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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소동
정달호 2019년 05월 28일 (화) 00:16:01

우리 동네 산에 이따금 멧돼지가 출현한다는 이야기는 듣고 있었지만 그리 현실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산길에 멧돼지 경고문이 붙어 있어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지냈습니다.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 멧돼지가 출몰하여 사람들이 추적하는 장면을 보기도 합니다만 멧돼지의 위험은 여전히 먼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아마도 멧돼지를 직접 본 적이 없는 데다  멧돼지가 주로 사냥감으로만 인식돼 온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사냥꾼들이 멧돼지를 쫓는 모습을 보면서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몇 달 전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정원에서 산책을 하는데 나무 밑을 거칠게 파헤쳐 놓은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마당 곳곳이 마구 파헤쳐져 있었습니다. 작은 나무가 쓰러져 있기도 하였습니다. 생각지도 않던 멧돼지가 전날 밤에 바로 우리 집에 출현한 것입니다. 땅이 비교적 크다 보니 이렇게 험하게 파헤쳐진 곳이 여러 군데라서 피해 현장을 돌아보며 망연하기만 했습니다. 정성껏 가꾸어 온 할미꽃 군락과 모란 군락을 뿌리째 뽑아내기도 했습니다. 멧돼지는 떼를 지어 다니는데 암컷을 중심으로 무리가 형성된다고 합니다. 이 정도 파헤친 걸 보면 아마도 한 마리 이상의 멧돼지들이 집 마당에 들어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주로 저녁 어스름에 동네에 내려오는 것 같은데 그날은 마침 대문을 열어둔 상태였습니다. 멧돼지 경고가 현실이 된 것이지요.

주변에 고구마 농사를 크게 하는 이웃이 있습니다. 이분은 노루의 피해를 막기 위해 수천 평에 이르는 농장 주변으로 노루 망을 쳐놓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끔 노루가 들어오는데 개가 나서서 노루를 잡거나 쫓아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노루에 더하여 멧돼지가 출몰하여 작물에 큰 피해를 줍니다. 멧돼지는 거칠고 힘이 세니 망으로 막을 수는 없어 포크 레인으로 농장 주변을 돌아가며 참호처럼 깊게 땅을 파 놓았습니다. 그야말로 전쟁터의 참호를 보는 것 같습니다. 참호를 파 놓은 이후로는 멧돼지의 피해가 없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참호가 있는 줄 모르고 들어왔다가 겨우 빠져나간 놈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이었습니다. 제가 서울에 와 있는 동안 우리 집에 멧돼지 소동이 또 있었습니다. 오후 늦게였습니다. 대문을 열어놓고 시내에 나갔다가 들어온 아내가 아래쪽 정원의 꽃들을 보며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멧돼지 한 마리가 땅을 파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놀라고 두렵긴 했지만 멧돼지가 눈치채지 못하게 살며시 위쪽 집으로 걸어 들어와 주민센터에 신고를 하였습니다. 다소 시간이 걸리긴 하였지만 주민센터와 경찰, 119구조대, 포수 등 여남은 명의 사람들이 와서 집 마당에서 그 한 마리 멧돼지를 쫓았습니다.

쫓긴 멧돼지는 이리저리 몰리다가 제일 높은 언덕으로 올라갔는데 막다른 곳에서 결국 포수의 총에 맞아 쓰러졌다고 합니다. 이 멧돼지는 한쪽 뒷다리를 절고 있었다고 하는데 떼를 지어 다니다가 올무 같은 것에 발이 걸려 부상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온전치 못해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때아닌 낮에 홀로 다니다가 문이 열린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왔던 것입니다. 만일 이 멧돼지가 부상이 없는 온전한 놈이었다면 무리와 어울려 다니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불쌍한 측면이 있는 사건이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멧돼지들은 겨울철이나 봄에 먹을 것을 찾아 농장의 작물들을 파먹거나 나무 밑을 파서 지렁이나 굼벵이 등 단백질을 함유한 연체동물들을 찾아 먹는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애꿎은 작물이나 나무들이 피해를 보고 결국 농장주나 집 주인이 손실을 입는 것입니다. 제 집에서도 수년 전까지는 노루 때문에 부심을 하였는데 그간 나무들이 제법 자라서 어린 나무의 보드라운 순을 좋아하는 노루는 더 이상 오지 않습니다. 겨우 노루 걱정을 덜게 되자 이제 멧돼지의 피해를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위험 동물인 멧돼지는 그간 포수들에 의해 많이 포획되거나 사살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동네에까지 침입을 하고 있어 더욱 철저히 대비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제주에서 멧돼지의 서식 통계는 잘 모르지만 노루의 경우는 적정 개체수가 6천 정도인데 한때 일 만을 넘어서서 작물에 대한 피해가 많아 당국은 노루를 위험 동물로 분류하고 포획 사살을 허가하였습니다. 지금은 개체수가 3천 정도로 급격히 줄어서 위험 동물 분류를 당분간 중단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 지역에서 서식하는 노루나 멧돼지는 나름대로 살기 위해 그들의 방식으로 활동하다가 인간과의 충돌에서 밀려나 개체수가 줄기도 하고 다시 늘어나기도 합니다. 이런 동물 외에도 꿩이나 까마귀 같은 것들도 농작물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이들이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를 해놓기도 합니다. 결국 자연을 놓고 인간과 동물이 서로 경쟁을 하는 셈입니다. 그 충돌의 접점에서 생태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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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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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mond (1.XXX.XXX.183)
제주도에 멧돼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는데
그놈들이 어디서 침범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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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8 12: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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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58.XXX.XXX.226)
글 잘 읽었습니다.
땅문서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 땅들은 애초에 그들의 땅이었을 것입니다. 인간들이 들어와 마구 파 헤지고, 담을 쌓고, 참호를 파고, 산을 깎아 밭을 만들고, 산허리를 잘라 그들의 통로를 차단하고...
그들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얼마나 미운 동물일까요?
그들에게 총이 없는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9-05-28 07:4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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