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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자금 은행의 몰염치
정일환 2019년 02월 07일 (목) 00:13:10

대기업 고위 임원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해외에공장을 짓거나 설비 투자를 할 때마다 고민에 빠집니다. 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해당 국가에는 국내 은행 지점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업무처리 수준이 너무 낮아 별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 때문에 글로벌 은행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이런 은행들은 상세한 사업계획서를 요구한다는 겁니다. 기밀이 유지되어야 하는 사업 내용을 경쟁국에 고스란히 공개하는 셈이죠. 물론 비밀유지 각서 등이 작성되지만, 불안한 건 사실입니다.”

국내 최대 은행인 KB국민은행 노동조합이 파업을 강행했다가 비웃음만 산 채 슬그머니 직장에 복귀했습니다. 파업의 명분이나 과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은행 문을 걸어 잠그는 아날로그 방식의 파업은 디지털금융 시대 고객들의 냉소를 불렀습니다. 어떤 고객들은 “파업하는 줄도 몰랐다”고 합니다. 모바일과 인터넷뱅킹으로 은행 일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은행원들의 업무 거부는 오히려 그들의 낮은 존재가치를 스스로 보여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은행의 수익구조를 보면 차가운 반응은 더욱 이해가 갑니다. 지난해 1년 동안 은행들이 고객들로부터 거둬들인 이자 이익은 40조 원에 육박합니다. 떼먹힌 돈과 비용 등을 빼고 순수하게 남는 이익만 40조 원입니다. 

12월 금융감독원이 밝힌 ‘국내 은행의 2018년 3분기 영업실적’에 따르면 국내 은행이 거둔 이자 이익은 3분기 동안에만 30조 원입니다. 아마 4분기 실적이 나오면 40조 원에 달할 겁니다. 그러나 단순히 액수 문제가 아닙니다. 글로벌 은행들의 이자수익 비중은 60%를 넘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국내 은행들은 전체 수익 중 83%가 이자 장사로 벌어들인 돈입니다. A고객에게서돈을 받아 B고객에게 빌려주고 이자 차액은 은행이 챙기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돈놀이가 우리나라 은행이 하는 일의 전부라 해도그리 틀린 말은 아닙니다. 

2015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 중 ‘금융시장 성숙도’에서 한국은 87위를 기록, 우간다(81위)보다 여섯 계단이나 뒤졌습니다. 이듬해 조사에서도 한국은 80위로 우간다(77위)에 밀렸습니다. 금융그룹 회장이 모인 만찬에서 최경환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건배사로 “우간다 이기자”를 외치는 수모도 당했습니다. 2017년이 되어서야 한국은 74위로 우간다(89위)를 간신히 제쳤습니다. 

WEF 조사는 신뢰성 논란을 낳기도 했지만, 경쟁력이 우간다에 뒤진다는 평가를 받은 이유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고개가 끄덕여집니다.WEF 조사는 자국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입니다. 세계를 무대로 뛰는 한국 기업인들이 기대하는 수준에 비해 은행들의 서비스는 한참 못 미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인 국내 은행들은 금융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실물경제 지원능력이 매우 낮습니다. 대기업에겐 약에 쓰려면 없는 존재이고, 중소기업에겐 비 올 때 우산 뺏는 밉상입니다. 늦게나마 국내 은행들은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홍보에 열을 올립니다. “○○은행, 베트남 현지 은행 인수”라거나 “○○은행, 인도네시아 ○위 은행 인수 협상” 등의 기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헛웃음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동남아 국가 교민 출신 지인은 “모 은행이 인수했다는 현지 은행은 우리나라로 치면 마을금고 동네 지점 수준도 안 되는규모”라면서 “그 나라는 은행만 2만 개가 넘어 순위가 의미가 없는 업종”이라고 혀를 찼습니다.

파업은 노동자의 권리 중 하나입니다. 연봉 많이 받는다고 파업하지 말라는 논리는 배 아픈 소리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따져보고 싶은 것은 파업의 염치입니다. IMF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으로 꺼진 생명을 연장해놓고 20년이 넘게 흐른 지금까지 오직 고객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다른 고객 주머니를 터는 이자놀이 외에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은행이 과연 영업점 문을 닫아걸어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겹겹이 둘러쳐진 규제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외 진출에는 왜 진즉 관심을 두지 않았는지 궁금해집니다. 똑같은 환경에서 영업하는 글로벌 은행 한국지점들은 매년 수천억 원의 이익을 자국 본사에 배당해 먹튀라는 비판을 받고는 합니다. 우리나라 은행들도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을 한국으로 송금했다가 해당 국가에서 비난받는 모습을 좀 봤으면 좋겠습니다. 

아! 은행이 열심인 일이 있긴 있네요. 국민은행 채널1·2·3, 신한은행 라응찬계와 신상훈계, KEB하나은행 김승유라인과 김정태라인. 우리은행 상업은행파와 한일은행파. 내부에서 파벌 만들어 아군끼리 싸우는 일입니다.

                                                                                                           

 

정일환 

경향신문, 뉴시스 등을 거쳐 현재 이투데이 사회경제부장. 
호연지기로 세상을 보자는 취지의 칼럼 ‘Aim High’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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