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신현덕 우리 이야기
     
‘피의 능선 전투’와 억장 무너진 현충일
신현덕 2019년 06월 14일 (금) 00:14:52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투가 멈춘 지 66년입니다. 오늘까지도 우리는 정전, 휴전, 종전의 개념조차도 정리를 못한 채, 안보 갈등과 대립 충돌 분열을 계속합니다. 저는 지난 40여 년 간을, 군 복무 중 전사(戰史)를 정리하면서 본 많은 자료들 때문에 드러내놓지 못하고 속앓이를 합니다.

그중 이승만 대통령이 ‘제1차 육해공군 전몰장병 합동 위령제’에 참석, 유가족을 위로하는 흑백사진을 잊을 수 없습니다.

 
◇6·25 전쟁이 계속되는 중에 우리나라 현충일의 모태가 된 ‘제1차 육·해·공군 전몰장병 합동 위령제’가 열렸다.
 
◇이승만 대통령이 상주가 되어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1952년 전선이 고착되어, 지루하게 소모전이 진행될 때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가슴에 상장(喪章)을 달았습니다. 대통령이 유가족과 함께 상주(喪主)가 되었습니다. 굴건제복을 안 했고, 대나무 막대기를 짚지 않았을 뿐입니다. 소복을 입은 여성이 울음을 참느라 입술을 앙다문 채 먼 곳을 응시하고, 한 여성은 슬픔을 참느라 고개를 숙이고, 다른 여성은 착잡한 표정으로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어린 아이를 안고 있습니다. 남편을 나라에 바친 청상(靑孀)이거나, 아들을 잃은 어머니일 겁니다. 이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아주 젊었더라도 지금은 90전후, 품에 안긴 아이는 전쟁 중에 살아남았다면 70을 넘겼을 겁니다. 국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상주로서 동병상련의 심정에서 유가족을 위무하는 모습에 분위기가 숙연합니다. 대통령이 (상주의 죄지은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장병들의 충성을 앞장서서 기리고 있습니다.

또 한 장은 위령제보다 한 해 전인 1951년 8월 강원도 양구군 북방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전투 때 찍은 것입니다.

 
◇전쟁 중 8월 한여름의 피의능선. 모든 가지가 포화에 찢기고, 부러져 겨울처럼 앙상하다. 전쟁 후 높이까지 낮아졌다고 한다.
 

종군기자도 아니면서 군대를 따라 진격・후퇴를 함께한 신의균 씨가 찍었습니다. 여기에 피의 능선 전투에서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긴 당시 보병 제5 사단 제36 연대장 황엽 대령(후에 보병 제5 사단장을 역임, 소장 예편)의 얼굴도 겹쳐 떠오릅니다.

피의 능선 전투는 아군-미군 제 2사단에 배속된 한국군 보병 제5 사단 36연대-이 싸워 이겼습니다. 승전에도 불구하고 엄청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군 신문 성조지는 이를 ‘피의 능선 전투’라 보도했습니다. 두 차례의 전투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치열했습니다. 아군은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월운리 북방과 도솔산을 연결하는 선(당시는 칸사스 선이라 칭했음)에서 방어하고 있었습니다. 북한군과 중공군이 이보다 북쪽에서 아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방어선을 구축한 것이 ‘피의 능선’입니다. 적군은 이 지역을 아군에게 빼앗기면 북쪽으로 멀리 밀려나야 하므로 방어에 사력을 다했습니다.

보병 제36 연대가 미 제2 사단에 배속됐습니다. 적으로부터 피의 능선을 탈취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미 육·해·공군의 막강한 화력을 지원받았습니다. 어마어마한 화력 집중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의 땅속 진지는 끄덕도 안 했습니다. 육탄 공격 이외의 방법이 없었습니다. 국군이 북한군의 총격에, 총검에 죽어갔습니다. 고지를 뺐고 빼앗기고, 적을 죽이고, 아군도 죽었습니다. 6일 간의 전투 끝에 피의 능선을 점령했습니다. 하지만 적의 역습으로 곧바로 밀려났지요. 닷새 뒤 아군이 재공격에 나서 나흘 만에 재탈환했습니다. 그 이후 아군이 계속 점령, 오늘에 이릅니다. 이 전투에서 36연대에서만도 158명이 사망했고, 224명이 실종 되었으며, 1,071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연대가 괴멸 수준이었습니다.

김일성은 얼마 뒤 피의 능선을 빼앗긴 책임을 물어 사령관 김웅과 군단장 방호산을 숙청했습니다. 그만큼 피의 능선 손실이 북한군에게는 아팠습니다.

