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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징그러워
임철순 2008년 03월 31일 (월) 00:25:34
# 향가를 비롯한 우리나라 고가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자칭 ‘국보’ 무애 양주동(无涯 梁柱東ㆍ1903~1977)은 <文酒半生記(문주반생기)>라는 유쾌한 자서전을 남겼습니다. 그 책에 무애가 열한 살 때 동네 아이들을 사랑방에 모아 놓고 영어 등 신학문을 가르친 소년숙장(塾長) 이야기가 나옵니다.

산술과목을 제일 좋아했던 무애는 수업시간에 이런 문제를 냈다고 합니다. 다람쥐가 21척의 나무 꼭대기로 기어 오르는데 1초에 9척 올랐다가 3척씩 미끄러진다, 꼭대기에 도달하는 시간은?

학생들이 3.5초, 즉 21÷(9-3)=3.5라고 대답하는 데 대해 무애는 의기양양, 그게 아니라 3초다, 즉 (21-3)÷(9-3)=3이라고 자랑스럽게 알려 줍니다. ‘(정답을) 도도히 설명하던 때의 기쁨!’이라고 무애는 책에 쓰고 있습니다. 자기가 만든 문제는 아니지만, 신이 나서 가르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정답이 왜 3초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까짓 3초나 3.5초나…’ 이런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 秋史 金正喜(추사 김정희ㆍ1786~1856)의 <세한도>(국보 180호)에는 수학의 비밀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소나무 두 그루, 잣나무 두 그루, 초가로 구성된 이 작품에 범접하기 어려운 기품이 깃든 것은 길이와 크기를 적절히 맞춘 수학적 계산과 치밀한 구도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종이 세 장을 이어 붙인 그림은 전체 그림에 안쪽 그림이 또 하나 있는 이중구조로 돼 있는데, 수학적 비례의 미가 뛰어난 작품이라는 것이 최근 발표된 미술사학자의 연구내용입니다. 추사는 시서화에만 능한 게 아니라 산학(算學)에도 뛰어난 천재였던 것입니다. 역시 대단한 분이라고 대책없이 다시 감탄하게 됩니다.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는 미신에 가까울 만큼 숫자에 집착했습니다. 14라는 숫자를 특히 좋아했던 그는 오래 지켜만 보던 음악협회에 일부러 14번째라는 순서에 맞춰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그의 성 Bach의 알파벳순서를 더하면 B(2)+a(1)+c(3)+h(8)=14가 됩니다. 성과 이름(Johann Sebastian Bach)의 알파벳순서를 모두 합치면 158이며, 이 숫자(1+5+8)는 또다시 14가 됩니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의 서주부는 14개의 음표로 구성돼 있습니다. 바흐는 죽음이 임박해 최후의 코랄을 작곡할 때도 14개의 음표로 된 첫 줄과, 그것의 거꾸로 된 숫자인 41개의 음표로 된 멜로디를 구술했다고 합니다.

골트베르크변주곡 초판은 14개의 카논으로 구성돼 있었고, 칸타타 BWV 19에는 <14번 협주곡>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수도 없이 많다는 이런 사례를 밥 먹고 일없이 앉아서 꼽고 있는 사람들도 이상하지만, 바흐는 왜 그렇게 숫자의 상징에 집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바흐에 관한 책에는 “음악은 영혼을 산술적으로 드러내는 비밀스런 작업”이라는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의 말이 소개돼 있습니다. “음악적인 감성은 시(詩)와 수(數)가 신비하게 반응하여 표현되는 것”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그러면 나는 뭔가? 시는 즐겨 읽는다 치고 수에 대해서는 깜깜 장님이니 결국 영혼도, 음악적 감성도 없다는 이야기 아닌가? 나의 사랑하는 바흐마저 이렇게 절망을 안겨 주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은 文史哲(문사철)만이 아니라 산학에도 능했습니다. 괴테,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정약용…모든 학문에 통달한, 이른바 르네상스적 전인들의 위대함에는 부러워서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또 화학 건축 이런 걸 전공한 사람들이 쓴 시나 소설에 얼마나 좋은 것들이 많습니까? 그들의 이과학적 상식과 논리, 치밀함과 과학적 상상력이 부럽고 그들이 잘 알고 몸 담고 사는 세계를 짐작조차 할 수 없어 답답합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 달리, 한 마디로 산수 때문에 망한 사람입니다. 최근 삼성언론상을 받았다고 여러 사람이 나를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꼭 수학 이야기를 끄집어 냅니다. “그렇게 지지리도 수학을 못하고 엉뚱한 짓이나 하던 녀석이...너 참 많이 컸다” 이런 말이 될 것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의 과외선생님은 지금은 시인이며 대학교수인 고종사촌형이었습니다. 그 형도 축하메일에서 ‘분수를 소수로 고치는 문제를 풀라고 하면 대충 때려 맞추던 철없는 녀석’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형의 친동생은 어려서부터 나와 함께 친구처럼 늘 붙어 살다시피 했는데, 장문의 인터넷 글을 통해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나의 수학인생을 만천하에 공개했습니다.

