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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다가오는 대만 총통선거
허영섭 2019년 03월 26일 (화) 00:35:19

대만 정치권이 내년 초 실시되는 차기 총통 선거를 앞두고 움직임이 분주하다. 무엇보다 집권당인 민진당 내부에서부터 이상 기류가 감지된다는 점에서 선거 구도가 복잡하게 흘러가는 분위기다. 내년 5월로 임기가 끝나는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재선을 향해 출사표를 던진 가운데 라이칭더(賴清德) 전임 행정원장이 도전장을 내민 것부터가 이례적이다. 차이 총통의 리더십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은 반면 라이칭더의 출마 선언으로 자칫 당내 분열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야당인 국민당에서는 지난 총통 선거에 나섰던 주리룬(朱立倫) 전 신베이 시장과 왕진핑(王金平) 전 입법원장이 대권 도전 의사를 표명한 가운데 우둔이(吳敦義) 주석도 출마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마잉지우(馬英九) 전 총통의 재등판 가능성도 점쳐진다. 국립대만대학 의대 교수 출신으로 2014년 정계 입문 이래 줄곧 무소속을 유지하고 있는 커원저(柯文哲) 타이베이 시장의 출마설이 나도는 데다, 그동안 총통 선거에 네 번이나 도전했던 숭추위(宋楚瑜) 친민당 주석의 거취도 주목된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쟁점은 역시 중국과의 관계 설정 및 경제 활성화 문제다. 대만이 처한 경제적 곤경이 중국의 간섭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에 있어서는 서로 연관된 문제다. 특히 민진당이 정권을 차지하면서 중국 관광객이 대폭 줄어드는 등 대만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차이 정부가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 국가들로 눈길을 돌려 신남향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중국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자는 취지다. 인도와 호주, 뉴질랜드 등도 신남향 정책 대상에 포함되지만 아직 가시적인 효과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현역 기업인인 궈타이밍(郭台銘) 회장의 출마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침체된 경제 상황과 연관이 없지 않다. 세계 최대 전자기기 위탁생산기업 폭스콘을 이끌어가는 그는 미국에서 경제인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부터 정계진출 의사를 표시해 왔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진당 텃밭인 가오슝에서 국민당 돌풍을 일으킨 한궈유(韓國瑜) 시장이 잠재적인 후보로 꼽히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그동안 민진당의 실책으로 가오슝 일대에서 도시빈민 떠돌이인 ‘베이퍄오(北漂)’가 발생했다며 경제 회복을 최우선 목표로 제시한 주인공이다.

중국과의 마찰로 인해 대만의 국제 활동이 난관에 부딪친 것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차이 총통의 취임 이래 3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기존 22개 수교국 가운데 5개국이 떨어져 나갔으며, 유럽 유일의 교두보인 바티칸도 중국과의 관계개선 움직임을 보이는 중이다. 과거 옵서버 자격으로나마 참가가 허용됐던 세계보건총회(WHA) 참가가 봉쇄됐으며, 인터폴이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가입도 막혀 버렸다. 대만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국제무대 활동에 제약을 가하겠다는 중국의 강경한 입김이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국민당 노선은 민진당에 비해 훨씬 중국 친화적이다. 마잉지우의 재임 당시 이미 양안 경제협력기본협정이 체결됐으며, 앞으로도 중국과의 영토 갈등을 평화조약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양측이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 표면적으로는 똑같이 ‘현상 유지’를 내세우고 있으면서도 실제 정책에 있어서는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대만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국민당이 과거 장제스(蔣介石) 때부터의 정치 이념을 이어받고 있는 반면 민진당은 토착민들의 이념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진당이 정권을 넘겨받아 장제스 시절의 흔적 지우기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거기에 연유한다. 국부로 칭송받는 쑨원(孫文)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동상을 철거하는가 하면 교과서 내용까지 뜯어고치고 있다. 과거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 작업도 국민당을 겨냥한다. 양대 정당 간에 심각한 갈등이 초래된 이유다. 국호를 변경하자는 주장이나 탈원전 정책도 정치적 이념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밖에 북한의 핵 협상 진척에 따라서는 핵무장 문제도 이번 대선에서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소지가 다분하다.

이처럼 민진당과 국민당이 경쟁적으로 선거 이슈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커원저 시장의 활약도 돋보인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기회에 몇 차례 연설에서 정치권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 하나의 사례다.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초래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거론하며 “거짓말을 했다고 물러나야 한다면 대만에는 정치인들이 한 사람도 배겨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법을 어긴 사람들이 더 큰 목소리로 떠들어대서는 법치주의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자체들의 부분별한 복지정책을 가리키며 “미래 세대에 빚을 남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현재 민심의 저울추는 국민당 쪽으로 기울어진 양상이다. 지난해 11월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결과다. 차이 총통이 국정 지지율에서 상당한 하락세를 겪은 반사이익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별로 따져보면 여권 소속인 라이칭더가 가장 앞서가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국민당 후보들과의 양자 대결이나 커원저가 출마할 경우의 3자 대결에서도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미 타이난 시장을 지낼 때부터 당내에서 차기 선두주자로 간주돼 온 주인공으로서의 위상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상황이 유동적이다. 특히 각 당의 경선을 거쳐 투표일이 임박하게 되면 중국의 간섭도 심해질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에도 마지막 선택은 대만 국민들의 몫이다. 독립을 원하든, 통일을 원하든, 아니면 현상 유지를 선택하든 2300만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정할 문제다. 벌써 두 차례나 정권교체를 경험하면서 양대 정당이 추구하는 노선에 대한 유권자들의 가치판단도 내려졌을 법하다. 차기총통 선거는 내년 1월 11일 실시될 예정이다. 입법위원을 선출하는 총선도 함께 치러진다. 그 모든 과정을 세계가 주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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