1977년 가을부터 피의 능선 전투를 지휘했던 연대장 황엽 씨를 종로 5가 전매협동조합 사무실에서 자주 만났습니다. 만날 때마다 중국집에서 잡탕밥을 시켜 먹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피의 능선에서 꼬박 삼일을 굶으며 싸웠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퍼붓는 포화 때문에 식사를 능선까지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가 들려준 처절했던 피의능선 전투입니다.(보병 제5 사단 부대역사에 실렸음)
피의 능선은 적이 2개월에 걸쳐 요새화한 다음, 상자로 된 대인지뢰(註 흔히 목함 지뢰라고 부름)를 2,000발 이상 매설하고 북괴 제2, 제5 군단의 포병지원을 받고 있었다.
이때 연대는 미 전차 대대를 배속받았으며(중략)… 미 포병부대의 치열한 사격에도 적의 거점이 파괴되지 않아서 병사들의 육탄공격에 의존하여야 했다. 이 전투에서 1,000명 넘게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는 수목이 거의 없어질 정도로 가한 아군의 치열한 포격에도 불구하고 폭발하지 않은 적의 지뢰와 근접전으로 인한 손실이었다. 골짜기는 피바다를 이룰 정도의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생략)

피의 능선 전투 전적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강원도 양구군의 분지가 펀치볼(전적비에는 판치볼로 되어 있음)을 닮았다고 하여 펀치볼로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당시 서울에서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월운리까지 가는 길은 험했습니다. 전투 전적비를 찾는 일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한겨울 난방도 없던 시외버스를 타고 가며 강아지 떨 듯 덜덜 떨었습니다. 펀치볼 전투 전적비 비문의 일부입니다.
인류의 평화와 자유의 반역자 북한 괴뢰 제2 군단이 평화롭던 이 강산을 피로써 물들이게 되고 조국의 가쁜 숨이 경각을 다툴 때에 임들의 몸이 방패가 되어 우리 민족을 살렸고 임들이 흘리신 피는 이 나라를 건졌도다.
여기 임들의 빛나는 충성과 영웅 무쌍한 무훈을 천추만대에 전하고자 이 돌을 세우나니 비록 이 비석은 모래알이 될지라도 임들의 그 위대한 공훈은 해와 달로 더불어 길이 빛나리라.

지난 현충일 서울 현충원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피의능선에서 죽어간 이들의 형제자매, 후손들과 제1차 육해공군 전몰장병합동 위령제 사진 속의 어린 아이가 노인이 되어 참석하지는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이날 6・25 때 북한에서 공을 세워 북한 최고 훈장을 받은 이가 광복군이었고 “국군창설의 뿌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는 6・25 전쟁 때 북한을 위해 공을 세워 김일성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의 훈장에는 북한군이 죽인 국군과 우리 부모형제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피가 묻어 있습니다. 또 대한민국 영토를 유린한, 용서 못 할 짓도 그의 공적(功績)이 되었습니다. 6・25 때 북한군에게 부모를 잃은 고아와 자식을 나라에 바친 부모와 남은 형제들의 피멍 든 가슴에서부터 원망과 분노와 한의 눈물이 흘러내렸을 겁니다. 재향군인회도 부당하다고 말합니다.

북한군이 핵무기로 무장한 채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6·25 이후 닥친 누란지위(累卵之危)의 순간입니다. 전몰장병합동위령제 사진 속 “피 흘리신 호국의 영령 앞에 다시 한 번 맹서하자”는 구호가 우리에게 해야 할 일을 보여 줍니다.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는 대한민국 하나뿐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16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차단된IP (223.XXX.XXX.250)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바보들아
목숨을 희생한 순국선혈들을 꼭 그렇게 죽음으로써 애국하게 했어야 했을까?
그 분들을 살려서 애국하게 할 순 없었을까?

6.25 휴전협상은 1951년7월부터 시작되었다
이승만이 결사반대하여 심지어 휴전협정에 서명도 거부했다
문서에 유엔군과 인민군 대표들이 서명하기까지 2년이 걸렸다
심지어 협정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53년 6월18일에
이승만은 반공포로라며 2만7천명을 석방했는데
이미 일주일 전에 포로는 “자유송환”으로 합의를 봤기 때문에
이승만이 “반공”포로를 걱정해야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반면에 이로 인해 휴전협정 합의가 지연된 단 1.5개월동안
중공군이 대공세를 퍼부었고 그때 죽거나 다친
미군과 국군 전사상자가 7만명이 넘는다
미국 육군 전사를 보면
53년4월 아군 전사상자 4,343명
5월 7,570
6월 23,161
7월 29,629
중공군은 이 4개월 동안 13만4천명을 갈아없앴다
찾아봐라 숫자를

당신들은 휴전회담이 2년이나 걸리고
그동안 백만명, 단 6주 동안 20만명의 인명이 손실된 과정과
그 이유를 생각은 해 봤나?
그저 무조건 북괴 때문인가?

이 글에서 분개하는 피의 능선의 희생자들도
그 2년 동안 목숨을 잃었다
6.25 전쟁 중 전사상자들 대부분이 휴전선 근처에 목숨과 팔다리를 잃었다
2년넘게 이승만은 끝도없이 휴전을 반대하면서 젊은이들을 휴전선에 갈아넣었다

사진 속 이승만이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고
‘위로’라

과연 당신들은 분노를 어디에 대고 해야할까?
분노의 대상은 과연 당신들 ‘상식’처럼 뻔하게 정해져있을까?

