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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꽃’이 뭐기에? 홉스굴의 수염용담을 보며.
박대문 2019년 09월 26일 (목) 00:12:08
 
   수염용담 (용담과) 학명 Gentianopsis barbata (Froel.) Ma
 

강하게 내리쬐는 한여름의 따가운 햇살도 힘을 잃고 엷어져 가는 때에 몽골의 홉스굴호를 찾았습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북쪽으로 약 900km 떨어진 홉스굴호는 북위 50°보다 위쪽이며 해발 1,645m의 고지대에 있습니다. 호수 끝은 러시아와 경계를 이룹니다. 위도가 높고 지대 또한 높아서인지 8월 말 홉스굴 호변의 밤 기온은 서늘함을 넘어 으스스하게 차가웠습니다. 제주도 면적의 1.5배가량인 2,760㎢ 규모의 호숫가이기에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생화 탐사를 목적으로 간 여행이 아니었기에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뜻밖에도 그곳에서 귀한 꽃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위의 꽃 사진은 그중 하나인 수염용담입니다. 밝은 햇살에 드러난 연보랏빛 꽃잎이 비로드처럼 곱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다가와 눈길을 끌었습니다. 처음에는 언뜻 용담과(科)의 과남풀이 아닌가 했습니다. 그런데 화통(花筒)이며 꽃잎, 잎 모양이 사뭇 달랐습니다. 이리저리 살펴보며 생각을 모아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식물도감에서만 보았던 수염용담으로 여겨졌습니다.

수염용담은 남한에서는 만나 볼 수 없는 북방계 식물인 우리 꽃입니다. 못 보던 우리 꽃을 만났다는 짜릿한 감흥이 일었습니다. 우리 식물도감에 기록되어 있는 한반도 자생종이지만 북한지역에서만 자라는 종(種)이기에 야생의 모습을 보지 못했던 꽃입니다. 이토록 북한에만 자생하는 우리 꽃을 직접 보기 위해 중국의 연변, 만주와 몽골 그리고 사할린, 일본 등으로 야생화 탐사를 하러 가곤 합니다. 그런데 꽃 탐사가 아닌 여행으로 간 곳에서 이름만 들었던 우리 꽃을 만나니 그 기쁨이 오죽했겠습니까? 북한 지역에서 자라는 야생화를 보기 위해 만주, 사할린 등 북한 주변국에 꽃 탐사를 갔을 때 그곳에서 만나기 어려운 희귀종이나 북방계 야생화를 만나면 참으로 기쁩니다. 더구나 북한지역에서만 자라기에 남한에서는 만나 볼 수 없는 야생화를 만나면 그 감동은 더더욱 큽니다. 외래종도 아니고 귀화종도 아닌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우리 식물, 남북이 가로막혀 찾아가 볼 수 없는 야생의 ‘우리 꽃’을 대면하면 가슴을 울리는 뭉클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우리 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처럼 가슴에 와 닿을까? 어느 나라를 가든지 아름답고 신기한 그 지역의 토착 야생화가 있기 마련입니다. 생전 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TV나 식물도감에서만 보았던 크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새로운 못 본 꽃을 보는 기쁨도 큽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식물, 소위 우리 꽃이라 부르는 야생화를 해외에서 만나면 그 감흥은 천양지차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해외에서 자라기에 우리 꽃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 꽃과 같은 종(種)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을 보면 마치 오래된 고향 친구들을 만난 것처럼 정겹고 친근감이 듭니다. 우리 꽃이 주변에 있으면 머나먼 객지일지라도 생소함도 잊고 마음마저 평온해집니다. 우리 선조들과 오랜 세월에 걸쳐 삶과 역사를 함께해 온 자연 속의 한 생명체로서의 동질감이 은연중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몽골의 홉스굴 호변에서 만난 수염용담(龍膽)
 

여름이 채 가기도 전에 따스한 햇볕이 그리워지는 북반구의 고위도 홉스굴 호변에서 만난 귀한 꽃, 수염용담입니다. 여러해살이풀로 줄기는 곧추서고 잔가지를 많이 치며 줄기잎은 마주나고 선상 피침형입니다. 꽃은 9월에 연한 보랏빛이나 하늘색으로 피고 화경이 길며 가지 끝에 1개씩 달립니다. 꽃받침은 종형이고 5개로 갈라지며 열편(裂片)은 길게 뾰족하고 길이는 화통부(花筒部)와 거의 같습니다. 남한의 높은 산에서 가끔 만나는 꽃, 과남풀을 많이 닮았지만, 보다 더 줄기가 가늘고 화통과 화관이 작고 날렵하고 줄기잎도 훨씬 좁고 작았습니다. 수염용담은 북한(함경도), 만주, 중국, 러시아(아무르), 몽골,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유럽에 분포합니다.

홉스굴 호변 일대에는 수염용담 외에도 우리 꽃과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서로 다른, 국내에서 보지 못한 여러 종류의 곱고 다양한 야생화가 많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유별나게 가슴 뭉클하도록 가까이 다가오는 꽃들은 바로 한반도에 자생하는 소위 ‘우리 꽃’과 같은 종(種)의 식물들입니다. 우리 꽃이라는 감성이 작동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초등학교 교과서를 통해서 배우고 가까이했던 꽃들이 채송화, 백일홍, 맨드라미, 나팔꽃, 봉숭아, 분꽃, 해바라기 등입니다. 그런데 인제 보니 불행하게도 이들이 모두 우리 꽃이 아닌 외래종입니다. 이들 외래종을 해외에서 만나면 어렸을 때부터 가까이해온 꽃인데도 이상하게도 그 감흥이 우리 꽃인 할미꽃, 제비꽃, 토종민들레, 진달래, 개나리, 구절초, 쑥부쟁이, 나리, 투구꽃 등 자생종을 만났을 때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무슨 까닭일까? 필자만의 느낌인지 다른 분들도 그러한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다른 한편 최근 들어 북한 지역에만 자생하는 우리 꽃에 대한 애착심이 전과 달리 미묘한 소원감(疏遠感)이 생겨납니다. 가보지도 만날 수도 없는 북녘의 꽃을 과연 우리 꽃이라 해야 할까? 혼자 되뇌어 보기도 합니다. 눈물겹도록 애가 단 짝사랑을 야멸차게 외면하는 작금의 정세(政勢) 탓일까? 一花一世界(일화일세계), 一草一段情(일초일단정) ‘한 송이 꽃에도 하나의 세계가 있고 한 가닥 풀에도 한 자락 정이 있다.’ 하는데 괜스레 인간사 속(俗)된 마음으로 우리 꽃에 대한 정이 멀어진 것 같아 아쉽고 미안함에 머쓱해 하기도 합니다. 돌아가는 세상사가 야속할 뿐입니다.

(2019. 9월. 몽골 홉스굴의 수염용담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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