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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3가의 시간
김창식 2019년 05월 08일 (수) 00:11:27

며칠 전 종로3가에 나갔습니다. ‘볼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들을 일’이 있어서였어요. 그곳  명소 중 한 곳인 국일관에 자리 잡은 한 다단계 회사기 진행하는 무슨무슨 사업 설명회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지인이 참석을 강권해서 우정출연한 것입니다. 오래전에 가본 교회 부흥회에서처럼 열기와 몰입도가 장난이 아니었어요. 사업에 도통 관심이 없는 나는 졸다 깨다를 되풀이했지만요.

설명회가 끝나고 거리로 나오니 그곳은 끈 떨어지고 줄 떨어진 어르신들의 천국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떠올리게 하는, 백구두에 베레모, 라이방을 착용한 올드패션(Old-fashioned) 노인들이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빙빙 돌거나, 마이클 잭슨처럼 뒷걸음질칩니다. 그곳에서 마주하는 시간의 모습은 이상했어요. ‘백 투 더 패스트(Back to the Past)!’ 그곳의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다라고요. 멈추어 있거나, 술래잡기를 하거나 뒤쪽 여백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요. 그런데 아까부터 평소와는 다른 공기의 흐름이랄까 석연찮은 느낌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는 거예요. 그것이 무엇일까?

말이 나온 김에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볼까요? 철학, 문학, 과학 등 각 분야의 셀럽(Celebrity)들은 시간의 개념, 또는 성격을 규정하거나, 시간을 원용(援用)해 시간이 아닌 다른 것을 논합니다. 교부(敎父)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에 신을 끌어들입니다. “신은 시간의 밖, 그러니까 영원한 현재에 존재하는 자”라는 것이에요. 생(生)철학자 베르그송은 시간의 양태(樣態)인 ‘순수지속(duree pure)'을 강조합니다. “순수지속은 시계열 상의 흐름이 아니라 직관에 의한 마음속의 시간 감각이다.”

실존철학자 하이데거는 “유한자(有限者)로서의 인간의 숙명과 존재(Sein)의 불완전성은 시간과의 관계에서 규명된다”고 설파하는군요. 그렇다면 보통 사람인 우리도 시간에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말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시간을 앞질러 죽음을 선취(先取)할 수만 있다면! 작가 보르헤스는 조금은 맥 빠지면서도 섬뜩한 말을 던집니다. “시간은 우리의 본질이자 존재의 핵심이지만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환영일뿐이다.” 위 석학들의 시간에 대한 언급은 비슷한 듯 다른 듯 알쏭달쏭하기만 합니다.

보통 사람에게는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설명한 ‘시간의 상대성’이 조금은 더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을는지요? “서로 다른 상대 속도로 움직이는 관측자들은 같은 사건에 대해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난 것으로 추정하지만 물리법칙의 내용은 관측자 모두에게 동일하다.” 여전히 만만치 않습니다. 뒤집으면 ‘시간은 여여(如如)하나 장소와 상황에 따라 느끼는 자에게 길이가 각기 다르게 여겨진다’쯤 될 것이에요. 언뜻 생각해도 적막한 산사의 시간과, 시장통의 시간, 여의도 증권가의 시간은 다를 것입니다. 협곡에 낀 시간과,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 한가운데의 시간, 눈먼 물고기들이 오가는 바다 밑 시간도 서로 다를 법합니다.

종로3가! 그곳은 정말 이상한 곳이에요. 아까 글 서두에서  평소와는 다른 공기의 흐름을 감지했다고 했죠. 피카디리극장 옆 기억도 삼삼한 ‘종삼’ 골목으로 접어드는데 그 느낌이 끈질기게 따라와요. 누가 나를 훔쳐보는 느낌? 아니면 이웃집 베란다에 널린 빨래를 보는 느낌? 원래 빨래의 종류나 때깔은 비슷비슷하잖아요? 사는 동네 수준에 따라 질적인 차이가 있겠지만서도. 멈추어서 주위를 휘둘러봤죠. 낯익으면서도 낯선 그 기시감의 정체가 무엇일까? 아, 그곳 노인들 사이에 또 다른 내가 서 있었어요! 가까운 미래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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