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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증후군’을 아시나요
이성낙 2019년 09월 19일 (목) 00:10:41

의사 초년생 때 일입니다. 의대 동기생 친구의 사촌 형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출중(出衆)한 외모와 달리 목소리가 아주 거칠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사촌 형과 헤어진 후, 친구는 형의 애석한 이야기를 필자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사촌 형이 몇 년 전 갑상선(甲狀腺) 종양 수술을 받았는데, 그 후유증 때문에 목소리가 거칠어졌다고 했습니다. 갑상선 수술을 하다 보면, 수술 부위를 지나가는 신경을 건드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그로 인해 음성이 그렇게 탁해진 사례는 처음 본 터였습니다. 참 불운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자기 사촌 형의 경우는 전형적인 ‘VIP 증후군’의 사례라고 말해서 약간 놀랐습니다. ‘VIP 증후군’은 가끔 들어본 용어이기는 해도 그다지 실감을 하지 못했던지라 친구의 설명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사촌 형의 부친, 그러니까 친구의 숙부가 독일 외과계의 저명한 교수인데, 자기 아들을 직접 집도할 수 없어 자신이 가장 믿는 제자한테 수술을 부탁했답니다.

집도한 의사는 당연히 존경하는 스승이 아들의 수술을 자신에게 맡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굉장히 고무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수술실에서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주변 모든 사람은 집도의가 최선을 다하려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오히려 일을 그르쳤다고 말했습니다. 이른바 ‘VIP 증후군’ 때문에 말입니다.

의료계에 몸담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필자는 ‘VIP 증후군’과 관련해 크고 작은 일화를 심심치 않게 들었습니다. ‘VIP 증후군’이 아주 드문 사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설령 수술을 앞둔 제자 집도의와 통화할 일이 있어도 “특별히 잘 부탁한다”라는 따위의 말은 결코 건네지 않았습니다.

근래 수술실에서 집도하는 의사들이 과도한 막말을 일삼고 경거망동한다는 얘기가 필자의 귀에 들려오곤 합니다. 일차적으로 수술실이라는 엄중한 공간에서 그런 언행을 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물론 긴 시간을 극히 제한된 공간에서 보내야 하는 집도의가 정신적으로 얼마나 부담스러웠으면 그럴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데도 집도의가 수술 중에 도를 넘는 야한 농담을 하거나, 인격 모독에 가까운 언행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수술실에 함께 있는 수련의나 간호사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이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와 관련해 시민사회의 여론을 이끄는 언론매체에서는 이러한 수술실 분위기가 집도의의 느슨한 정신 상태 때문인 양 매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수술 중 의료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수술실에 ‘폐쇄회로 TV(CC-TV)’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울러 CC-TV를 의료 사고 발생 시 유·무죄를 판단하는 법적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경기도 지방자치단체장은 설치비용의 상당액을 지원하겠다면서 수술실 CC-TV 설치를 권장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술실 집도의가 CC-TV를 의식해 과도하게 긴장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CC-TV 설치는 집도의의 심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비전문가의 어설픈 탁상공론일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수술실 CC-TV로 인해 ‘유사 VIP 증후군’이 곳곳에서 발생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습니다.

적당한 긴장감은 언제나 능률을 높이는 ‘보약’입니다. 하지만 과도한 긴장감은 예상치 않은 해(害)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마치 온 국민이 지켜보는 축구 경기에서 대표 선수가 결정적인 승부차기에서 실축(失蹴)하는 경우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비의료인의 발상은 수술실 분위기를 경직되게 할 뿐만 아니라, ‘유사 VIP 증후군’이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피해는 온전히 환자들이 떠맡게 될 것입니다. 수술받는 환자의 내밀한 신체 부위가 CC-TV 영상에 노출·기록된다는 것을 안다면, 환자의 동의도 받기가 역시 쉽지 않은 과제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 국내 병원의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할 경우, 외과 계열에 종사하는 의료인들은 이를 또 다른 형태의 인격 모독으로 받아들일 공산이 큽니다. 환자 가족들의 ‘멱살잡이’와 같은 인격 모독 말입니다. 수술실의 CC-TV가 우리 외과계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되지는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가 의료계 밖의 비전문적이고 무책임한 질책성 주장들을 아무런 경계 없이 수수방관한다면 의료인의 자존심을 스스로 저버림은 물론 환자에게 돌아갈지도 모를 더 큰 위해에 눈을 감는 비겁한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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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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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58.XXX.XXX.226)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필자님의 논리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비전문 일반인들이 왜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특권의식입니다.

