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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뒷골목을 헤매는 사람들
노경아 2019년 07월 01일 (월) 00:09:16

서울의 종로는 추억의 거리입니다. 60대 이상 선배들과 종로의 선술집에서 만나면 땡땡거리던 전차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K 선배가 늘 선수를 치지요. “쉰다섯 살 아래로 손 들어! 너흰 전차 귀경도 못했지, 불쌍한 것들. 오늘 이 자리는 두 부류로 나눈다. 전차를 타 본 사람과 못 타 본 사람으로.” 그러고는 “일천구백육십사 년 서울로 이사와 중핵교를 댕길 때 늦잠을 자 부리나케 나간 날이면 막냇동생을 등에 업은 엄니가 보자기에 싼 ‘변또(도시락)’를 들고 달려와 전차를 멈춰 세우곤 하셨지. 돌아가신 우리 엄니가 엄청 보고 싶네. 자, 다들 한 잔해. 아니다, 전차 타 본 그룹만 한 잔” 하며 눈물을 쓱 닦곤 하지요.

눈치 없는 후배 M이 “트램(Tram) 말이죠? 노면 전차. 뭐 타 보진 않았지만…” 하고 잘난 척하려 들면 P 선배가 벌떡 일어나 “트램이고 나발이고 우리한테 그건 그냥 전차인기라. 젊은 날의 추억이 가득한 381호 전차” 하며 노래를 시작합니다.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강 건너 영등포에 불빛만 아련한데/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하나/첫사랑 떠나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서울에서 전차가 사라진 1968년 발표된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입니다. 노랫말을 몰라 젓가락 장단만 맞추다 보면 “첫사랑 떠나간” 마지막 소절에서 첫사랑이 떠올랐다며 L 선배가 그녀의 이름과 함께 ‘르네상스’를 외칩니다. 푹신한 의자에 파묻혀 브람스 음악을 함께 들었던 그녀랍니다.

L 선배가 “르네상스는 당시 최고의 음악감상실이었지”라고 치켜세우면 어김없이 W 선배가 “쳇! 무슨 소리야. 음악감상실 하면 세시봉이지” 하고 반론을 제기합니다. “클래식의 ‘클’자도 모르면서 겉멋만 들어 드나든 게 자랑이냐? 감미로운 통기타 소리 울리던 세시봉이 최고지.” L 선배가 그냥 있을 리 없습니다. “맞아. 술이나 한 잔해. 건배사는 이거야. 세시봉은 양아치, 르네상스는 신사!”

세시봉에도 르네상스에도 가 본 적이 없지만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1960~70년대 종로의 모습이 흑백 영화처럼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문을 열면 자욱한 담배 연기(당시엔 웬만하면 실내 흡연이 다 허용됐을 것으로 생각함) 속에 올드 팝송이 흐르는 음악감상실, 양쪽으로 팔걸이가 있는 푹신한 패브릭 소파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엘피(LP)판을 틀어 놓고 ‘오늘은 왠지’로 시작하는 끈적끈적한 멘트를 날리며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디스크자키…. 

내 기억 속 종로엔 ‘종로서적’이 크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20·30대 때 애용했던 약속 장소거든요. “거기서 만나” 하면 으레 종로서적으로 나갔죠. 나 같은 이들이 많은 탓에 서점 앞은 늘 북적였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머리를 굴린 청춘들은 ‘6층 문학코너’나 ‘4층 인문코너’에서 만났더군요.

돈 좀 있는 연인들은 종로서적 맞은편 화신백화점에서 데이트를 즐겼지요. 전형적 근대 건축물이었던 화신백화점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지금 그 자리엔 종로타운이 우뚝 서 있습니다. 

종로서적도 인터넷 서점과의 경쟁에 치이면서 문을 닫았습니다. 전 국민이 월드컵에 빠져 있던 2002년 6월 4일의 일입니다. 그날 우리 축구대표팀이 폴란드를 이기면서 국내 거의 모든 언론사가 ‘월드컵 첫 승리’ 뉴스에 집중했죠. 한국 최초의 서점 종로서적은, 그래서 너무도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물론 통탄한 이들도 많았을 겁니다. 안경환 당시 서울대 법대학장이 신문에 기고한 ‘종로서적이 망했는데 그깟 월드컵이 대수냐’라는 글을 읽으며 저 역시 분개했던 기억이 납니다.

