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고영회 산소리
     
자동 폐기된 법안 15,000여 건
고영회 2020년 07월 24일 (금) 00:00:53

지난 20대 국회 4년 동안 발의된 법안은 모두 24,000여 건, 그중 본회의를 통과해 진짜 법이 된 건 35% 정도이고, 나머지 15,000여 개 법안은 국회에 계류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20대 국회가 끝나면서 이들 법안이 우수수 폐기됐습니다. 이들 법안 가운데는 정치권이 처리를 약속했던 법안도 수두룩하고, 이른바 '구하라법'은 국민 10만 명이 입법청원에 동의한 법안인데도 폐기됐습니다(그리고, 서영교 의원이 다시 제출했다고 합니다). 법을 새로 만들거나 고쳐야 할 것은 21대 국회에서 다시 법안을 내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면 법안이 자동으로 폐기되는 제도는 정상일까요? 법안은 내기부터 힘듭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은 조직이 있으니 쉽게 할지 모르지만, 기업이나 민간단체 또는 개인은 제도를 개선하려면 보통일이 아닙니다. 먼저 국회의원을 설득해야 합니다. 10명 이상이 발의해야 하는데 시작부터 쉽지 않습니다. 법안이 제출되더라도 수많은 회의와 관련자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과 같은 절차를 거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런데 이런 법안들이 본회의에 가기 전에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면 그동안 거쳐 온 일이 헛일이 됩니다.
 
들인 시간과 돈은 우리 사회의 비용입니다. 법률안 1건을 진행할 때 들어가는 비용(법안 준비, 전문위원 검토, 상임위 법률소위원회 검토,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은 정말 만만하지 않습니다. 대략 1억 원 정도로 계산하면 1.5조 원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셈입니다. 그에 따른 기회비용까지 계산하면 실로 엄청난 손실입니다.
 
국회 임기가 끝날 때마다 자동으로 폐기해야 할까?
 
대부분 정책은 연속성이 있습니다. 정권이 바뀐다고 이전에 이어오던 정책을 폐기하면 혼란스러울 뿐만 아니라 투입한 비용은 잠겨버리는 경제적인 손실도 많습니다. 특별히 상황이 바뀌지 않았다면 이전 정책을 이어 가는 것이 기본일 겁니다.
 
법안도 마찬가지겠지요. 국회의원 임기가 끝난다고 이전 회기에서 필요했던 법안이 필요 없어질 이유는 없습니다. 길게는 4년여 동안 곡절을 거치며 법사위까지 갔지만 본회의에 가지 못한 법안이 있을 때, 국회 회기가 바뀌었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 타당합니까?
 
자동 폐기를 규정한 근거를 찾아보니 헌법 제51조에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 기타의 의안은 회기 중에 의결되지 못한 이유로 폐기되지 아니한다. 다만, 국회의원의 임기가 만료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 규정돼 있습니다. 헌법의 기본 정신은 회기가 바뀐다고 하여 법률안이 폐기되지 않는 것입니다. 헌법의 기본 정신을 이어 받고, 현실에서 문제를 푸는 방법을 찾아야겠습니다.
 
제가 일하는 변리사 분야에서, 변리사법 개정안도 각 국회 임기마다 법안이 제출되어 험난한 길을 걸었습니다. 상임위 법률 소위에서 변호사 출신 의원 1-2명에게 막히고, 상임위를 통과해도 법사위에서 멈춰서고, 그러다가 의원 임기가 끝나면서 법안이 스르르 없어졌습니다. 새 국회가 시작할 때마다 모든 법안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 이게 정상입니까?
 
법안 가운데에는 계속 추진할 가치가 없는 것도 있겠지요. 그런 것보다는 정말 필요해서 발의한 것이 더 많을 겁니다. 그런 법안을 단지 의원 임기가 끝났다는 것으로 모조리 폐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해결책을 찾아야겠습니다.
 
새 국회가 시작되면, 각 상임위에 걸려 있던 법안에 대하여, 그 상임위원회 의원들 가운데에서 법안 추진을 이어받을 의원을 찾으면 어떨까요? 자기 소관위원회에서 고민하던 법안이니 나 몰라라 할 수 없겠지요.
 
제출된 법안은 국회 임기가 달라지더라도 계속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기간을 정해서 임무를 이어 받을 의원을 적극 모으고, 그래도 이어받을 의원이 없으면 그때에는 폐기하는 방식으로 처리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시시포스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시포스는 아래로 다시 굴러떨어지는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끊임없이 밀어 올리는 벌을 받습니다. 그는 끝없이 효과도 없는 노력을 되풀이합니다. 우리 국민에게 이런 가시밭길, 걷지 않아도 될 길을 좀 줄여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4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장영채 (221.XXX.XXX.53)
정말 좋은 내용입니다.
답변달기
2020-07-29 20:31:34
0 0
고영회 (112.XXX.XXX.252)
고맙습니다.
답변달기
2020-08-05 03:43:29
0 0
유희열 (112.XXX.XXX.252)
국회는 시시포스의 바위 굴리기가 장기인데 ??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답변달기
2020-07-26 17:47:43
0 0
정호중 (112.XXX.XXX.252)
항상 건설적이고 공감이가는글 고맙게 잘보고 있습니다. 많은사람이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답변달기
2020-07-26 17:46:30
1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