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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경제학자는 무인도에서 혼날까?
허찬국 2019년 08월 15일 (목) 02:19:32

경제학도들은 잘난 척도 곧잘 하지만 아는 것의 한계를 알기에 자학 농담도 많습니다. 하나를 소개합니다. 무인도에 표류해 배가 고픈 물리학자, 엔지니어, 경제학자가 파도에 밀려온 옥수수 통조림을 발견하죠. 자연과학을 공부한 앞의 2인이 통조림 여는 방법에 대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을 때 경제학자는 용감하게 “통조림따개가 있다고 가정하자!” 외칩니다. 아마 아재 개그 속 자연과학 전공자들이 성깔이 있었다면 경제학자는 많이 혼났을 것 같습니다.

흔히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른 나라, 또는 가상적 상황과의 비교를 씁니다. 적절할 경우도 있지만 무인도 경제학자처럼 쓸데없거나, 단기적인 정책 방안을 뒷받침하기에 부적절한 경우도 어렵지 않게 봅니다. 예를 들어 인구나 차량 수 대비 교통사고 수, 대기 중 미세먼지 수준, 노인 자살률 등은 산출 방식이나 많고 적음 중 어떤 것이 바람직한지가 명확해 단순 비교에 무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의 비교는 보통 이런 범주를 넘어섭니다. 객관성이 떨어져 비교가 적절치 않은 두 가지 예를 보겠습니다.

지난 대선 때 한국의 공공부문 일자리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1.3%)의 3분의 1 수준으로 너무 낮기 때문에 여기에 81만 개의 일자리를 추가로 만들겠다고 현 정부가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이 통계는 집계 기준이 국가마다 달라 직접 비교가 어렵습니다. OECD는 통계 자료에 ‘대부분 국가는 국제노동기구(ILO) 조사 기반이지만 한국 등 일부 회원국은 해당 국가에서 낸 자료’라며 데이터 활용에 유의하라고 주문하고 있었습니다. ILO 분류도 획일적 기준이 아니라 국가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2017년 대선 이후 정부가 국제기준에 가깝게 기준을 바꿔 추정했더니 이번에는 비중이 8.9%로 더 높아졌다고 발표했습니다. 올 해 초 발표된 최근 통계는 9%인데 정부는 아직도 OECD 평균의 약 반에 못 미치며 OECD회원국 중 일본을 제외하면 꼴찌라고 억울해하는 듯합니다.

이 비교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당연히 기준이 동일한 수치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사립학교 및 사립 유치원 교직원, 의무사병, 의료인력을 이 통계에게 포함하지 않습니다. 사립학교나 유치원은 정부의 지원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영국,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공공부문에 포함되는 것이 맞아 보입니다. 대부분 OECD국가들은 사병을 포함한 모든 군 복무자를 포함하는데 비해 한국에서는 직업 군인만 포함하고 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중요성, 영리의료법인을 인정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의료부문도 실질적으로 영국과 유사하게 공공부문입니다. 청소와 경비 용역 등 공공 기관의 간접 고용인력을 제외하더라도 사병의 숫자나 사립학교·유치원 교원, 민간의료 종사자 등을 합친 숫자로 산출한 공공부문 고용비중은 13%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주 참조). 이 수준이면 관련 비교의 원래 취지가 무색해집니다.

두 번째는 남북 평화경제 대박론입니다. 이번 대통령의 극일 비전으로 언급했던 "남북 경협으로 평화경제가 실현“을 통해 단숨에 일본을 따라잡자는 발상입니다. 이는 현재 한국 경제에 비해 ‘평화경제’가 실현되었을 때 경제의 양적인 규모나 생활 및 기술 수준과 같은 질적인 모습이 훨씬 더 좋을 것이기에 일본이 부럽지 않게 된다는 것이지요.

의아한 반응을 자아냈던 이 예측은 지금과 시공의 거리가 먼 가상의 현실을 설명한 것입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비교가 드물지 않습니다. 실제의 경제 현상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여러 가정으로 단순화하여 모형을 만들고 거기에서 안정된 ‘균형상태’를 도출합니다. 얻어진 균형상태는 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변하면 균형상태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분석하는 데 많이 쓰이는 필요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인력, 기술, 자본, 세금 등의 주요 변수 대부분이 현재와 크게 다른 가정 하에서 얻어지는 균형상태를 현재와 비교하는 것은 다른 성격의 분석입니다. 특히 평화경제 주창자들이 상정하는 새로운 균형상태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비용, 과정이 미지수라 그야말로 구름 잡기라 해야 할 것입니다. 더 황당한 것은 비교 대상 일본의 미래까지 그려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전체 인구가 감소 추세이니 언제인지 몰라도 비교 대상 시점에서는 나라의 규모가 지금보다 반 토막쯤 된다고 가정했을지도 모르지요.

범상치 않은 상황에서 나오는 대통령의 발언이라 나름 전문가들이 검토를 하였을 법한데 이런 내용이 나온 것이 좀 이상합니다. 평화경제에 현혹되어 경제적인 타당성 따윈 안중에 없는 사람들이 전문가 역할을 하고 있거나, 혹은 경제학적 분석의 도구를 이해하지만 정치적인 구호를 위해서는 이를 따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제 전문가들이 만든 자료일 수 있습니다. 지난 정부 ‘통일 대박론’이 ‘평화경제’의 원조이니 지난 정부도 크게 나을 게 없었습니다. 현 정부의 ‘평화경제’가 더 신뢰가 안 가는 것은 소득(임금)주도 성장론의 비극적 코미디(나라 경제 관점에서) 전력 때문일 것입니다.

정부나 정당의 중요한 정책 입안에는 전문가들이 참여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점점 정책들의 전문적 함량이 떨어지는 듯 보입니다. 글머리의 농담을 보며 경제학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할지 모르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간 경제학자들의 치열한 연구의 결과를 인정해 1960년대 말 이 분야에 노벨상이 만들어진 것을 보면 학문의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곡학아세(曲學阿世)가 더 흔해진 것은 국내에서 정치나 정책에 관심이 많은 경제학자들의 전문성과 지적 정직성(intellectual honesty) 부족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주. “{생각나눔} 공공부문 일자리 ‘고무줄 통계’ 의미 있나” 서울신문, 2018.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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