의 북측 가족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창문을 두드리고 차안의 가족들이 창밖의 가족들 손을 붙들고 놓을 줄을 모릅니다. 나는 형님은 왜 창밖을 내다보시지 않나 하고 기웃거리니 사람들을 헤치고 형님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형님” 하고 손을 내미니 내 손을 꼭 붙잡고 흔드시더니 “잘 가라” 하시고는 고개를 내미신 채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가족은 떠나는 버스를 좇아가며 땅에 엎디어 대성통곡을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어쩌면 살아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만남이니 이별의 슬픔을 토해내는 울음소리가 광장에 메아리치고 있었습니다. 

나는 16년 전의 북한의 형님을 만났던 기억을 더듬어 이 글을 쓰면서 이 경험담이 오는 8월 하순, 8년 만에 금강산에서 열릴 예정인 제21차 이산가족 상봉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울러 금년으로 9순을 맞으시는 큰형님이 아직 살아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정원
시조시인. 1939년 충남 예산 출생.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고대신문 편집국장 역임. 공직에서 정년퇴임. 2005년 계간 ‘현대시조’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한국시조시인협회·한국문인협회 강남지부 회원. 현대시조 ‘좋은작품상’ 등 수상. 시조집으로 ‘얼레와 어금니’ 등 3권과 산문집으로 '코드 55'와 ‘피아노 치는 시인’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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