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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독서클럽, 북클럽
정숭호 2019년 01월 28일 (월) 00:09:23

‘독서합시다!’
한겨울에 웬 독서캠페인? 그럴 일이 있습니다.

어쭙잖은 책 한 권을 써냈더니 회원이 열다섯 명인 한 독서클럽 대표자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저자 서명을 해서 그만큼 보내줄 수 없겠냐고요. 다른 독서클럽에도 제 책을 소개해주겠고다고도 했습니다. 우쭐해집디다. 누군가가주목하는 ‘작가’가 됐다는 생각에서요.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교양’과 ‘지성’을 인정해준 건데, 다른 사람들이 옆에 있을 때는 몰라도, 혼자서는 벙싯벙싯 웃음을 띨 만한 거 아닌가요? 

이 인연으로 이분과 연락을 두어 번 주고받았는데, 며칠 전 보내온 카톡에는 짧은 인사 뒤에 “클럽 회원들과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제3권 중 ‘계몽주의’와 ‘슈투름운트드랑’ 그리고 괴테와 실러 편을 낭독하고 있던 차에 책을 받아 더욱 환호했다”고 했습니다. “더욱 환호했다”는 건 아마 내 책 첫 부분이 괴테 이야기여서 반가웠다는 뜻이겠지만, 나는 이 카톡을 읽고 바로 많이 부끄러워하게 됐습니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제목만 알지 만져 본 적도 없고, 괴테는 두어 권 읽었지만 실러는 초등학교 때 동화로 읽었던 ‘빌헬름 텔’밖에 아는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독일어 ‘슈투름운트드랑’은 검색에서 (여러 번 들었어도 아직 그게 무엇인지 깊게는 모르는) ‘질풍노도의 시기’임을 알게 됐지만, 더 한심한 건 검색하기 전까지는 ‘슈투름운트드랑’의 끝 글자 ‘랑’을 우리말 ‘~~랑’, 즉 ‘~~와’라고 생각해 이분들이 ‘슈투름운트드와 괴테와 실러를 읽고 있구나’라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이게 한 단어가 아니라 '슈투름(Sturm) 운트(und) 드랑(Drang)', 이렇게 세 단어가 모인 거라는 것은 한참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책 정말 안 읽는다는 게 뉴스도 안 되는 요즘, 이렇게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작가’인 나를 부끄럽게 할 정도로 수준 높은 책들을 번갈아가면서 낭독하고, 또 느낀 것에 대해 토론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이 독서와 독서클럽(북클럽)에 대해 관심을 갖게 했습니다. 

참 많은 독서클럽이 있더군요. 친한 사람들끼리 조직한 클럽도 있고 자치단체나 도서관, 대학에서 재학생을 위해 운영하는 곳도 많았습니다. 어린이만 상대하는 곳, 영어책만 읽는 곳도 있습니다. 한 대학 독서클럽 이름은 ‘다독다톡’이었습니다. ‘多讀’과 ‘다TALK’을 붙인 건데, 이런 다국적/무국적 조어를 무척 싫어하지만 이건 재미있다 싶었습니다. 좋은 토론을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알아야) 한다는 뜻을 제대로 담고 있어서지요.

독서클럽은 돈도 되는 모양인지, 클럽을 조직해 놓고 회원을 모집하는 업체도 있더군요. ‘다음 달에는 이러이러한 책을 얼마 동안 읽을 거니 읽고 싶으면 가입하시오’, 이런 식인데 한 업체는 열두 개 클럽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회비는 월 1만5천 원에서 2만 원 정도에 커피 같은 걸 주고 있었습니다. 조직된 독서클럽을 위해 모여서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장소만 빌려주는 업소도 있었습니다.
 
한 포털은 이런 ‘콘셉’을 전부 망라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후원하고 있었습니다. 이 스타트업 운영자는 이렇게 말하네요. “독서클럽은 책을 매개로 하는 관계 만들기다. 혼자 하는 운동이었던 달리기나 자전거 타기가 오늘날에는 함께하는 운동이 된 것처럼 책 읽기도 함께하면 자기를 표현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될 수 있다.” 독서클럽이 사람들을 이어주고, 책을 비롯한 상품과 서비스를 높은 수준으로 공급하면 사업으로도 유망하다고 본 모양입니다. 서울 강남에는 독서클럽에게 무료로 공간을 내주는 호텔도 있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호텔 사장님이 장소를 못 찾는 독서클럽을 위해 손님이 뜸한 토요일에 회의장이나 연회실을 내주고 있다는 겁니다.

두서없이 시작한 글이니 두서없이 끝맺게 될 것 같습니다.
책을 왜 읽어야 하나. 독서의 장점, 혹은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도 몇 줄 찾아냈습니다.

“독서가 마음의 습성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 연구한 학자들은 독서는 이성을 고무시키는 과정이라고 결론지었다. 글에 몰두한다는 것은 사고의 흐름을 좇아가는 것을 뜻하며, 이는 상당한 수준의 분류, 추론, 판단하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는 허위 혼동 과도한 일반화를 들춰내고 논리와 상식의 남용을 간파해 내는 것을 뜻한다. 또한 주장을 비교 및 대비시키고 일반화시킨 한 가지를 다른 것에도 연계시켜 보는 식으로, 사고력에 무게를 두는 행위를 의미한다.” <닐 포스트먼, ‘죽도록 즐기기’(“성찰 없는 미디어세대를 위한 기념비적 역작”이라는 소개가 붙은 책입니다. 제목이 주는 가벼운 뉘앙스와는 달리 매우 진지한 책입니다.)>

“… 전공 분야의 '전문성=특별성'을, 그 밑바닥에다 '일반성=보편성'을 깔아놓는 데 있어서 '간접 체험=독서 경향'만큼 소중한 밑천은 없다고 단정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많이 알수록 '이야깃거리=쓸거리'가 불어나며, 그런 경지의 쉼 없는 개발이 창조력의 근원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제 간단한 도식을 따오면 '독서 체험의 누적=창조력 배가'에 이르는 셈인 것이다.” <김원우, ‘작가를 위하여’>

“30년 동안 서구권 학생들은 역사적 지식이라는 본질이 빠진 교육을 받았다. 담론도 없고 연대순으로 되어 있지도 않은 단편적인 '사건들'만 배운 것이다. 그들은 빠르고 포괄적인 독서의 핵심 기술이 아니라 훌륭한 논문을 작성하기 위한 정형화된 분석법을 훈련했다. 또 로마제국의 백인대장이나 유대인 대학살 희생자들이 곤경에 처하게 된 이유나 과정에 관하여 분석하고 연구하는 대신 그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해보라는 과제나 받았다.” <니얼 퍼거슨, ‘시빌라이제이션’>

“그는 자기의 독서론에 대해 언급할 때와 똑같은 말투로 밤늦게까지 의욕적으로 책을 읽곤 했는데, 가스톤은 그가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지니고 있는 지식이 얼마나 정확한지 확인하기 위해 책을 사는 것을 알았다.” <마르케스,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마지막은 미국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의 1999년도 ‘올해의 모델’인 헤더 코저가 파티에서 소개받은 ‘악마의 시’ 작가 살만 루슈디에게 한 말입니다. “죄송해요. 선생님, 선생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요. 솔직히 책을 별로 안 읽는답니다, 선생님. 책을 읽으면 피곤하고 졸리거든요. 하지만 선생님, 어떤 책은요, 특히 '보그' 같은 책은 유행을 따라잡기 위해 꼭 읽어야 해요.” <루슈디, ‘조지프 앤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넘치고 넘칩니다. 책을 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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