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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발하는 일자리
허찬국 2008년 01월 31일 (목) 02:04:09
최근 오랜만에 미국출장을 며칠 다녀왔습니다. 미국 여행 중 인상 깊게 겪었던 일 두 가지만 말씀 드릴까 합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미국 국내선을 탔습니다. 새벽부터 서둘러 공항에 도착했는데 해당 항공사 탑승구역에 무척 긴 줄이 두 개 있었습니다. 하나는 항공사 카운터 줄이고, 다른 하나는 탑승구로 가기 위한 보안검사 줄이었습니다. 두 줄 모두 백 명은 족히 넘는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항공사 카운터 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이상하게 항공사 직원들이 몇 명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례가 되어 항공사직원이 서 있는 카운터로 갔더니 황당하게도 그곳은 특별한 일이 있는 사람만 위한 것이니 무인 카운터를 이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이-티겟을 받아 들고 갔기 때문에 당연히 항공사 직원과 대면해서 제대로 된 티켓과 자리를 배정 받고, 짐을 부치고 상냥한 인사도 받기를 기대했습니다.

이 무슨 망신입니까, 그런 일은 무인카운터에서 화면에 메뉴가 나오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처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말을 알아 듣고 컴퓨터에 익숙했기 때문에 혼자 더듬더듬 짐을 부치고, 자리를 배정 받고 탑승권을 받았습니다. 짐을 나르는 일만 전담하는 덩치 큰 남자가 가방을 넘겨받고는 자기에게 말 시키지 말라며 짐 티켓을 줬는데, 이게 사람과의 접촉의 전부였습니다. 불만을 털어놓는 저에게 항공사 직원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이게 미래이니 익숙해지는 게 좋을 겁니다.”

보안검사는 그야말로 은행 강도나 전과범을 잡기 위한 것이거나 은행금고 입장과 퇴장 시 행할 법한 수준이었습니다. 9ㆍ11 만행을 저지른 녀석들이 새삼 미웠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돌아오는 비행기 편에 옆에 앉았던 수염 더부룩한 엔지니어와의 대화입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늦은 밤 인천 행 비행기를 탔는데, 그 동석자는 본사가 있는 앨러바마주에서 그날 아침 출발하여 중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중국 왜 가느냐”고 물었더니 상하이 근처 선박 수리소에 일을 하기 위해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그의 얘기인즉 상하이 드라이 독에서 정기적인 A/S를 위해 들어오는 배들을 수리하는데 그의 회사가 프로펠러 부분의 일을 맡고 있어 일년 사이에 네 번째 왕래하는 길이라고 합니다. 수리는 대개 1~2주 걸리고 수리비는 많으면 수십억 원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수리 받는 선박들이 미국 본토와 하와이를 정기 운항하는 대형 컨테이너선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도 나름대로 국제화에 대해 생소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앨러바마는 미국에서도 좀 뒤처진 곳으로 여겨지는 남부지방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 회사사람이 세계화한 생산·수리 체인의 한 부분으로 중국으로 정기 출장을 다닌다는 것, 그리고 중국에서 A/S를 받는 선박들이 국제항로가 아니라 미국영토 안에서 운항하는 배들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 세계화라는 것이 얼마나 구체화하고 보편화했는지를 새삼 느꼈습니다.

여행을 끝내고 나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컴퓨터가 발달되고 상대적으로 사람 쓰는 것이 비싸지면 앞으로는 더 많은 일들을 기계가 할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효율성을 증대시켜 경쟁력을 높이는 기업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 여러 업종에서 점점 일하는 사람 보기가 힘들어질 겁니다.

피로나 스트레스를 못 느끼는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아지니, 사람이 좋은 수입을 유지하려면 새로운 일 자리가 생기거나 재능이 많아져야 할 겁니다. 장차 젊은 사람들의 처지가 점점 걱정됩니다. 항공사 종업원들로 촘촘한 김포공항의 지금 모습이 고마워 보입니다.

그리고 세계 조선대국인 우리나라가 선박 A/S도 더 잘 할 터인데 왜 한국으로 오지 않나 의문입니다. 십중 팔구 한국에서는 수리비가 비싸고 드라이 독이 모자라서일 겁니다. 조선업이 호황이라 기존 시설들은 쏟아지는 주문을 맞추느라 수리에 쓰일 여유가 없을 겁니다. 새로운 시설은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해안가에 대형 산업시설을 만들면 생산이나 일자리 창출효과가 상당할 것 같지만 어디에서든 부지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일자리가 없다고 나라가 온통 걱정입니다만, 동시에 우리의 땅은 금수강산이어서 어느 한 곳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정서가 매우 강합니다. 공감이 가는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일자리가 없어 능력을 썩히는 인적 자원을 보면 그게 꼭 옳은 주장인 것 같지도 않습니다.

우리도 일본 오사카의 간사이공항 부지처럼 인공섬을 만들어야 할 처지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아마 눈치 없는 지자체장이 나서서 인조섬을 유치하려 했다가는 몰매를 자초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젊은 사람들이 측은해 보입니다.

 허찬국(許贊國):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및 경제연구본부 본부장. 1989년 University of California at Santa Barbar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11년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지급준비은행 조사부와 연방지급준비제도 이사회(FRB) 국제부 연구위원을 역임했다. 2000년 한국경제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 후 국내에서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과 아주대학교 겸임교수로도 활동했다. 현재 예금보험공사 자문위원과 금융감독원 거시금융감독포럼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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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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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hy (121.XXX.XXX.86)
미국공항에서 사람취급 받는 것 힘듭니다요. 저도 9.11이후 몇번 경험하고는 미국출장 자제합니다.ㅎㅎ한국에 왜 일 안맡기냐고요? 다른 문제보다도 한국사회의 구조적 결함과 병폐를 세계인들이 다 알고 있는데 맡기고 싶겠습니까? 대학교총장이라는 자까지도 거짓말을 일삼는 나라를요!사채업자가 국가고위공무원을 구워 삶는 나라를요!ㅎㅎㅎ잘읽었습니다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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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01 01:08:28
0 0
fooco (211.XXX.XXX.129)
허 박사가 완전 떴어요. 어제 아침 경향신문에 칼럼 나갔고 오늘은 조금 전 와이티엔 티비에 나오더군요. 아, 원래 떴던 분인데 내가 잘 몰랐나?
답변달기
2008-01-31 19:3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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