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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없는 짓
고영회 2019년 06월 20일 (목) 00:21:54

산길을 걷다가 쓰레기가 버려져 있는 것을 자주 봅니다. 대부분 그냥 내버려 두고 지나갑니다. 저도 그냥 지나갑니다. 그러다가 가끔 산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기도 합니다. 쓰레기를 주울 때, 주운 것을 버릴 곳까지 들고 갈 때 영 겸연쩍습니다. 내가 수고하여 여러 사람을 기분 좋게 하니 당당하게 자랑스럽게 주워도 될 것 같은데 괜히 열없이 느낍니다. 왜 그럴까요? 쓰레기를 줍는 것에 어떤 심리가 들어 있어서 그런 걸까요? 왜 그렇게 느끼는지 심리가 궁금합니다.

길바닥을 봅니다. 길바닥마다 시커먼 껌이 덕지덕지 붙어 있습니다. 심지어 방금 깐 보도블록에도 흉한 자국을 붙였습니다. 그 지저분한 모습을 바라보면 얼굴이 찌푸려집니다. 씹은 껌을 바닥에 뱉을 때 열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시내 길을 가다 보면 보행자용 교통신호등이 있을 곳이 아닌데 설치된 것이 자주 있습니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곳, 건널목 너비가 좁아 굳이 신호등이 필요 없는 곳에 신호등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대개 빨간 불이 들어와 있지만 다니는 차가 없으니 그냥 지나갑니다. 그렇지만 뒤통수는 간지럽습니다.

한적한 시골길에는 차가 별로 없는데도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져 있습니다. 저는 대개 그냥 지나갑니다. 이때도 뒤통수가 가렵습니다. 빨간 불일 때 건너면 안 된다고 배운 것이 머리에 박여서 그런지 지나가지만 머릿속이 영 불편합니다. 어느 방송에서, 멀찌감치 숨어서 운전자가 어떻게 하나를 지켜보고, 우직하게 차를 세우고 불이 바뀌길 기다리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프로그램을 본 적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신호등을 달아 놓고 신호를 지키는지 숨어서 지켜볼 게 아닙니다. 불필요한 건널목 신호등은 없애고, 한적한 길에는 깜빡이등을 설치하는 게 옳겠습니다. 사람들을 괜히 열없게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열없다’는 “좀 겸연쩍고 부끄럽다.”는 뜻을 지닌 말이라고 나옵니다. ‘열적다’는 사투리이고요.

예전에 국회의원 총선거,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여야 국회의원은 특권을 없애겠다는 약속을 많이 내걸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의 ‘특권 내려놓기’ 법안은 결국 물거품이 됐습니다. 선거가 지나자마자 자기가 뱉은 말을 까맣게 잊어버렸죠. 아니 일부러 잊어버렸겠죠? 참 열없는 짓입니다. 그 열없는 짓을 넘어, 요즘 국회에서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세비는 꼬박꼬박 챙겨갑니다. 국회는 10월 국정감사, 이어서 예산 심의, 내년에는 총선이라 손 놓을 게 뻔합니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 20대 국회가 법안을 심의할 시간은 지금부터 9월까지뿐입니다. 내년에도 7천여 개 법안이 한꺼번에 폐기되겠지요. 법안을 심의하지도 않으면서 새 법안을 계속 제출합니다. 국민이 열을 받습니다.

열없어야 하는 것, 열없을 이유가 없는데 괜스레 열없게 느끼는 것, 잘못된 제도 때문에 애꿎게 열없게 되는 것, 열없어야 하는데 뻔뻔하게도 그러지 않는 것. 그중에서 열없는 짓인데도 열없는 줄 모르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어떻게 해야 열없는 짓이란 걸 알게 해 줄 수 있을까요. 더 열이 오르면... 다음은 폭발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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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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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중 (61.XXX.XXX.9)
지적하신 건 하나도 빠짐없이 동감입니다 대책도 동감이구요
겨ㅣ속해 조흔글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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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2 19:01:20
0 0
고영회 (112.XXX.XXX.252)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계속 관심으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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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3 18: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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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근 (220.XXX.XXX.179)
우리들은 흔히 모르고 그랬다면 용서를 해 주는 편입니다. 사실 모르고 했는데 벌을 주는 것은 야박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사항을 모르고 잘못을 저지른 것은 오히려 가중처벌을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제는 음주운전은 안 된다는 것이 상식인데 모르고 운전했다는 것이 용서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잘못인 줄 알면 고칠 기회라도 있는데 모르면 고칠 기회마저 없어지니 더 문제가 되어야 하겠지요. 의사들에게는 이미 상식이 된 지식을 모르고 환자를 치료했다면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듯이, 이제 우리들도 모르고 했다면 용서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할 시점이 됐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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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0 10: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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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회 (112.XXX.XXX.252)
그 분야에서 일한다면 알아야 할 사항을 모르고 잘못을 저지른 것, 용서되지 않고요,
알면서도 철판 깔고 하는 것, 이것은 정말 혼내서 고쳐야 할 일이죠.
고견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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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0 23:07:20
0 0
노경아 (121.XXX.XXX.123)
글을 읽고 나서 ‘없다’가 접사로 들어간 말들을 살폈봤습니다. 어림잡아 140개는 될 듯합니다. 이런 말들은 주로 좋은 것, 혹은 가치중립적인 명사에 붙어서 그것이 없거나 쓸데없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어처구니없다(어이없다), 터무니없다, 버릇없다, 보잘것없다(볼품없다), 정신없다, 쓸데없다, 형편없다, 철없다, 속없다, 지각없다, 실없다[實-], 맥없다[脈-], 분별없다, 하릴없다, 뜬금없다, 염치없다, 속없다, 채신머리없다(처신없다/치신없다/채신없다), 멋없다, 싹수없다, 밥맛없다...


반면에‘있다’가 붙은 말은 터무니없이 적습니다. 재미있다, 맛있다, 멋있다, 뜻있다, 값있다처럼 듣기 좋은 말들인데, 20개도 채 안 되더군요.

우리가 부정적인 면에 너무 치우쳐 생긴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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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0 1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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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회 (112.XXX.XXX.252)
...없다는 주로 안 좋은 뜻으로 많군요.
하지만 허물없다, 빈틈없다 이런 식으로 좋게 쓰이는 말도 제법 있을 듯하군요.
귀한 의견, 정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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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0 17:4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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