종로서적은 2016년 겨울, 폐점 14년 만에 부활했습니다. 옛 종로서적 자리가 아닌 맞은편 종로타워 지하 2층(옛 반디앤루니스)에 자리를 잡았죠. 6층까지 이어진 좁고 가팔랐던 계단도, 서가 사이에 주저앉아 책을 읽는 이들도, 새로운 약속 장소를 알리는 형형색색의 포스트잇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이름만 같은 종로서적입니다. 그래도 반갑습니다. 오래전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으니까요.

지나온 나의 흔적을 찾을 공간이 있다는 건 큰 즐거움입니다. 현대인이 겪는 아픔 중 하나는 ‘추억 공간’을 상실한 것이 아닐까요. 같은 기억을 가진 사람과의 이별은 고통입니다. 선배들은 381호 전차가, 음악감상실 르네상스가, 첫 입사했던 회사 앞 중국집이 사라지는 사이 든든하게 기댔던 부모님, 선배, 친구들의 빈자리도 하나하나 늘어났다며 아파합니다. 많은 이들이 모임 장소를 종로로 잡는 이유를 알 것만 같습니다. 혹여 종로 뒷골목에 아직 남아 있을 추억을 찾고 싶은 게지요. 사라진 추억의 장소들이 되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종로의 변신이 더뎌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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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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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구름언덕 (128.XXX.XXX.84)
참 따뜻하고 멋진 글입니다.
많은 추억이 파노라마되어 떠오르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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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3 15:01:40
1 0
노경아 (121.XXX.XXX.123)
즐거운 추억이 많은 '행복한' 분이시군요. 추억들을 떠올리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추억의 힘이 매우 강함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오늘도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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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09:35:34
0 0
김영환 (209.XXX.XXX.3)
르네쌍스 하면 대학 시절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주인과 가까운 친척되는 분의 자제를 가르쳤던 덕분에 제자가 입장권을 무더기로 얻어와서 친구와 함께 자주 찾아가서 음악을 감상하며 클래식에 약간의 눈을 뜬 곳입니다. 조영남이나 윤형주, 양희은이 노래하던 세시봉의 라이브와는 많이 다른 분위기였죠. 30대 말어느 날에 세시봉이라는 간판을 발견하고 정말 반가워서 들어가려고 했더니 '입장 사절'이었습니다.

'마포종점'은 영등포가 고향인 장모님의 18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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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3 00:36:17
1 0
노경아 (121.XXX.XXX.123)
"밤 깊은 마포종점/갈 곳 없는 밤 전차/비에 젖어 너도 섰고/갈 곳 없는 나도 섰다/여의도 비행장엔/불빛만 쓸쓸한데/돌아오지 않는 사람/기다린들 무엇 하나/궂은 비 내리는 종점/마포는 서글퍼라"

가요 '마포종점'은 서울의 역사, 아니 대한민국의 역사가 담긴 노래 같습니다. 1916년 일본이 건설한 여의도 비행장이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장이며, 일본-한국-만주를 잇던 항공수송의 요지였다는 사실을 노래를 통해 알았습니다.

