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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巖(연암)을 더 생각하며
임철순 2008년 03월 03일 (월) 01:34:17
우리 형님 얼굴은 누구 닮았나(我兄顔髮曾誰似)
아버지 생각나면 형님을 봤지(每憶先君看我兄)
이제 형님 생각나면 어디(누구)를 보나(今日思兄何處見)
시냇물에 내 얼굴을 비쳐 보네(自將巾袂映溪行)

연암 박지원(1737~1805)이 50세인 1787년에, 형 喜源(희원ㆍ1722~1787)을 여의고 지은 시입니다. 나는 형이 없지만 이 시를 읽으면 콧날이 저절로 시큰해집니다. 그리고 시냇가에 앉아 있는 연암의 모습이 그림처럼 떠오릅니다.

형을 떠나 보낸 뒤, 한여름 어느 날 매미 소리도 잠시 잦아든 적막한 시냇가에 연암은 혼자 앉았습니다. 들여다본 물에는 내 얼굴, 형의 얼굴,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서 떠 있습니다. 나는 결국 형이고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남은 건 이제 나 혼자입니다. 어느덧 물에 비친 얼굴이 흐트러지면서 그 모습이 사라집니다. 연암이 흘린 눈물 때문이지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가까운 사람과 차례차례 헤어지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해도 연암처럼 정월에 아내를 보내고, 얼마 후(날짜 불명) 맏며느리를 잃고, 이어 7월에 형을 여읜다면 누구든 몸을 가누기 힘들 것입니다. 더구나 눈물샘이 한참 잘 열린 나이에 잇달아 겪은 사별입니다.

2남 2녀 중 막내인 연암에게 15세 연상의 형은 이른바 長兄父母(장형부모), 어버이와 다름 없었습니다. 아버지 타계 후 20년 동안 아버지처럼 모셨던 분입니다. 布衣(포의)로 묻혀서 산 아버지와 형은 연암의 정신이나 문학세계의 형성에 미친 영향이 미미했으며, 오히려 장인과 처남이 정신적 문학적으로 더 가까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살붙이는 역시 살붙이입니다.

연암의 제자 李德懋(이덕무ㆍ1741~1793)는 이 시에 대해 “정이 지극한 말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게 하니, 정말 진실되고 절절하다 할 만하다”며 “내가 선생의 시를 읽고 눈물 흘린 것이 두 번이었다”고 말했답니다. 첫 번째는 이보다 16년 전에 연암이 큰누나를 여의고 쓴 시입니다. 연암은 아내에 대해서도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悼亡詩(도망시)를 스무 수나 지었다는데, 안타깝게도 하나도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연암은 천하에 오묘하다는 평을 들은 산문을 많이 썼지만, 시는 몹시 삼가며 잘 짓지 않았습니다. 남아 있는 게 50여 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의 제자 朴齊家(박제가ㆍ1750~1805)의 시에 “우담바라 꽃이 피고 포청천이 웃을 때가 선생(연암)께서 시 쓸 때라네”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연암은 결국 산문형 인간이었던 것일까요? 그가 시에 능하지 못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느 자리에서 누군가가 고인이 된 사람을 거론하자 “자네 그를 보고 싶은가?”하고는 즉석에서 종이에 그의 모습과 똑같게 초상화를 그려 사람들을 놀라게 했을 만큼 연암은 詩書畵(시서화)에 두루 능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시보다 산문에 더 공을 들인 것은 기질과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의술에도 뛰어났던 한 선비가 “공은 純陽(순양)의 기품을 타고나 陰氣(음기)가 섞이지 않았다”고 평하면서, 성격이 강직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이른바 太陽症(태양증)에 해당한다고 말했습니다. 南冥 曺植(남명 조식ㆍ1501~1572) 松江 鄭澈(송강 정철ㆍ1536~1593), 이런 분들과 같은 태양인이라는 것입니다. 남명은 지조가 굳고 성격이 강했으며, 송강은 국문학사에 중요한 문인이지만 당파성이 강하고 好惡(호오)가 지나치게 뚜렷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지금과 같은 말세를 살아감에 도처에서 모순을 느끼실 테니 삭이지 못하고 억눌러둔 불평한 마음이 훗날 울화증으로 나타날 것이고, 약이나 침으로 고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연암은 과연 말년에 울화가 치미는 병을 앓다가 깨끗이 씻겨 달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무나 따를 수 없는 이 廉潔(염결)과 自尊(자존)은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그의 기질과 성격입니다.

