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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을 보내면서
정숭호 2018년 10월 31일 (수) 00:17:53

지난번 여기에 <‘사전’을 만들면서>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원로 소설가 김원우 씨의 2017년 작 ‘운미 회상록’을 읽는데, 모르는 말이 너무 많아서 사전 찾아가며 읽었다. 우리말에 좋은 뜻을 가진 말보다 나쁜 뜻을 가진 게 더 많은 것 같더라. 소설의 시대 배경이 나라가 최악으로 어수선하고 어지럽던 때여서 그런 것 같다. 지금 우리 눈앞의 혼란상도 그때 못지않다. ….” 이런 내용에다가 소설에 나오는 모르는 단어와 그 뜻을 사전에서 찾아내 표로 만들어 곁들인 글인데, 써놓고는 후회를 좀 했습니다.

내용에 자신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글 말미에 부록처럼 써 붙인 “제가 이런 단어들을 모아 사전을 만들었는데, 필요하신 분 연락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는 글귀 때문입니다. 생각 밖으로 많은 분들이 이메일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사전’을 보내달라고 하셨습니다. 거의가 저와 모르는 사이인데도 “그 힘든 일을 하셨다니 감동입니다. 존경스럽습니다”라고, 매우 곡진하고 감동적인 말씀으로 주문서 첫 줄을 시작하셨더라고요.

큰일 났다 싶었습니다. 모르는 우리말, 처음 본 한자어, 재미난 속담 따위 300여 개를 모아서 정리한 표일 뿐인데, 독자 눈길 좀 끌어보려고 ‘사전을 만들었네, 필요하시면 드리겠네’라고 ‘뻥’을 친 결과가 평생 못 받아본 대접을 받게 된 겁니다. 그러니 미안하고 죄송한 생각이 안 들 리 없지요. 정말 ‘사전’ 혹은 ‘사전 비슷한 것’인 줄로 알고 보내달라고 하신 분들, 이거 받으면 실망이 아니라 분노까지 일으킬 텐데 …, 후회에 걱정까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거 절대 사전 아닙니다. 항목 300개쯤 되는 단어집입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메일을 쓰고는 ‘사전’을 첨부해 보냈습니다.

몇몇 분이 “잘 받았다. 읽고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기대 안 한 격려를 보내주셨습니다. 걱정했던 것처럼 “실망했다. 이게 무슨 사전이냐. 기자들 과장 심한 거 알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같은 반응을 보내신 분은 아직 없습니다. 제가 밉지 않아서가 아니라 혼낼 가치도 없기 때문에 그러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 자리를 빌려 용서를 구합니다.

이번에 ‘사전’을 보내드리면서, 우리말을 사랑하고 아끼는 분이 생각 밖으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외래어는 물론 ‘신조어’라는 고상한 명칭을 덮어쓴 유행어의 범람을 걱정하시는 분도 있었고, 제 ‘사전’이 더 예쁘고 아름다운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또 우리말 단어집-제 것과 비교하면 훨씬 더 사전 비슷할 것이 분명한-을 만들고 있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저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달래기 위해 모르는 말을 찾아 표로 만들어 본 것뿐인데, 이분들은 글로써 말로써 더 맑고 밝은 세상을 만들려는 생각을 가진 것 같았습니다. 거칠지 않고 속되지 않은 말과 글을 더 많은 사람들이 쓰도록 해서 오가는 말의 격을 높이면 우리 삶도 덜 거칠고 덜 속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들 같았다는 말씀입니다.

맞는 말이지요. 요즘 우리 주변에는 남의 속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뒤집어 놓나, 어떻게 하면 내가 너를 경멸할 뿐 아니라 혐오하고 증오하고 있음을 더 잘 알도록 하게 할까, 어떻게 하면 그런 뜻을 담은 말을 내가 너보다 더 잘, 더 먼저, 더 많이 할 수 있을까만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더 많아지지 않습니까. 남을 욕하고 싶어도 참고 있거나, 욕을 하는 대신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도록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고요. 세상이 이러니 바른 말, 깨끗한 말, 맑고 밝은 말, 좋은 말, 그러면서도 재미있고 재치 있는 말이 더욱 아쉬워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말과 글을 아쉬워하는 분들이 제 어쭙잖은 ‘사전’도 필요하다 하신 거라 생각합니다.

10월 22일자 한 신문에 어떤 재벌 회장이 학술재단에 520억 원을 출연한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또 다른 재벌이 세운 장학재단이 출판문화대상을 신설하고 매년 2억5000만 원을 상금으로 준다는 기사도 같은 날 같은 신문에 났습니다. 혹시 이와 비슷한 문화 사업을 생각하는 재벌이 있다면 ‘바른 말, 옳은 말, 예쁜 말 쓰기 운동’을 시작해주면 좋겠습니다. ‘좋은 말 쓰기 대상’도 만들면 좋겠지요. 