고향이 서울이 아니지만 저 역시 '18번'을 '봄날은 간다'에서 '마포종점'으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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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3 09:4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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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년 (211.XXX.XXX.64)
1.4후퇴때 부산으로 피난갔다가, 삼각동으로 이사와서 적산가옥에서 살다가
근처 청계국민학교에 입학하고, 청진동, 인사동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종로는 참 제게 그리운 고향같은곳입니다. 지금도 그곳을 지나가면, 마음이
설레입니다. 첫사랑도 그곳에 묻혀있고, 내 젊은날의 추억이 고스란히 지금
도 배어나고 있는것 같습니다. 이제 살날도 많지 않은데, 언제 다시 그런
아름다운 추억을 다시 만들어 나갈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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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10:5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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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 (121.XXX.XXX.123)
힘들었던 과거도 지나고 나면 설레고 아름다운 건 함께한 사람들과의 추억 때문이 아닐까요.
요즘 서울시내 핫플레이스 중 한 곳이 ‘청계천 판잣집 테마존’이라고 합니다. 1960~80년대의 향수를 느낄 수 있어 중장년층이 많이 찾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추억의 옛 교실, 음악다방, 구멍가게, 공부방, 만화방 등이 마련돼 있으며, 교복과 교련복을 직접 입어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청년의 마음으로 친구, 연인(가족)과 추억의 장소에서 더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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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13:4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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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훈 (164.XXX.XXX.137)
저는 아직도 피맛길에서 생선전, 족발에 탁주한잔하는것을 좋아하는 83년 돼지띠 애늙은이 입니다. 아마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종로대로를 걸었을까요 피맛길로 다녔을까 엉뚱한 잡념을 해본적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종로 화신 백화점이 아니라 종로 파고다 공원 세대 입니다. 노면 전차도 타보고 싶고 세시봉도 가보고 싶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케이블카를 아직 보존하고 있는걸 보면 관광상품으로도 큰 가치가 있어보이는데 땅이 좁다보니 아쉬운 감이 없잖습니다.
종로에는 낙원악기 상가도 있고 파고다공원에 국보도 있고 참 이야기가 많은데 젊은 친구들은 알려나요~? 다음에 피맛길에서 회동 한번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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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1 14: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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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 (121.XXX.XXX.123)
화려한 색상의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종로 이 골목 저 골목을 휩쓸고 다니는 임 도령을 떠올려 봤습니다.
그 출중한 인물에 반한 여인네들이 이리 슬쩍 저리 슬쩍 매력을 발산하는 모습도 보이네요.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너무도 아름다운 한 폭의 동양화이군요!
멋을 아는 이의 제안이니 피맛골에서 만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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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09: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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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58.XXX.XXX.226)
다시금 종로의 추억을 떠 올리게 하는군요.
저의 한창 때 역시 종로서적은 대단한 약속장소였지요. 특정 코너에서 만나자고 하면 지루하지도 않고, 독서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물론 이런 장점을 악용한 그녀가 지금은 떠났지만요....
연타운도 기억이 납니다. 커다란 유리창을 따라 흐르던 물줄기와 생맥주 조끼.
인사동 초입쯤에 지금도 남아 있는 피마골의 "막걸리와 고갈비"(상호는 몰라요)는 아직도 저의 최애장소 중 한 곳입니다.
화신백화점으로만 알려려 있는 그 곳에는 신신백화점이 있었지요. 그 장소가 바로 저의 첫번째 알바 장소였습니다. 1984년 2월의 일이니 35년하고도 근 반년이 더 흘렀습니다.
종로5가(광장시장 대각선 맞은 편)에 가면, 13번 대원 버스가 의정부로 향하기 위해 회차 대기 중이었습니다.

오늘 비라도 내리면, 정동 경향신문 맞은편 6층, 음악과사람들에 가서 LP판 들으며 옛 추억에 잠겨 보고 싶군요.

잠시 추억에 잠겼다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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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1 08: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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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 (121.XXX.XXX.123)
종로서적 특정 코너에서 만난 걸 보니, 역시 머리 좋은 분입니다. 저는 발 디딜 틈 없는 1층에서, 가뜩이나 작은 몸으로 이리저리 밀리며 누군가를 만났었지요. 막걸리와 고갈비, 엘피판이 돌아가는 그곳을 코스로 돌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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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1 09:2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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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58.XXX.XXX.226)
기회가 된다면 저 위의 임대훈 님도 초대해서 한 번 같이 도시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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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08: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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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 (121.XXX.XXX.123)
날만 잡아 주십시오. 임씨 가문의 모임에 합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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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09: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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