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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우윳가루
한만수 2019년 02월 07일 (목) 00:11:56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교사라는 직업은 꿈의 직장입니다. 2017년 교육부 진로 교육 현황조사를 보면 고교생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 1위가 교사, 2위가 간호사, 경찰, 군인, 기계공학 기술자 및 연구원 순서입니다. 교사를 선호하는 이유는 적성이나 교육에 대한 철학보다는 단지 안정된 직업이라는 점 때문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는 가장 선호하는 직업 1위가 택시 운전사였습니다. 그다음으로 자동차엔지니어, 다방 DJ, 은행원, 교사는 5위였습니다. 교사에 대한 선호도가 낮은 만큼 학생들보다 교사의 숫자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초등학교의 경우는 2년제 교육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초등교원양성소에서 18주간 교육을 받으면 준교사 자격증이 주어졌습니다. 교육대학을 졸업해도 지금의 4년제보다 절반 수준의 교육을 받았지만, 교육자로서의 사명감이라든지 자긍심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사회에서도 교사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컸습니다.

여름날 교실 공사를 하느라 느티나무 밑에서 수업을 받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학생들은 모두 그늘 밑에 앉아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땡볕 아래서 말씀을 하시다가 그늘 밖에 홀로 앉아 있는 ‘창렬’이라는 학생을 칭찬하셨습니다.

“박창렬 좀 봐라. 친구들에게 그늘을 양보하고 혼자 양지쪽에 앉아 있지 않으냐. 저런 모습이 바로 희생정신이라고 하는 거다. 얼마나 장하고 착하냐?”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 무섭게 몇몇 학생들이 일어나서 양지쪽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그늘 밑에 앉아 있던 학생들은 졸지에 배려심이 없는 나쁜 학생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면서 슬금슬금 양지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습니다. 요즘에는 선생님이 땡볕에서 수업을 진행하시지도 않겠지만,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해서 양지쪽으로 가는 학생들도 드물 겁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담임선생님한테 과외공부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요즘에 만약 담임선생님이 자기 반 학생들을 과외지도한다면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법적으로 처벌을 받을 겁니다. 그 시절에는 산골에 있는 학교라 그런지 모르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근처에 사는 학생들 대여섯 명이 저녁을 먹은 후에 선생님 댁으로 책가방을 들고 갔습니다.
선생님 댁 저녁이 늦을 때는 우리끼리 숙제를 하기도 하고 장난을 치면서 선생님이 오시길 기다렸습니다. 어느 때는 선생님이 거나하게 취해 계실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학생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자습을 시키거나, 오늘 학교에서 배운 것 중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질문을 하라는 식으로 밤길을 걸어온 학생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숙직을 하시는 날은 학교 숙직실에서 과외공부를 했습니다. 하루는 과외공부를 시작할 때가 됐는데도 선생님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한 친구가 벽장에 우윳가루가 있으니 몰래 먹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때는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한 학생들에게 숙직실 부엌에서 끓인 옥수수죽을 나누어 줬습니다. 벽장에 보관하는 우윳가루는 옥수수죽에 타주는 것입니다. 다들 저녁은 먹었지만,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던 시절이라 반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종이로 수저를 만들어서 앞을 다투어 입안에 퍼 넣고 있을 때 선생님이 오시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서둘러 벽장문을 닦고 바닥에 흘린 우윳가루를 닦아 내고 얌전히 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입안에 가득 들어 있는 우윳가루를 삼킬 수가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고 선생님을 바라봤습니다.

“너희들 우유 먹었지?”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한 학생이 기침을 했습니다. 기침을 하니까 우윳가루가 입 밖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전체 학생이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르도록 기침을 했습니다. 순식간에 우리들과 선생님은 우윳가루를 뒤집어썼습니다.

“야, 이놈들아. 그러다 잘못해서 우윳가루에 목에 메면 죽는 수가 있어.”
선생님은 화를 내시지 않고 제자들의 등을 두들겨 주시거나, 손가락을 입안에 넣어서 침이 묻은 우유를 파내 주셨습니다. 모두 기침을 멈출 무렵에는 우유 범벅이 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배가 아프도록 웃어젖혔습니다.     

과외비도 매달 현금으로 내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동네 이장한테 수고비로 주는 수곡이 가을에 나락 한 말, 봄에 보리 한 말 정도였습니다. 담임선생님한테는 봄에 보리쌀 한 말 가을에 쌀 한 말 정도를 갖다 줬던 것 같습니다.

1960년대 중반만 해도 초등학교 선생님 월급이 1만 원 안팎이었습니다. 요즘의 9급 공무원에 속하는 5급 공무원 월급이 80킬로짜리 쌀 한 가마니 가격인 5천 원 정도였습니다. 라면 한 개에 10원 정도 하던 때였으니까 그나마 월급을 많이 받는 쪽에 속했습니다.

그런 형편에 학생 대여섯 명이 봄가을에 갖다 드리는 쌀 대여섯 말이 살림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밤마다 학생들을 가르치신 것은 한 명이라도 더 중학교에 진학시켜야 한다는 선생님으로서의 사명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겨울날 난롯불이 사위어 가는 컴컴한 교실에서 열심히 수업을 진행하시는 모습이며, 늦은 봄날 오후 식곤증에 눈꺼풀이 내려앉을 터인데도 칠판 앞에 서 계신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요즘도 인터넷기사를 보면 어느 초등학교 동창들이 30년 전, 혹은 40년 전 초등학교 은사님을 모시고 뜻 깊은 한 때를 보냈다는 내용이 간혹 나옵니다. 40년이 지나도록 담임선생님의 가르친 은혜를 잊지 못하는 이유도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그만큼 열과 성의를 다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교사들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先生)으로서의 사명감보다는 직업인으로서의 가치를 더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학교 선생이 어머니 청부 살해를 의뢰하기도 하고, 초등학교 여선생은 어린 제자를 상대로 몹쓸 짓을 하기도 하고, 일부 선생들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원에 못 가는 학생들에게 은근한 압력을 주기도 한다는 씁쓸한 신문기사를 읽은 적도 있습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우물을 흐리는 격이 되기는 하겠지만 작금의 교직관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학생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선생들이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배우는 학생들도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당(唐)나라 승려 도선(道宣)말은 전설이 되어버렸지만, 최소한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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