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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들 다 어디 가고...
황경춘 2019년 08월 02일 (금) 00:29:06

일제강점 때 싸늘한 전쟁 분위기 속에 5년을 같이 지낸 경남 진주중학교(지금의 진주고등학교) 동기동창의 모임이 완전히 중단된 지 2년이 지났습니다. 최근에 주변 정리를 하다가 이 모임에 관련된 많은 자료를 발견하고, 지난날의 추억을 되씹고 있습니다.

광복 후 몇 차례의 학제 개편을 거쳐, 모교 총동창회 안에 동기동창회도 자연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나 서울지역 동기 모임을 정식으로 결성한 것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성공하고 88서울 올림픽이 열린 해의 4월이었습니다.

태평양전쟁이 계속 중인 1943년 3월 3일, 92명의 동기생이 졸업하여 각자의 길을 찾아 정든 교사를 떠났습니다. 그날 이후 다시 만나지 못한 친구도 꽤 많습니다. 광복 후의 혼란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세상을 떠난 친구도 많았습니다.

졸업 인원의 4분의 1에 가까운 동기생들이 수도권에 상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중 20명 정도가 한자리에 모여 재경 동기회를 결성하고, 매달 14일에 정심 모임을 갖는 등 간단한 회칙을 만들고, 제가 간사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14일을 택한 것은 우리 졸업 기수가 14회였기 때문이고, 제가 간사를 맡게 된 것은 시내 중심부에 사무실이 있어 연락하기에 편리하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진주집’이란 이름을 가진 대중음식점에서 모임을 갖다가, 이 식당이 폐업한 뒤, 여러 곳을 거친 끝에 인사동에 있는 한정식집을 택해 20여 년 동안 한 달도 빼짐없이 이 모임을 계속하였습니다. 우리 동기뿐 아니라 다른 학교의 동창회도 이 음식점에서 많이 열렸지만 우리처럼 꾸준한 모임은 없다고, 식당 여주인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매년 4월 하순의 모교 개교기념일에는 시간 여유가 있는 동기생이 단체로 1박 2일 일정으로 모교를 방문하였고, 이 밖에 한 해에 한 번씩 진주, 부산, 서울에서 교대로 동기 총 모임을 개최하며, 해마다 줄어가는 동기생의 친목을 꾀하였습니다.

1993년 4월 개교기념일 행사에 모였을 때, 진주 동기회 주관으로 작고한 동기의 합동추모식을 모교 도서관에서 열었습니다. 일제 때의 교사가 한국전쟁 중 불에 타고 유일하게 남은 건물이 이 도서관이었습니다.

입학 후 타교로 전학하거나 유급 등 기타 이유로 같이 졸업을 못한 준회원을 포함한 120명 중, 위령제를 가진 날 현재 총 65명이 유명을 달리했다는 사실을 알고, 참석한 일동이 놀랐습니다.

이런 슬픈 일도 있었지만, 우리 동기뿐 아니라 나라 전체가 깜짝 놀라고 기뻐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1989년 구 소련체제 붕괴와 더불어 그해 12월 모스크바에 살고 있던 동기생 유한배 군이 일시 귀국하게 되어, 서울 동기모임에도 출석했습니다. 그는 1992년에 영구 귀국하여 그의 기구한 일생이 여러 언론매체에서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유 군은 졸업 후 만주 하얼빈대학 러시아어과에 입학했다가, 일제 패전 때 소련군에 체포되어 소련군의 일본 포로 심문 때 러시아어 통역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그 공으로 모스크바로 보내져 소련으로 귀화하고 그곳 국제문제연구소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야당 시절 소련을 방문했을 때 통역을 맡기도 했습니다. 고향 진주 방문과 가족상봉도 마친 후 서울에서 거주하다 신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서울 동기모임을 결성할 때, 이 모임은 마지막 두 사람이 남을 때까지 계속한다고 모두가 다짐했습니다. 약 10년 전부터 참석인원이 평균 5~6명으로 줄었습니다. 병원이나 요양원에 입원 중인 회원도 두세 명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3년 전에는 참석자가 세 사람으로 줄고, 가끔 나오는 한 사람은 가벼운 치매증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2년 전 초봄에는 마지막 두 사람만 남게 되었습니다. 모임 결성 때 말로는 그렇게 다짐은 했지만, 두 사람만이 모임을 계속한다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그 친구마저 부인이 입원 중인 요양원에 간병 겸해 자기도 들어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뒤 연락이 끊겼습니다. 저도 곧 건강이 나빠져 ‘재경 14회동기회‘는 많은 추억만 남기고 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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