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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불러 주고 싶은 꽃, 익소라
박대문 2020년 01월 23일 (목) 00:12:05
 
 익소라 (꼭두서니과) 학명 ixora
 

우리 주변에는 참으로 많은 식물이 있습니다. 그 수많은 식물의 이름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자주 만나거나 눈에 유별나게 띄는 식물이 있으면 이에 대한 관심은 자연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면 가급적 그 이름을 알고, 불러 주고만 싶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 시 한 구절에서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를 실감하는 때가 많았던 경험도 그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자주 보거나, 곱거나 귀한 것 등 저의 관심을 끄는 식물 곁을 지나면 그 이름을 한 번씩 불러 주곤 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아! ㅇㅇ꽃. 너 거기 있었구나. 그냥 지나칠 뻔했네.” 이름 모르는 식물을 만나면 “네 이름이 뭐지?” 그러면 그 꽃도 저를 아는 체 하는 것만 같고 더욱더 관심이 갑니다. 이렇게 하고 지나친 꽃을 다시 만나면 그때부터는 서로 지기지우(知己之友)나 된 것처럼 반갑기도 합니다. 해외에 나가서도 아는 꽃을 만나면 반가운 친구가 있는 것 같고 객지라는 생각을 잊기도 합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관심이고 관심이 있으면 서로 간에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러한 관계는 사람 사이나 동식물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새해가 시작되는 신년 초에 싱가포르에서 만난 익소라(ixora)입니다. 이 꽃은 초록색으로 빛나는 두툼한 가죽질의 반짝이는 싱싱한 이파리와 다양한 색상의 화려한 꽃을 가지고 있고 야생에 강합니다. 더구나 연중 내내 꽃을 피워 원예용, 관상용으로 인기가 많은 종입니다.

이 꽃이 웬일인지 동남아 어디를 가든 저의 눈길을 끕니다. 홍콩,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심지어 남미 페루에서조차 저의 눈길을 끌더니만 이번 싱가포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거지 생울타리에서, 도로변 가로수 길에서, 정원이나 가게의 경계선이나 공터에서 한결같이 밝고 화사하고 탐스러운 꽃봉오리로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원예종으로 많이 보급되어 식물원이 아닌 가정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할 정도라면 저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분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그래서 설사 꽃에 관심이 적은 분이라 할지라도 자주 만날 수밖에 없는 꽃이기에 이 꽃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생울타리용으로 많이 이용하고 있는 익소라(ixora)
 

익소라(ixora)는 인도, 중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지역이 원산지이며 전 세계적으로 약 400종이 분포합니다. 꽃이 피어 있는 시간이 길고, 줄기 꼭대기에서 우산형 꽃차례로 다발처럼 꽃이 피며 빛깔은 흰색이나 분홍색에서 오렌지색까지 다양합니다. 무엇보다 생명력이 강해 꽃이 계속 피고지고를 반복합니다. 특히 심한 가지치기를 해도 잘 견뎌내고 키 낮은 관목에 꽃송이가 탐스럽고 화사해서 생울타리용이나 실내 장식용으로 인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름에 직사광선만 피해 주고 겨울에 실내에 들여와 5°C 이상만 유지해 주면 꽃을 피울 수 있다고 합니다.

바쁜 현대인의 생활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이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식물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항시 있습니다. 물론 바쁜 시간에 쫓겨 가며 사는 현대인이라서 야생초와 가까이할 시간적 여유가 옛사람보다 터무니없이 부족하겠지요. 수렵 채취 시대와 농경 목축시대의 예전 사람들은 식물이 식생활과 일상적 삶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찌하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요. 아무튼 예전 사람들은 현대인보다 식물에 대하여 훨씬 더 많은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흔적이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나 속담에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갈등(葛藤)’, ‘부평초 인생’, ‘사시나무 떨 듯하다’, ‘소태맛’, ‘우후죽순’, ‘쑥대밭’ 등 많은 일상용어는 그 식물의 특성이나 형태를 알지 못하면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것들입니다.

지구생태계에서 생물권의 근본적 에너지원인 태양을 이용하여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만드는 생산자는 오직 식물뿐입니다. 식물 이외의 모든 생물은 식물이 만든 광합성 영양물질에 의존해서 먹이사슬을 이어가며 살아가는 소비자일 뿐입니다. 아무리 인간의 지혜가 뛰어나다고 해도 하찮은 잡초마저 할 수 있는 광합성 영양분을 인간은 생산할 수가 없습니다. 먹이 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소비자로서 식물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라도 지금보다는 좀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식물은 우리와 더불어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시대의 동반자입니다. 장자(莊子)는 제물론편(劑物論偏)에서 “천지는 나와 더불어 함께 살고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한 몸(天地與我竝生, 萬物與我爲一)”이라 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천지와 더불어 살아가고 풀 한 포기, 곤충 한 마리까지 나와 더불어 하나라고 생각할 때 이 땅에 평화가 깃들 수 있고 상생, 상존(相生, 相存)할 수 있다고 봅니다. 먹고 살기에 바쁘다고 식물에 무관심하고 자연과 멀리하는 것이 오늘의 사회생활입니다. 이 마당에 피아(彼我)로 양분된 사회적 갈등을 더불어 병존하는 한 몸이라 여기는 관심과 애정으로 어찌 아우를 수가 있겠습니까? 내 주변의 식물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주고, 자연에 관심을 두고 아끼며, 더불어 산다는 생각으로 사는 삶이 더욱더 절실해지는 작금의 세상입니다.

(2020. 1월 상하(常夏)의 나라 싱가포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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