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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이테를 살펴보며
전정일 신구대 원예디자인과 교수·신구대 식물원장 2020년 01월 04일 (토) 04:40:38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았습니다. 저보다 아주 연배가 높은 선배님들이나 어르신들께서 나이를 먹는다는 게 두렵다거나 아무 느낌이 없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저는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이 즐겁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아직 젊은가 봅니다.

제가 식물을 공부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나무의 '나이테'가 떠오릅니다. 제가 일하는 식물원의 카페에는 뉴질랜드 소나무의 커다란 줄기를 잘라 그대로 만든 테이블이 있습니다. 테이블로 쓸 정도이니 줄기 지름이 꽤나 크고 나이테도 수없이 많습니다.

어느 날 식물원이 조용할 때 가만히 앉아 테이블의 나이테를 들여다봅니다. 나무줄기가 자랄 때 안쪽에서부터 바깥으로 살이 켜켜이 쌓이는 방식으로 자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켜는 옅은 색을 띠면서 폭이 넓습니다. 또 한 켜는 짙은 색을 띠면서 폭이 좁습니다. 옅은 부분이 봄부터 여름까지 왕성하게 자란 재목 ‘춘재(春材)’이고 짙은 쪽이 가을에 천천히 자란 ‘추재(秋材)’입니다. 자세히 보면 전년도 ‘추재’와 당년도 ‘춘재’ 사이에 뚜렷한 경계가 생깁니다. 이때가 해가 바뀌어 나이를 먹는 겨울인 것이고 그래서 이 경계를 나이테라고 부릅니다. 이 수를 세면 그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나이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테이블 전체를 넓게 보면 나이테가 보여주는 무늬가 독특하고 아름답습니다. 간격도 방향도 들쑥날쑥합니다. 어디에는 단단해 보이는 옹이도 있습니다. 간격이나 방향이 일정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해마다 달라지는 환경 때문일 것입니다. 또 옹이는 나뭇가지가 죽어 생긴 상처를 품은 흔적일 것입니다. 환경의 변화나 나무에 생긴 상처 같은 시련들이 줄기에 생긴 무늬들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준다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소위 ‘산전수전’ 다 겪어 얼굴에는 온통 잔주름이 가득하지만 인생의 진리를 깨달아 평온한 모습을 가지신 어르신의 아름다움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나이테는 바깥으로 갈수록 촘촘하다. 그만큼 나무는 나이가 들면서 더 단단해진다.
 

다시 테이블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줄기의 바깥쪽으로 갈수록, 즉 나이가 점점 더 들면서 만들어낸 나이테들은 간격이 점차 좁아집니다. 특히 부드러운 부위인 ‘춘재’의 폭이 현저하게 줄고 단단한 부위인 ‘추재’의 비율이 높습니다. 춘재가 밝은 색을 띠고 부드러운 것은 자라는 속도가 빠른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보면 청년과 같은 모습입니다. 청년일 때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속도나 유연성이 높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추재는 천천히 자라면서 조직에 여러 가지 물질이 쌓이게 됩니다. 그 물질들이 조직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많은 경험과 지혜가 쌓이고 생각이 논리적으로 발달해서 신념이 강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추재 부위가 유연한 부분은 적어지고 단단한 ‘보호막’을 더 두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신념이라기보다는 아집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철저한 논리적 근거와 합리적 판단을 토대로 자신의 신념을 쌓아가는 것과 달리, 그저 자기 자신만을 생각의 중심에 놓고 점점 더 합리화하는 ‘보호막’만 키워가는 것은 차이가 크게 느껴집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신념이 단단해지는 분들이 아름답고 멋지게 보이는 이유입니다.

아직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이 즐거운 저로서는 가보지 않은 더 나이 먹음이 어떤 일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유연함과 신념이 조화되어 아름다운 나이테가 많아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전정일 

1969년 강원 원주 출생. 서울대 임학과 학사 석사 박사. 식물분류학 및 수목학 전공. 서울대 수목원 연구원, 중국 남경식물연구소・식물원 교환연구원 거쳐 2001년부터 신구대 교수로 재직. 저서: 길에서 만나는 나무 123, 자연자원의 이해(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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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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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옥 (101.XXX.XXX.115)
42년생 말띠로 나이한살 더 먹어니 세상이 더 좋아보입니다.호박은 늙얼수록 그 모습이 좋아보이는데 너도 호박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고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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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4 22: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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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시 (110.XXX.XXX.145)
잘 읽었습니다. 나무는 나이테가 촘촘하면
단단하게 자라 좋은 목재라도 되지만
사람은 나이테가 쌓이면 완고해지고
나이먹은 행세, 소위 나일리지나 따지니
달라도 너무 다른 거 같습니다.
답변달기
2020-01-04 1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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