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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江湖)를 꿈꾸다 3
김창식 2019년 10월 11일 (금) 00:26:07

나라가 둘로 갈라져 연일 시끄럽습니다. 트라우마로 남은 ‘그해 겨울’이 기억나 착잡하기만 합니다. 정녕 ‘객관적 진리에 대한 부정의 시대’(들뢰즈)가 도래한 것인지요? 이 판국에 한가하게 무슨 무협 이야기를 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서초동이든 광화문이든 현장에서 물러나 숨을 돌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갔던 길 되돌아오면 더욱 좋겠지만요.

장르물인 무협소설은 태작(駄作)이 많고 일정 수준에 오른 작품은 드뭅니다. 권선징악적인 주제가 판을 치는 데다 스토리라인도 전형적인 영웅 서사로 내용이 엇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한번은 한 책을 ‘1과 1/2’ 읽은 적도 있었답니다. 절반쯤 읽는데 빨래통에 넣어 둔 속옷 찾아 입듯 찜찜해요. 전에 읽은 책이었거든요.

무협 소설 중에는 간혹 놀라운 필력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고, 작가의 책임감과 치열함이 전해오는 작품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허황된 이야기일망정 이리저리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나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구성은 만만히 볼 것이 아니지요. 지난 칼럼에 이어 무협 소설에 나오는 구절 중 탁월한 서술과 묘사를 찾아봅니다.

<쟁선계>-이재일

불행은 삶의 원형, 고통은 삶의 규칙
산새의 가녀린 울음소리가 지잇지잇 들려오고
울림과 울림 사이에 들어찬, 아니면 비워진 여음
공간의 보이지 않는 결 속으로 스스로를 감추어가는 저 칼
 
*시적인 묘사. 산새가 ‘지잇지잇’ 울고, 공간의 결 속으로 칼이 숨어들다니요!

<십만대적검>-오채지

동해엔 날개 달린 물고기가 바다 속으로부터 솟아올라 허공을 난다. 그런가 하면 북해에서는 물속으로 내리꽂혀 물고기를 낚아채기도 한다. 이들은 물고기인가 새인가? 습관에 얽매여 스스로를 규정하고 한계를 정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게나.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지도 말고.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사는 건지 죽은 것인지조차 헷갈리는 상황을 맞게 되거든. “너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느냐?”
 
*깨달음을 얻은 현자가 삶의 지혜를 들려주는군요. 이것은 통닭인가 갈비인가?

<무림오적>-백야

비슷한 능력을 가진 자들끼리라도 한 무리를 지으면 자연스레 집단을 통솔하려는 자가 생긴다. 무리의 이익이나 선도하는 자의 의도에 충실히 따르려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먹으려는 자도 생긴다. 또 다른 한쪽은 제대로 일은 하지 않으면서 걸핏하면 딴죽을 걸거나 어깃장을 놓는다. 그러면서도 네가 앞장서라 하면 또 그건 싫다고 한다.

 *사회의 축도를 보여주는 듯. 살다 보면 파당을 이루게 되고 진영에도 서게 되며….

<일락서산>-작자 미상

뭇 고수들은 돌아온 탕자 같은 초라한 젊은이의 괴이한 손속에 해연히 놀랐다. 누군가 탄식하며 말문을 열었다.
“장강의 앞 물결은 뒤 물결이 밀어낸다더니. 긍께 늙은 것들은 늙느니 죽어야 혀.”
그러자 또 다른 누군가 말을 받으며 핀잔을 주었다.
“쓰잘 데 없는 소리 말혀. 죽긴 누가 죽는다 그려? 생강은 늙은 것일수록 맵다는 말도 못 들어 봤는감? 허긴 무식이 유식이제.”
그러자 또 누군가 동조하고 나섰다.
“암, 그라제. 노쇠한 말이라고 푸른 콩 마다할까?”
또 다른 누군가는 비유의 걸맞지 않음을 지적했다. 그자의 말은 더 생뚱맞았지만.
“우린 시방 핵심을 벗어났구만. 그런데 노쇠한 말이 생강을 먹으면 어찌 되누?‘

*유쾌한 고전 해학소설을 보는 듯. 아무렴, “우리 같은 것들은 죽으면 늙어야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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