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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공동체가 생동해야 한다
임철순 2019년 12월 09일 (월) 00:01:00

결산과 이월의 계절입니다. 연말이 되면 개인이든 단체든 한 해를 되돌아보며 새해에 이을 것과 버릴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중견 언론인들의 언론 연구, 친목단체인 관훈클럽이 ‘위기의 언론 새 길을 찾는다’는 책자를 최근 발간한 것도 2019년의 화두를 정리하면서 2020년으로 생각을 이어 나가는 작업입니다. 한 해 동안 계간지 ‘관훈저널’에 실었던 글과, 관련 좌담을 종합 정리한 책에는 언론의 사명과 생존에 관한 고민과 제안이 두루 담겨 있습니다.

나는 그중에서도 언론의 신뢰에 관한 부분에 주목해 책을 읽었습니다. 사실 신뢰 문제는 언론 위기의 원인이면서 결과이므로 무엇이 해법이라고 명토 박기 어렵습니다. 언론계 안팎의 급변하는 환경과 도전, 시대의 변화양상을 고루 검토하고 논의해야 합니다.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은 다양하지만, 나는 페이크뉴스(뉴스처럼 만들어진 허위 정보) 차단과 오보, 불충분 보도 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가짜뉴스라고 하면 뉴스에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다는 오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합한 우리말이 없는 한 페이크뉴스라고 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페이크뉴스 차단은 언론사의 온라인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대외적 활동입니다. 자체 생산한 뉴스보다는 온라인을 통해 게재/확산되는 외부 생산 기사가 대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언론사가 팩트체크 기능을 통해 사실이 아닌 허위 정보를 걸러내거나 삭제하고, 사실 여부 미확인 상태인 기사에 대해 ‘논쟁 중’ 또는 ‘미검증’이라고 표시하는 외국 사례는 우리도 서둘러 도입하거나 강화해야 할 장치입니다. 이를 위한 언론사 간의 협력과 정보 공유도 필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내부 검증입니다. 거의 30년 전 방문했던 미국 타임 본사의 경우 기사 하나를 데스크과정에서 열두 번 고친 걸 본 적이 있는데, 이보다 더한 사례도 허다하다고 했습니다. 일간지보다 상대적으로 시간에 덜 쫓기는 주간지라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문장만 고치고 다듬는 게 아닙니다. 기사의 취재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를 점검하기까지 하니 기사가 나가지 못하고 아예 폐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의 글에 의하면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에는 이런 내부지침이 있다고 합니다. “기사를 읽다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읽기를 중단하고 창문을 열어 그 빌딩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라!” 확인, 또 확인, 더 확인, 다시 확인을 강조한 말입니다.

그 ‘뉴요커’에는 ​잡지가 인쇄되기 전까지 편집자, 작가, 팩트 체커, 보조 교정자와 함께 글을 교정하고 관리하는 사람, 오케이어(OK’er)가 있습니다. 오케이어가 승인해야 글이 나갑니다. 40년 가까이 그곳에서 일한  오케이어 메리 노리스(67)는 ​‘마녀’, ‘콤마 퀸’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그런 장치와, 근무자들의 열성 덕분에 ‘뉴요커’는 세계 최고의 잡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fusedtree/221288209265 참고.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요?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덮치자 언론사들은 경비 절감을 위해 맨 먼저 교열부(또는 교정부)를 없애거나 축소했는데, 이후 20년이 넘도록 나아진 게 별로 없습니다. 그 조직을 확대 발전시키기는커녕 원상회복도 하지 못한 언론사가 대부분입니다.