당신들이 한다는 그 ‘나라걱정’이란 것이 도대체 뭔가?
당신들은 진지하게 애국이 뭘까 생각해본 적 있을까?
그냥 세뇌된 대로 정해진 ‘나라걱정’을 했겠지

죽을 자리 만들어놓고 댁과 댁 아이들을 밀어넣는 사람을 찬양하는 당신들
반대로
댁 아이들 죽을 자리를 피할려고 필사적인 사람을 비난하는 당신들

당신들은 당신과 당신 애들 죽이고 위로나 하는 사람에게 붙어라
난 나와 내 애들 살릴 사람에게 붙겠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서 애국하게 할 사람에게 붙겠다
답변달기
2019-07-02 12:31:22
0 0
신현덕 (122.XXX.XXX.51)
읽어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전면 남침한 북한군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김성일 김정일 김정은이 한 번이라도 이 일에 사과한 적 있나요?
지금까지 김일성이 사과한 것은 북한군의 8.18만행으로 도끼에 찍혀 죽은 25살 미군에 대한 것 뿐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국군과 미군이 북한과 일전을 각오하고 전쟁을 준비하자 북한이 겁을 먹었지요.
이제는 북한 핵무기 때문에 우리가 겁을 먹고 있습니다.
만약에 연평도처험 북한군이 전쟁행위를, 핵무기 뒤에 두고 재래식 무기로 시작한다면요?
핵무기를 이기는 무기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6.25로 죽어간 이들을 기려야 합니다.
답변달기
2019-07-09 11:04:51
0 0
박선술 (112.XXX.XXX.49)
너무나 감명깊게 읽었고 많은 사람이 동감하리라 믿습니다.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는 이 시기에 각성하는 사람이 많아 지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답변달기
2019-06-28 16:45:20
0 0
신현덕 (122.XXX.XXX.51)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9-06-30 17:51:16
0 0
오마리 (24.XXX.XXX.51)
감동 깊게 읽었습니다. 이루는 것은 시간이 걸리나 허무는 것은 순간이죠. 불과 2년 문정부 이후 이상하게 변해가는 대한민국 입니다. 이해할 수도 없는 해괴한 짓들이 도처에서 일어납니다. 기적처럼 일으켜 세운 국가를 아예 무너뜨리겠다고 작심하지 않고서야..... 그런데도 국민의 대통령 국정 수행평가 가 50% 이라니 50%는 누구입니까?
참으로 궁금하고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답변달기
2019-06-18 02:17:33
1 3
신현덕 (210.XXX.XXX.84)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9-06-25 11:18:34
0 0
안종찬 (59.XXX.XXX.229)
50년전 5사단 36연대에 소대장으로 근무하였습니다.그당시 피의능선 가칠봉으로 막연히 들었습니다만 지금 우리 국민들이 누리고 있는 번영이 얼마나 어렵게 얻어진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돌인지 물인지를 위시하여 곡학아세하는 부류들이 이글을 읽고 마음속 부터 반성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답변달기
2019-06-17 15:11:43
2 3
신현덕 (210.XXX.XXX.84)
감사합니다.
북한보다는 북괴란 표현이 적절하겠네요.
아직도 6.25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습니다.
한 번도 우리를 살갑게 대한 적도 없고요.
답변달기
2019-06-25 11:21:58
0 0
임성빈 (14.XXX.XXX.141)
역사는 후세의 권력가에 의해 다시 씌여진다지만, 이렇듯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 6.25를, 그 원흉을 잊지 않는 일은 받드시 기억되어야 할 것입니다.
답변달기
2019-06-16 21:54:48
2 0
신현덕 (210.XXX.XXX.84)
감사합니다
기억해야만 나라입니다.
답변달기
2019-06-25 11:23:59
0 0
황수현 (110.XXX.XXX.15)
지난 세월 민족의 고통을 까맣게 잊은 지금의 대한민국.
곳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가슴아픈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왜곡된 이 나라 역사가 젊은 청년들에게 바르게 전달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답변달기
2019-06-14 20:01:57
4 0
신현덕 (210.XXX.XXX.84)
감사합니다
휴일 즐겁게 보내십시오
답변달기
2019-06-16 15:46:23
1 0
차선우 (222.XXX.XXX.111)
참으로 가슴 아픈 전쟁이었군요.
후손들에게,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고
나라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이유로서 충분합니다.
모든 국민이 잊지말아야 할 대목이기도 하구요.
좋은 내용의 글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9-06-14 09:06:45
4 0
신현덕 (210.XXX.XXX.84)
감사합니다.
남북 화해와 전쟁포기는 꼭 이루어져야 할 일이지요.
나가서 통일도.
그러나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은 기록으로 남겨야겠지요.
잊지 않도록.
답변달기
2019-06-16 15:49:03
1 0
청유 (121.XXX.XXX.88)
장관들도 모르게 국회의원도 모르게 쥐도 새도 모르게 새벽에 허겁지겁 도망친 녀석이 누구냐?
답변달기
2019-06-14 07:07:32
0 1
신현덕 (210.XXX.XXX.84)
읽으셨군요.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9-06-16 15:49:41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