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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열차와 목욕탕 물 한 바가지
신아연 2008년 02월 14일 (목) 01:42:02

지난 달 말 즈음하여 이후로 한국에 있는 저는 이 달 초 지인의 배려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 열차의 특실을 탈 기회가 있었습니다. 넉넉한 공간과 고급한 분위기에서 오는 안락함이 저에게는 모처럼 고국을 찾은 흥분과 버무려져 쾌적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특실 승객들에게는 마실 물도 거저 주고 신문도 맘대로 집어갈 수 있고 객실 내에서 이어폰 사용도 할 수 있다니 아마도 비행기에 버금가는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 같았습니다.
같은 부산을 가면서도 일반석 승객들과는 구분되는 대우를 받는다는 내심의 우쭐함이 앞뒤 사람들에게 묘한 동질감마저 자아내게 하며 특권 의식 비슷한 유치한 감흥조차 일게 했습니다.
말하자면 요금으로 차등이 매겨지는 객석구분으로 인해 ‘돈이 곧 인격이자 품위’라는 ‘아주 오래된 농담’에 가장 맞춤한 상황에 제가 처했던 것입니다. 제 속의 그런 천격스러움조차 예전엔 미처 개발되지 못한 ‘자아의 일면’이라도 되는 양 저는 그날 ‘돈의 맛’에 달콤하게 취했더랬습니다.

행여나 승객들에게 폐를 끼칠세라 긴장된 자세로 다소곳이 통로를 오가는 승무원들의 조심스런 태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객실을 떠나 다음 칸으로 이동할 때마다 객석을 향해 돌아서서 공손하다 못해 굳어진 표정으로 목례를 하는 것은 왠지 생경하고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반 객실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지 경험이 없는 저로서는 알 길이 없었지만 그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겠지요.

‘뭘 저렇게까지’ 하는 생각에 슬그머니 불쾌감이 들면서, 인위적이며 억지스러운, 마치 대놓고 아부를 받는 것 같은 면구스러움에 ‘역시 돈이 좋기는 좋다’던 내밀한 허영심이 들통난 것 같아 무안해졌습니다.

KTX 특실 서비스와 승무원들의 친절을 최대한 누리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요금을 지불한 승객들의 당연한 권리일 것입니다. 그것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와 친절의 본질에 견주어 어색하고 거슬리는 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승객의 안전과 쾌적한 여행을 최대한 돕기 위해 승무원이 동승을 한다고 할 때, 한 객차를 떠날 때마다 매번 목례를 하는 절차는 승객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어떤 의미인지 저로서는 도무지 헤아릴 길이 없었습니다. 그깟 돈 좀 더 내고 탔더니 마음에도 없는 목례를 받나 싶어 별로 유쾌하지 않기만 했습니다.
KTX 특실에서 한껏 기분을 내던 제게 승무원들의 목례는 ‘옥에 티’이자 쓸데없는 ‘사족’으로 비쳤던 것입니다.

한편 이런 유의 ‘과잉 접대’가 있는가 하면 어처구니 없는 박대를 당할 때도 있습니다.

무거운 짐이나 커다란 가방을 들고 택시를 탈 때, 그냥 자리에 앉아 손님이 짐을 차에 올리는 동안 멀뚱히 바라만 보는 운전기사가 그런 경우일 것입니다. 민첩하게 올라타지 않는다고 지청구를 듣지 않게 된 것만으로 ‘예전에 비해 택시 서비스 좋아졌다’고 해야 할까요.
이럴 때는 반대로 ‘내 돈 내고 왜 이런 대접밖에 못 받나’ 싶어 불쾌해집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두 경우 모두 문제는 서비스의 본질에서 어긋나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특실이라도 쾌적하고 안락한 공간 제공과 친절을 위한 최선의 태도면 됐지 생뚱맞은 목례는 또 웬 말이며, 짐 올리고 내려주는 개인 도움을 받자고 택시를 타는 거지 기사가 물끄러미 바라만 볼 바에는 버스 타고 말지 구태여 차비 더 줘가며 택시 탈 필요가 없지 않나 말입니다.

여하튼 그렇게 부산을 다녀온 며칠 후 대중 목욕탕을 갔습니다.

남들처럼 예뻐지고 싶어서 때를 밀어주는 아줌마에게서 오이 마사지를 받았습니다. 얼굴에 오이를 갈아 붙인 후 거즈로 둘둘 말아 미이라가 된 저는 다른 손님에 밀려 오이 즙이 얼굴에 스며드는 동안 구석자리 접이 침대에 ‘방치’되었습니다.
한 10분을 그러고 있자니 벌거벗은 몸에 한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에그, 이 아줌마 춥겠구먼”

거즈로 덮은 탓에 앞의 사물을 분간할 수 없는 중에 그 목소리와 함께 뜨뜻한 물 한 바가지가 온 몸에 끼얹어졌습니다. 그 순간의 온열감은 온몸을 통해 이내 따스함과 안온함으로 퍼져나가면서 서비스와 배려, 친절에 대한 KTX처럼 너무 뜨겁거나, 택시 서비스처럼 차지도 않은 정확한 온도를 체감하게 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적당한 온도의 따뜻한 물 한 바가지에 담긴 자연스러운 친절처럼, 미안하거나 민망하지 않고, 어색하거나 생경하지 않은 체온 같은, 딱 고만한 온도만큼 배려하고 배려 받는 일을 자주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블로그 http://biog.naver.com/ayoun63 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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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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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창 (211.XXX.XXX.72)
하하하......글 참 잘쓰시는군요...여러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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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4 11:14:53
0 0
황경춘 (61.XXX.XXX.174)
그건 서비스가 아니고 예의지요. KTX 보통객실에서도 승무원의 출입시 목례가 있었는지
잘 눈 여겨 보지 않았습니다만, 일본 신칸센이나 특급열차에서도 승무원이 지정석 검찰을 할 때 심지어 여자 판매원까지가 출입시 목례를 합니다. 객실을 출입하며 "실례합니다"
혹은 "실례했습니다"하는 인사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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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0 23: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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