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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기에 대처하는 법 -〈기다림>과 <결혼 3년〉
김이경 2008년 03월 01일 (토) 00:44:42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긴 시간 앞에선 애초의 효성도 바닥이 난다는 얘긴데, 이건 결혼생활에도 해당됩니다. 서로의 페로몬이 구석구석 깃든 한 집안에 동거하면서 시종 처음 같은 흥분과 자극을 느낀다면 피곤해서 못살 일. 부부가 서로를 이성이 아닌 근친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따라서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 볼 수 있지요. 문제는 이 생존이 참기 힘든 권태를 동반한다는 것인데,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란 말은 이래서 나옵니다.

함께 밥상에 앉아 밥을 먹지만 눈을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의 눈은 나란히 하나의 방향을, 툭하면 출생의 비밀이 연인들의 발목을 잡는 그 지긋지긋한 파란 화면을 봅니다. 화면 속 세상은 지루하지만 화면 밖의 세상은 더 지루합니다. 아무 비밀도 없이 방귀를 뿡뿡대고, 목젖이 다 보이게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발가락을 더듬던 손이 콧구멍을 쑤시지만 피차 태연합니다. 내일도 오늘의 태양이 뜨고 오늘은 어제의 태양이 뜨는 하루하루가 지납니다. 아침저녁 마주치는 얼굴은 바나나보다 길고 기차보다 지루합니다. 언젠가부터 ‘저 얼굴’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저 얼굴만 없으면 내 삶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저 얼굴을 만나기 전의 환하고 파릇파릇하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모든 게 저 얼굴을 만난 탓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탕린은 이혼을 결심합니다. 직장사람들에겐 보여주기도 민망한 아내, 구시대의 유물인 전족을 한 무식하고 늙은 아내와 헤어지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간호사 우만나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부모의 뜻에 따라 한 애정 없는 결혼을 끝내고 탕린은 자신의 의지로 사는 삶을 꿈꿉니다. 그로부터 17년, 긴 기다림의 세월이 흐르고 탕린은 비로소 이혼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함께 그 세월을 기다려온 만나와 결혼도 합니다. 오랜 기다림은 그렇게 결실을 맺습니다. 허나 기다림의 끝에서 탕린은 자신이 무엇을 기다렸는지 생각합니다. 무엇을 꿈꾸었었는지, 자신의 삶에 깃들었던 권태가 어디서 연유했는지, 오리무중의 막막함 속에서 탕린은 눈물을 흘립니다. 더 이상 권태롭지 않은 삶이 왜 이리 낯설고 힘겨운지 자문하면서.

미국에서 영어로 소설을 쓰는 중국 작가 하진의 장편 《기다림》은, 한 남자가 조강지처와 이혼하고 젊은 애인과 결혼하기 위해 오래 기다리는 이야기입니다. 400쪽이 넘는 장편소설의 줄거리치곤 기막힐 만큼 단순한 얘기인데, 놀라운 건 줄거리를 다 알아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의 매력은 파란만장한 줄거리도 꽉 짜인 플롯도 아닌, 아주 단순한 문장, 아주 단순하고 뻔한 이야기, 아주 단순하고 뻔해서 가슴이 메는 삶의 통속성을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설익은 경구로 섣부른 위로를 시도하는 통속소설과 달리 하진은 끝까지 냉정을 잃지 않습니다. 그 스스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안톤 체호프와 닮은 대목입니다. 그러고 보니 체호프 역시 중편 <결혼 3년>(《산다는 것은》에 수록되어 있음)에서 속절없이 권태에 빠져드는 기혼남자의 쓸쓸함을 그린 적이 있습니다. 《기다림》의 탕린은 부모 때문에 결혼했다고 변명할 수 있지만 <결혼 3년>의 라프쩨프는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했기에 애초부터 그런 변명은 불가능합니다. 아마 그 때문에 라프쩨프는 탕린보다 훨씬 빨리 처음의 열망과 꿈을 잃고 일상의 타성에 몸을 맡기고 마는지도 모릅니다. 결혼 3년만에 사랑을 의심하게 된 라프쩨프에겐 자신이 꿈꿨던 모든 것들이 부질없고 어리석게만 여겨집니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마음을 얻었건만 그의 권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미래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스스로 물어보지만 맥 빠진 대답만이 돌아옵니다. ‘살다보면 알겠지.’

미래를 잃은 사람의 짙은 피로감이 가슴으로 파고드는 두 편의 소설을 읽고나니, 지금 내 앞에 있는 익숙하다 못해 지루하던 얼굴이 새삼스럽게 보입니다. 그 익숙한 얼굴에 또 하나의 익숙한 얼굴, 나 자신의 얼굴이 겹쳐지며 묵직한 통증이 느껴집니다. 오리무중의 생을 헤쳐가기 위해 나만큼이나 안간힘을 쓰는 한 인간을 보면서 권태를 느끼기는 힘듭니다. 앞으로의 세월은, 우리 둘 다 툭하면 삶의 허방을 짚는 똑같은 존재라는 동지애가 페로몬이 뿜어내는 열정을 대신할 겁니다. 그리고 3년, 13년, 30년, 쓸쓸하지만 따뜻한 시간을 함께하게 되겠지요. 소설은 그 시간을 기다리라고, 어쩌면 사랑도 인생도 지루한 기다림을 기다리는 것일지 모른다고, 담담하게 말합니다. 그러니 이혼율 감소를 위해 가정법원 대기실에 이 소설들을 갖다놓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적어도 지금 내가 느끼는 피로가 내 앞의 얼굴 탓이 아니라 내 탓이며, 다른 사람을 만나도 권태는 찾아오리란 사실은 알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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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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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eddulnal (118.XXX.XXX.124)
두번째의 칼럼을 읽었습니다만,,,,,너무 반짝이는 표현이 많아서,,,,,,원래 미인은 장신구를 많이 달지 않지요???혹 박 목월 선생님의 "산"이란 시를 읽어 보셧지요????(주제 넘는다고 생각하신다면 잊어 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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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0 16: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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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eddulnal (118.XXX.XXX.124)
거 인생이란 것이 별 것 아니거던요????/마찬가지로 결혼 생활도 별 것 아니지요.걍 혼자 잘(?) 살다가 적당한 때(?)가 되어서 이성과 같이 살게 된 것이 결혼 생활인데 거기에 뭔 권태라는 어려운 단어를 갖다 부치는지,,,,맛있는 음식이라도 매끼 먹으면 질리지요????
15ㅇ억 년 세월에 인생이 뭐 있다고 그리 어려운 생각을 하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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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0 1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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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종오 (211.XXX.XXX.5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처방전으로 등장할 책들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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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7 22:3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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