증오와 혐오, 경멸을 담은 말을 가장 많이 생산해 유통시키는 정치인들과 시민단체, 어린이와 학생들은 물론 어른들도 아무 생각 없이 따라 쓰는 유행어를 쉴 틈 없이 만들어내는 피디와 연예인과 방송작가 등 소위 방송인들이 잘못을 뉘우치도록 바른 말 옳은 말을 쓰는 사람에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상금을 주자는 겁니다. (우리말과 외국어를 섞은 요상한 단어, 한글 자모와 알파벳을 뒤섞어 새로운 글자 따위를 경쟁적으로 ‘발명’해 화면에 그대로 내보내는 사람도 이들입니다!)

또 이들이 만들어 낸 품격 없는 ‘신조어’가 세태를 반영한다며 그대로 옮겨 쓰는 기자들, 공문서는 물론 길가의 플래카드나 현수막에까지 한자어와 외래어를 나열하기 좋아하는 공무원들에게도 이 상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위에 열거한 사람들의 천박한 말버릇 글 버릇도 돈으로 고치자는 저의 제안이 엉뚱하다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천박한 말 대신 바른 말과 옳은 말 그리고 예의 바른 말 쓰는 사회를 만드는 게 학술연구나 출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정부 공무원들이 이런 운동 시작했으면 좋겠지만 어려울 것 같아서 그 전에 재벌이라도 이 일을 해줬으면 하고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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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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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산 (121.XXX.XXX.160)
좋은글 열심히 읽고있읍니다
저는 자서전을 쓰기위한 자료들을
현재수집중인데 마침 정선생님의
사전을보내면서를 읽고 좋은자료가 될것같아
한부 받아 보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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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2 21: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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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ut (218.XXX.XXX.214)
백 선생님 감사합니다.책으로 만든 게 아니고 그저 저에게 새로운 낱말 몇 개와 속담 같은 거 300개 모아서 파일로 만든 겁니다. 그런데 그 파일을 잘 모르는 엑셀프로그램으로 만들었더니 제 조작 실수로 안 열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필요하시면 파일 손봐서 열리면 보내드리겠습니다. 메일 주소는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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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3 12: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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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중 (221.XXX.XXX.241)
우리주변에 문제가 많지만 무엇보다 우리 글과 말을 우리 스스로가 무자비하게 망가트리고 있다는것입니다 인기에 연연하는 정치인이나 언론은 믿을수없고 선생님같은분이 앞장서면 재벌 뿐아니라 많은 국민도 뒤따를것입니다 힘들드라도 게속 노력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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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2 1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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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ut (218.XXX.XXX.214)
감사합니다.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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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3 12: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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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남 (112.XXX.XXX.154)
저도 부탁 드려 받은 사람인데 따로 감사의 인사를 더 드리지 못한 거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늦었지만 감사히 잘 유용하겠습니다.
우리 말 바르고 곱게 쓰기는 자유칼럼 필진 중 한 분이 공동 회장인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공동대표: 이대로, 김경희, 노명환, 박문희, 이정우, 고영회)>과 협조하면 어떨까 싶군요. 자유칼럼과 공동으로 행사를 벌이며 재벌이나 다른 기관, 단체들의 참여를 유도하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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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31 18: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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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ut (218.XXX.XXX.214)
답이 늦었습니다. 인사 받자고 한 게 아닌데 또 이러시면.면구하기 짝이 없네요. 말씀하신 건 궁리를 좀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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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1 10: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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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자 (124.XXX.XXX.15)
정숭호 선생님, 귀한 칼럼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선생님 같은 분이 계셔서 그나마 든든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알지도 못하는 단어들이 난무해서 손녀를 돌보고 있는 저도 '이건 아니다' 싶을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사전을 만들면서' 라는 선생님 글을 제가 놓쳐서 읽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니다. 만드신 단어집을 저도 보고 싶은데 책방에서 살 수 있는지요? 아니면 염치불고하고 받아볼 수 있다면 영광이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제 메일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appleinja@hanmail.net) 김인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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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31 11: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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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ut (218.XXX.XXX.214)
김인자 선생님, 제 못난 글 잘 읽으셨다니 송구하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말한 '사전',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진짜 사전도 아니고, 책으로 만든 것도 아닙니다. 그냥 한 300개쯤 표로 정리한 건데, 파일에 문제가 좀 있어서 당장 보내드리기가 힘듭니다. 죄송합니다. 조만간 정리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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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1 10: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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