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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연명의료의향서
방석순 2019년 04월 04일 (목) 00:09:58

이곳저곳 모임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 화제가 건강입니다. 건강을 해쳐 애를 먹고 있다는 얘기, 건강을 위해 무슨 운동을 어떻게 한다는 얘기들이 대종입니다. 그러다 보면 연명치료에 대한 얘기가 따라 나오기도 합니다. 일찌감치 연명치료 거부를 밝히는 의향서를 작성해 두었노라, 마치 선언하듯 확신에 찬 소리를 들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때면 혼자 겁쟁이가 된 것처럼 주눅이 들기도 합니다.

임종에 이르렀을 때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등 별 의미 없는 치료로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더하고 임종 과정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혀 두는 것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입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결정과 가족의 동의로 구차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임종할 수 있도록 하자는 뜻으로 지난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 일명 ‘존엄사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지난달 28일에는 중단․보류할 의료시술의 폭이 더욱 확대되고, 동의를 받아야 하는 가족 범위는 한층 축소되어 법의 시행이 훨씬 용이하게 개정되었습니다. 정부 공인 양식의 의향서를 작성해서 주요 병원이나 사회단체 등 지정 기관에 등록하면 그 효력이 발생하게 됩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꽤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졌었고, 말로는 그래야 한다고 떠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어느 민간단체가 의향서의 작성과 등록을 돕겠다며 보내온 초대 메일을 받고서는 은근한 두려움이 없지 않았습니다. 언뜻 ‘기적’이라는 꼼수(?)가 머리에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 가운데 벌써 두 번이나 저세상 언저리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선배가 있습니다. 선배는 젊은 시절 힘이 장사였습니다. 마음은 비단결 같아서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는 성품입니다, 혹시 그런 심신의 조건이 칠순을 넘긴 나이에 겪은 기적 같은 경험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선배는 교회에서 자신이 앞장서 계획한 봉사활동을 의논하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답니다. 심장박동이 중단된 위급 상태. 마침 일원 중에 의사도 있어서 심폐소생술을 해가며 병원으로 옮겼지만 거의 30분이 지나도록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병원 측도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함께 따라간 의사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 보자며 가슴을 누르는 순간 거짓말처럼 선배가 깨어났답니다. 보통 호흡과 박동을 몇 분만 놓쳐도 뇌세포가 망가진다는데 선배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짱히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또 한 번의 사건은 헬스클럽에서 일어났답니다. 체력단련을 하고 있던 어느 순간 마치 나무토막처럼 넘어진 것입니다. 뒤늦게 연락이 닿아 들이닥친 아들에게 주위 사람들이 모두 별 가망이 없다고 말했지만 선배는 이번에도 기적같이 말짱하게 되살아났습니다. 선배는 요즈음 성경 공부와 봉사활동으로 덤으로 얻은 삶을 보람차게 살고 있습니다.

몇 년간을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다 깨어난 사람들 이야기도 심심찮게 듣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슬쩍 물어보았습니다.
"연명치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젊은 사람이라면 몰라도 살 만큼 산 사람이라면 당연히 거절해야지요. 만약 당신이 그런 상황이라면 나는 단호히 물리칠 거예요."
아내는 원래 이렇게 좀 모진 데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 만약 제가 간첩임을 알게 된다면 지체 없이 고발할 거라고 말해서 무척 섭섭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자수를 권하는 것도 아니고 당장 고발하겠다니… 에이, 독한 사람!’

그런데 저는 아내가 임종에 이르러도 선뜻 손 놓고 그냥 떠나보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내처럼 단호하지 못하고 뜨뜻미지근한 성격이기 때문일까요.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어도 곁에 두고 체온이라도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확인해 보나 마나 아내로부터는 핀잔을 듣겠지요. 시원찮은 남자라고.

사실 생과 사를 오락가락하는 단계에선 환자가 자신의 연명을 위한 치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도 없습니다. 자식의 입장에선 부모와의 영결에 대한 아쉬움뿐만 아니라 부모 자식 간 도리에 합당한지, 주위의 시선은 어떠할지, 염려되는 일이 많아 더욱 결정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담당의사 역시 만약의 경우를 우려해 선뜻 의료 중단을 결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본인의 의식이 멀쩡할 때 미리 확실히 의사를 밝혀두는 것이 모두를 위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아내는 등 떠미는 쪽이지만 그래도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번 진지하게 이야기를 풀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가족들의 이해와 동의가 필요한 절차니까요. 그리고는 어느 날 공인기관을 찾아가 당당히 신고해야겠지요.
“네, 사전 유서, 아니, 의향서 쓰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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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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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72.XXX.XXX.117)
ㅎㅎㅎ
어느쪽애 속하는지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래도 얼마간 연명치료 기대해 보다가 너무하다 싶으면 그냥 떠나도록.... 특히 환자의 고통이 견딜 한계를 넘었을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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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6 11: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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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순 (58.XXX.XXX.51)
이해해 주시니 감읍하옵니다. ㅠㅠ
답변달기
2019-04-07 21: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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