예로 드신 축구선수의 실축을 방지하기 위하여 관중들을 다 몰아내고 조용하게 골키퍼와 1:1로 맞선 상황에서 킥을 해야 할까요? 그러면 긴장감이 해소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축구선수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많은 유사상황에서의 훈련을 하고, 무수한 훈련들의 내공이 쌓이면서 실력이 늘어 가는 것입니다.
양궁선수들은 사선에서의 긴장감을 떨어내기 위하여 연관성도 없을 것 같은 번지점프를 하며 훈련을 한다고도 합니다.
박세리 선수도 그 긴장감을 떨어내기 위하여 한밤 중에 공동묘지에서 샷 연습을 했다는 이야기도 얼핏 들었었습니다.
양학선 선수는 그 찰라의 연기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도와 훈련을 했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은 인간인 이상 시험대에 오르면(경기든, 시험이든, 발표든, 면접이든 말이지요.) 다 떨고 평상시의 자기 실력을 100분 발휘하지 못 합니다. 그래서 에러를 줄이기 위해 자꾸 연습을 하고 또 하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모든 이에게 실수도 실력입니다.

교통사고 처리에 있어서, 예전에는 쌍방과실이 매우 많았으나, 소위 블랙박스가 보편화되면서 이런 판례들이 영상자료를 증거로 하여 많이 바뀌어 가고, 당연히 억울한 사례들이 급격히 줄고 있습니다. 운전자들이 블랙박스가 설치되어 있어서 떨면서 운전하나요? (그렇다면 블랙박스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나오겠군요)

왜 비전문 일반인들이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자고 하겠습니까? 의사들이 어떻게 해 왔는지 보면 답이 나와 있습니다. 수술후 봉합한 뱃 속에서 거즈가 나오고, 가위가 나오고, 실명하기 힘든 이유로 주검이 되어 나오기가 일수입니다. 일반인들의 힘으로 거대 병원이나 전문가라는 의사를 상대로 이 싸움을 이겨 낼 수 있을까요?
이제 의사들도 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의사 면허만 있다고 다 명의는 아닙니다. 의사도 실수할 수 있고, 그 실수는 역시 실력으로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합니다.

VIP증후군이 문제면 VIP(이것도 청탁이지요)를 없애야지 왜 CCTV 설치를 반대해야 합니까? 또, 이 증후군 때문에 수술을 제대로 못 한다면 실력 없는 의사일 것입니다. 더욱 더 열심히 연구하여 실력을 쌓거나, 아니면 집도를 거부하면 되지요.

굳이 환자의 인권이 걱정되신다면, 동의서를 받으면 바로 해결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는 게 말이 안 되지요.

저는 절대적으로 CCTV 설치에 찬성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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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9 08:38:16
1 0
libero (58.XXX.XXX.51)
이해하기 어려운 의료 사고가 발생할 때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요. 그렇다고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감시 카메라를 들이대고 치료 현장을 지키겠다는 것도 지나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의 교육 내용이 의심스럽거나 학교 폭력이 걱정스러워 교실과 교정 구석구석 감시 카메라를 들이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음식에 불량한 성분이 들어갈까 봐, 또는 조리과정이 의심스러워 식당 취사구역마다 감시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의료 현장의 감시 카메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사회는 일부 일탈도 없지 않지만 기본적인 신뢰가 바탕이 되어 유지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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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9 10:17:35
0 1
임성빈 (58.XXX.XXX.226)
libero님의 말씀처럼 기본적인 신뢰가 바탕이 되어 유지되어야 하는 건 저 또한 좋아하고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하고는 많은 괴리가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저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곳(취약지역)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은 늘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미 많은 곳에서 감시카메라(감시라는 말이 좀 모하긴 하지만)가 많이 있고, 이를 토대로 범인도 잡고, 시시비비도 가리고 있습니다. 의사가, 학교가, 식당이 떳떳하다면 하등의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개인의 사생활 공간이 아니라 대중과 관계가 밀접한, 혹은 상업적인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단, 정보보호를 위한 컨텐츠(촬영물) 보안에는 매우 큰 장치를 해야겠지요.
부정의 역할보다는 긍정의 역할이 훨씬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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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0 08:03:42
1 0
1234 (222.XXX.XXX.190)
조국 사건을 보면서 스펙만의 의사를 만날까 겁이 나더군요.
답변달기
2019-09-19 11:49:18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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