신뢰 회복을 위해 우리 언론이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교열기능을 대폭 확대 확충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종전처럼 오자, 탈자만 가리는 게 아니라 사실 확인, 이른바 팩트 체크 기능까지 할 수 있게 문자 그대로 넓은 의미의 교열(校閱)을 해야 합니다. 이런 일은 내부적으로 인기가 없기 마련이며 자칫 종속적인 업무로 처지기 십상이니 그 직능과 직위와 명칭과 대우에 특별한 배려를 해야만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언론 경영자들은 언론의 품질 향상과 신뢰 회복의 길이 무엇인지 깊이 궁리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기자공동체를 유지 또는 복원하는 것입니다. 입사 이전에 체계적 교육기회가 거의 없었던 기자들은 회사의 분위기와 선배들로부터 배우면서 성장합니다. 특히 하리코미(張り込み)라는 이름의 잠복취재 훈련을 통해 경찰과 부대끼며 세상과 인간에 대해서, 취재방법에 대해서 알아가게 됩니다. https://blog.naver.com/fusedtree/221344215698 참고.
전통적 기자 훈련방법이었던 하리코미는 이제 주 52시간 근무제 등의 영향으로 점차 없어져가고 있지만, 반드시 부정적 측면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꼭 집에 들어가지 않는 잠복취재가 아니라도 입사 초기의 기자들에게 사건 취재를 경험토록 하는 것은 기자에게 필요한 밀착 취재와 끈질긴 확인 습관의 체질화를 위해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선배(특히 1진)와의 교감이 넓어지고, 동료나 타사 기자들과 경쟁 속의 유대가 형성됩니다. 넓게 말해 기자공동체가 이루어지는 바탕이 생기는 것입니다. 기자공동체는 당연히 이익집단이나 권익 추구단체가 아닙니다. 가르치고 이끌어주고 격려 또는 질타하면서 언론인으로서의 자질과 체질을 길러주는 한편 스스로를 점검하고 확인하는 능력을 갖추게 해주는 존재입니다.

나는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선배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절대 한쪽 이야기만 듣고 기사 쓰지 마라”, 이것이 수습기간에 처음 들은 말입니다. “기사는 120을 취재해서 80만 쓰는 거다.”, “사쓰마와리(察回り, 경찰서 출입 사건기자) 선배는 인생 선배다,”, “신문기자의 눈은 카메라 같아야 한다. 현장을 3분 봤으면 30매도 쓸 수 있어야 한다.” 말을 좀 ‘거룩하게’ 내가 가공했지만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됐을 것입니다. 사쓰마와리 선배가 인생 선배라는 말은 나이가 아무리 적어도 취재경험이 더 있는 사람은 인간의 삶과 세상에 대해 그만큼 더 안다는 뜻이니 잘 배우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한국일보 창간발행인 백상 장기영(1916~1977)의 어록-. “납이 녹아서 활자가 되려면 600도의 열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활자화되는 기사는 600도의 냉정을 가지고 써야 한다. 뜨거운 냉정, 이 양극을 쥐고 나가는 게 신문이다.”,  “신문은 비판하는 용기가 있어야 하지만 칭찬하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활자를 심어 판을 뜨는 시대는 지나갔지만, 언론의 기본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만한 냉정과 열정이 잘 보이지 않고, 선배가 후배를 질책하며 기사를 고쳐주고 취재방향을 바로잡아주는 일도 드물거나 원활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런 일을 '갑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지는 것 같습니다.

기자공동체가 온전하고 단단하다면, 그리고 살아서 움직인다면 그런 현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 공동체가 나선형 틀로 발전하고 전진하는 것, 과거와 전통을 바탕으로 나아가는 언론사의 분위기와 틀을 확립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항상 눈뜨고 있는 물고기의 비늘처럼 얇지만 단단한 구조, 갑옷의 미늘처럼 겹겹이 촘촘하게 엮인 조직을 그리워하고 소망합니다. 인위적으로 그런 공동체를 조성하기 어려워진 세상이라 하더라도 언론의 신뢰 회복과 발전을 위해 늘 잊지 말아야 할 점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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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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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연 (210.XXX.XXX.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조만간 인공지능 기자들도 나올텐테 그 그룹도 포함된 기자공동체가 서로 유기적인 관계로 지금 문제를 보완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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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9 07:29:35
0 0
임철순 (121.XXX.XXX.221)
그 생각은 못해봤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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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08:22:25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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