키가 크고 풍채가 좋았던 연암은 목소리도 우렁차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지녔고, 그가 말할 때 아무도 중간에 끼여들어 논란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이 좌중에 있으면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위선자나 비루한 자로 단정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애써도 마음과 입이 따라주지 않았다는데, “이건 내 기질이라 고칠 수 없다. 일생 동안 험난한 일을 많이 겪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연암의 사주를 본 중국 점쟁이는 일찍이 “이 사주는 磨蝎宮(마갈궁)에 속한다. 韓愈(한유)와 蘇軾(소식)이 이 사주여서 고난을 겪었다. 班固(반고) 司馬遷(사마천)과 같은 문장을 타고났지만 까닭없이 비방을 당한다”고 예언했답니다. 연암의 장인도 갓 맞아들인 사위를 가리켜 “훗날 반드시 크게 되겠지만, 악을 지나치게 미워하고 뛰어난 기상이 너무 드러난다”고 걱정했다고 합니다.

그의 도저한 저작 <열하일기>는 일세를 풍미한 베스트셀러였습니다. 인기가 아주 높아서 수많은 필사본이 만들어졌지만, 그만큼 적도 함께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연암은 끝내 자신을 굽히지 않았고, 글 때문에 다투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남을 아프게 하지도 못하고 가렵게 하지도 못하고 구절마다 범범하고 데면데면하여 우유부단하기만 하다면 이런 글을 대체 얻다 쓰겠는가”가 연암의 추상 같은 질문입니다.

그러니 연암이 부럽고 무섭고 존경스러운 것입니다. 나 같은 범인은 그저 어떻게 하면 남들과 다투지 않고 어울리면서 무리 없이 세상을 살아갈까, 소심하게 노심초사하는 정도입니다. 삶의 구절과 갈피마다 그저 범범하고 데면데면할 뿐입니다.

연암에 기대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연암에 관해 글을 쓰기 위해 오래 된 학회지를 구하려고 교보문고에 갔지만 그 책이 없었습니다. 출판사에 찾아가기로 하고 서점을 통해 미리 연락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출판사 직원이 창고에서 꺼내온 책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찾는 건 3호가 아니라 통권 12권 3호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때 벽으로 반쯤 막힌 사무실 저 안쪽에서 “그거 44집이야”하는, 차분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22년 전에 나온 책을 한 마디로 44집이라고 일러주는 사람!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굳이 알아보지 않아도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 사람인지 단박에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육사의 시 <청포도> 중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는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저마다 ‘알알이 들어와 박혀’ 자기 자리를 한결같이 지키고 있으면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날씨는 추웠지만 그날 책을 받아 들고 나올 때 가슴이 문득 훈훈해지고 괜히 안심이 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연암에 관한 글을 쓰면서 얻은 望外(망외)의 소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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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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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순 (211.XXX.XXX.129)
2008년 3월 03일 [월요일] 오전 09:53
연암의 시, 콧등을 시큰케 하는군오. 언제 읽어도 좋은 글, 감동이 오는 임주필님의 글입니다. 지난번 신문윤리위 회의에는 오시지 않았더군요. 수상 소식도 전해 들어 축하의 말씀 드리려 했는데 섭섭했습니다. 어느덧 2년 임기도 다 되었구요. 한달에 한번씩 만나는 기쁨도 글 읽는 기쁨 못지 않았지요. 늦게나마 메일로 수상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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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9 16:19:15
0 0
동산 (221.XXX.XXX.129)
노래를 들어도 눈물, 18번을 불르다가 눈물, 시를 읽다가 눈물, 잘난 척 해보려고 시를 써보다가 또 눈물..... 뭐 그러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남자의 눈물은 남을 위해 흘리는 것이고 남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리는 것인데...눈물이 너무 흔한 세상이면서도 눈물이 귀한 이 세상에 연암의 눈물을 통해 본인의 눈물을 이야기하는 것은, 연암이 자신의 얼굴에서 형님과 아버님을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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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6 14:57:27
0 0
이용백 (211.XXX.XXX.130)
이 시대 기자들이 고민해야 될 화두인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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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훌륭하게 살아가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문득 느낄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세상이 나를 알아 주지 않더라도, 금전적인 보상이 크게 따르지 않아도 즐겁게 자기일을 하면서 말입니다.
더 커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답변달기
2008-03-05 10:56:46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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