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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마음에 안 들 때-대니얼 맥닐《얼굴》
김이경 2008년 03월 15일 (토) 08:01:39
‘독서처방’을 시작하고 제일 많이 들은 말이 “얼굴이 왜 그래요?”였습니다. 글이 어떻다는 얘기보다 사진이 이상하다, 인물이 없다는 촌평만 난무하더군요. 사진기만 들이대면 안면근육경직증에 걸리는지라 애초 사진발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인물이 읎다”는 한마디엔 제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달걀보단 타조알에 가까운 얼굴형, 조화롭지 못한 이목구비의 배치, 특히 단단한 열매와 질긴 고기를 씹어온 조상의 후예답게 잘 발달된 턱과 두드러진 광대뼈가 V라인을 선호하는 시류와는 영 상극이지 싶습니다. 게다가 전엔 나이를 먹으면 미모보다 인품(이 또한 자신 있는 분야는 아니지만)을 따졌는데 요즘은 쉰, 예순이 돼도 동안이네 뭐네 하며 얼굴 타령을 합니다. 그러니 저처럼 “읎는” 얼굴로 청춘을 보내고 이제야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에게 작금의 세태는 서운하기만 합니다.

사실 얼굴이 가진 기능 중에서 심미적인 측면은 아주 사소한 일부분일 뿐입니다. 대니얼 맥닐의 《얼굴》이란 책은 얼굴을 과학, 철학, 의학, 심리학, 문학 등등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조명한 얼굴 대백과사전인데, 이걸 보면 얼굴이 가진 기능과 의미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맥닐의 말에 따르면, 무엇보다 얼굴은 인간이 호모로퀜스, 즉 언어의 동물임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무성한 털이 사라진 인간의 얼굴은 그대로 언어가 됩니다. 그 어떤 동물보다 많은 약 22개의 근육 덕분에 우리는 조용히 염화시중의 미소를 나눌 수도 있고, 남몰래 데이트를 약속할 수도 있습니다.

사십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가 있지요. 그도 그럴 것이 얼굴엔 그 동안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들, 맺은 관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유머와 배려를 나눠온 사람과, 위협과 경멸로 대해온 사람의 얼굴은 판이합니다. 요즘은 의술의 힘을 빌려 얼굴을 바꾸는 이들이 많아서 이런 얘기가 소용없는 듯도 합니다. 사실 이 첨단의 가면에 속거나 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면은 수명이 짧은 데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가면을 자주 쓰다가 타고난 근육이 퇴화하여 표정을 잃어버리는 게 대표적인 부작용이지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담지 못하는 얼굴, 그 얼굴을 가진 사람과 그 얼굴을 보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비극적인지는 가늠하기 힘듭니다.

얼굴이 지금처럼 칼부림의 현장이 된 데는, 내 것이되 네 것이기도 한 얼굴 고유의 이중성이 작용한 게 분명합니다. 얼굴은 ‘보기’ 전에 ‘보입’니다. 나는 타인을 통해 내게는 보이지 않는 내 얼굴을 봅니다. 그 때문에 내 얼굴임에도 끊임없이 남의 눈을 의식하게 되지요. 허나 얼굴 근육은 불수의근(不隨意筋)과 수의근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내가 원하는 표정만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자의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표정도 내 맘대로 못하는데 날 때부터 턱하니 박혀 있는 이목구비를 어떻게 내 맘대로 하겠습니까? 깎고 조이고 세워봐야 한계가 있는 거지요.

맥닐의 책을 읽다가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신국판만한 얼굴 안에 50만 년의 인류사가, 진화의 비밀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니 눈이 커집니다. 눈썹을 싹 지우고 문신을 할까 했는데, 이 눈썹이 땀이 눈으로 들어오는 걸 막아주고 한 번의 꿈틀거림으로 의사소통을 해내는 다목적 기관이랍니다. 그렇게 유용한 걸 없앨 순 없지요. 맥닐은 얼굴이 미추(美醜)만을 담는 그릇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언어, 습관, 역사, 추억, 사상, 감정이 들끓는 용광로, 그게 얼굴입니다. 더구나 이 작은 얼굴에 숨은 뜻은 아직도 다 밝혀지지 않았답니다. 어디에 아틀란티스가 숨었는지 모르는 이 미지의 행성을 미추로 재단하는 건 좀 염치없는 짓이지요. 무식한 짓이기도 하고요.(제게 인물이 읎다고 하신 분들 뜨끔하시죠!)
이참에 결심했습니다. 어차피 제겐 보이지도 않는 제 얼굴, 당당히 들고 살렵니다. 적어도 성실히 진화해왔다는 점에선 누구에게도 꿇리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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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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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오태 (211.XXX.XXX.44)
독서생활을 인터넷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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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6 12:4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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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모 (211.XXX.XXX.44)
이경님, 언제나 느끼고 있습니다만 그대 참 멋집니다.
그대 글 읽을 때마다 마음이 너볏해지니 이건 분명 행복일 것입니다.
게속 좋은 글, 기대합니다.
윤 정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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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6 12:41:15
0 0
kimjh1878 (211.XXX.XXX.219)
당당하고 의지적인 용모이십니다 어느 누가 헛소리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해가 아니되는데요 칼럼 즐겨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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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6 1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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