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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미국 중간선거와 푸른 물결(Blue Wave)
허찬국 2018년 11월 15일 (목) 00:07:23

이달 6일 미국에서 6년 임기의 상원의원 일부와 2년 임기의 하원의원 전원, 그리고 일부 주지사를 선출하는 큰 규모의 중간선거가 있었습니다. 각종 우려를 자아내는 행보를 보여 온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평가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선거에 대한 높은 관심은 전에 없이 높은 투표율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내 언론의 보도는 공화당이 상원을, 민주당이 하원을 차지한 무승부라는 식이어서 상당히 피상적이었습니다. 선거의 결과가 우리의 현안에 미치는 영향이 뚜렷치 않아 중간선거가 흥미거리가 아니었을지 몰라도 미국뿐 아니라 유럽 주요국들도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일찍이 인권과 개인의 자유를 명문화한 헌법에 바탕을 둔 근대적 민주주의를 출범시킨 미국의 정치제도(政體, polity)가 내부적 위협에 얼마나 견고한지를 가늠케 해주는 중요한 선거였기 때문이지요.

지난 2년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미국이 주도해온 국제질서를 부정하고, 대내적으로 백인 우월주의의 암묵적 포용하고, 헌법이 정한 국가와 종교의 분리원칙을 위배하는 정책을 추진하였고, 언론을 ‘인민의 적’으로 규정하여 공격하며 과연 미국이 향후 민주진영의 대표적 포용적인 법치국가로 존속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총기가 범람하는 미국에서 그가 뱉어낸 인종 및 종교적 혐오의 메시지가 혐오범죄(hate crime)로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몇 달 사이 트럼프의 비판 대상이던 정치인과 언론사에 폭발물이 발송되고, 인종/종교적 동기의 총기 테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는 고유의 견제 기능을 수행하기보다 오히려 트럼프와 관련된 각종 의혹에 대한 조사를 방해하는 듯 했습니다. 대부분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의 무절제한 선동에 소극적, 또는 적극적으로 동조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하는 역할은 전적으로 민주당의 몫이 되었습니다. 反트럼프 정서가 거세지며 민주당의 선전, 즉 ‘푸른 물결(blue wave)‘에 기대가 높아졌고, 선거 결과는 이를 확인했습니다. 전국적 유권자의 의중은 하원의원 선거 결과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선거 이전 과반을 훌쩍 넘었던 공화당 의석수는 크게 줄며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결과에 따르면 아래의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와 공화 양당이 각각 약 230석 이상, 그리고 약 200석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민주당은 공화당이 장악했던 40개 가까운 선거구를 탈취하며 크게 승리한 것이지요. 이런 결과가 더 의미 있는 것은 그동안 주 정부를 장악한 공화당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획정하는 게리멘더링(gerrymandering)과 민주당 성향의 유권자들의 투표권 제한 조치를 취했음도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림 1>파란색과 빨간색 점은 각각 민주당과 공화당 하원위원 당선자를 표시

   

상원의원 선거 결과는 유권자 수와 무관하게 각 주에서 2명씩 뽑는 제도로 인해 농촌지역에서 공화당이 우세를 보였습니다. 미국의 주 단위 선거인단 선출제도로 2년 전 대선에서 6,500만 표를 얻은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아니라 6,300만 표의 지지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었던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림 1>에서 인구수 비례로 뽑는 하원의석 수가 하나인 주들도 상원위원 2인을 선출합니다. 그 결과 인구가 약 60만 명인 와이오밍주나 4,000만 명인 캘리포니아주가 똑같이 2명의 상원위원을 선출합니다. 와이오밍 유권자 1명이 캘리포니아주 유권자 약 67명과 동등하게 되는 것이죠. 이번 상원 선거의 정당별 득표수를 비교하면 민주당이 약 1,200만 표가 더 많다고 합니다.

농촌지역은 상대적으로 유권자들의 교육수준이 낮고 백인들이 더 많습니다. 트럼프가 대선 때 재미 보았던 ‘불법이민자 홍수’의 공포 마케팅을 중간선거에서도 재탕했는데, 상원 선거 결과를 보면 이런 인종주의적 마케팅이 농촌지역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었다는 평가입니다. 미국 중서부 내륙지역은 불법 이민자를 접할 일이 드문 곳이죠. 따라서 여기에는 주민들의 인종적인 편견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해석됩니다.

  

<그림 2>화살표는 각 선거구에서 지난 선거 대비 각 당의 지지도 변화를 보여줌

 

<그림 2>는 각 하원 선거구에서 지난 선거에 비해 어느 당이 더 득표했는지를 화살표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좌향 청색 화살표는 민주당 지지율이 상승한 경우, 우향 적색은 공화당 지지도 증가를 의미합니다. 민주당 지지도 증가가 더 확연합니다. 즉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와 견제 의무를 방기한 공화당 정치인들에 대한 대다수 유권자들의 부정적 평가가 푸른 물결의 파고를 높인 것이지요.

민주당은 선거전에서 의료보험 문제를 집중 공략했습니다. 대안 제시 없이 오바마 대통령 시절 시작된 의료보험제도를 철폐하거나 축소하려고 하는 공화당의 시도는 많은 유권자를 불안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공격이 주효했습니다. 특히 여성과 중도적인 유권자들의 대폭적인 지지가 이번 결과에 중요했습니다. 현재 107명인 여성 상·하원 위원 수가 118명으로 늘게 되었고, 특히 새로 당선된 31명 중 30명이 민주당 소속인데 상당히 다양합니다. 최초 무슬림 교인, 최초 원주민 인디언, 29세의 인권운동가, 30년 동안 지역구를 수성했던 남성 공화당 의원을 꺾은 여성 등 그야말로 다채로운 미국인 구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주지사 선거까지 포함하면 중남미계 여성, 동성애자 등 당선자 모습은 형형색색입니다. 법치와 포용적 전통을 중시하는 이성적 유권자들이 종족주의(tribalism)에 바탕을 둔 저급한 선동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미국의 이번 선거는 민주주의 정체가 어떻게 포퓰리즘을 극복할 수 있을까를 보여주어 시사하는 바가 큰 선거였습니다. 1980년대 말 민주화 이후 수십 년 우리의 경험을 보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집권세력의 무절제한 권력의 남용과 여야의 포퓰리즘에 상당히 취약한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러시아, 터키, 필리핀, 베네수엘라, 브라질, 이탈리아 등 처참한 몰골의 소위 ‘민주주의’ 국가들이 널려 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모습이 더 악화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 역사가 긴 미국에서 이 불완전한 정체의 실험이 잘 진행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한국에서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희망적인 지향점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림 1, 2는 2018.11.7일자 뉴욕타임스 "Sizing Up the 2018 Blue Wave"기사에서 캡쳐한 것임.  그이후 나온 결과로 민주당의 의석 수가 더 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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