그래서 에잇 까짓 것, 오늘은 이 참에 수학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은 산수에 관한 <나의 이력서>입니다.

나의 치명적인 문제는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 때 배운 그 놈의 할(割) 푼(分) 리(厘) 모(毛)에서 시작됐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할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내 두뇌장치(이 경우, 차라리 진공관이라고 하는 게 낫겠지만)에 뭐가 어떻게 잘못 입력됐는지 1할이면 따질 것도 없이 6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할'만 나오면 무조건 6을 대입했으니 무슨 수로 정답을 알아맞히겠습니까? 

산수문제를 도저히 풀 수가 없어서 ‘이게 무슨 방학책이야?’, ‘종이가 아깝다’, 이렇게 써 넣었다가 어머니에게 들켜 뒤지게 혼이 났습니다. 하라는 공부는 않고 만화책만 들여다 보거나 공부하는 척 쭈그리고 앉아서는 만화나 그렸더니, 어머니가 만화책을 부엌 아궁이에 집어 넣어 태운 적도 있습니다.

중학교 입시를 쳐야 하는데, 나 원 참 재수도 없지, 1964학년도 입시과목은 국어 산수 보건(실기) 이렇게 딱 세 가지였습니다. 대한민국 문교부가 오랜 궁리 끝에 나를 때려 잡기로 결심한 입시제도였습니다. 이 이상한 입시제도는 겨우 2년간 실시됐는데, 국어를 100점 맞는다 쳐도 산수가 빵점이니 합격을 할 수가 없지요. 1차 대전중학교 시험 때 국어 산수 합쳐서 34개를 틀려(아마 100문항이었을 것임) 똑 떨어지고, 2차 한밭중학교 시험 때는 35개로 하나를 더 틀렸습니다.

어른들은 재수를 시키네 마네 그러다가(나는 아무 생각 없었음) 마침 인원 미달된 학교가 있어 거기에 들여보냈습니다. 2주 쯤 전에, 한밭중학교 1966년 입학자들의 동창모임에 초청을 받아 참석한 일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밭중학교는 나의 원수다. 내가 합격했더라면 여러분의 2년 선배가 됐을 것”이라고 헛소리를 했지만, 40여년 전 중1 무렵엔 정말 자존심 상하고 창피해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습니다.

좌우간 어렵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는 별 문제 없이 합격했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고교에서는 그 놈의 수학이 한 가지로 사람을 못 살게 하는 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대수와 기하 두 가지로 세포분열을 해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화학 생물 물리 지구과학, 이런 것들까지 다 합심협력해 나를 조르고 누르고 메다꽂고 그랬습니다.

하도 지겹고 재미가 없어 수업시간엔 딴 짓이나 하고 이과 교과서마다 표지에 낙서를 했습니다. 큰 글자 아래에 ‘대수는 징그러워 에구 징그러’ 이런 식으로 썼는데, 화학 물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생물은 아버지가 쓴 교과서로 배웠지만, 그 책에도 예외 없이 그렇게 써 놓았습니다. 수학은 물론 이과계통 과목이면 남김없이 빨간 점수(60점 미만)를 받는 나에게 아버지는 “넌 왜 그러냐”고 한심한 걸 지나쳐 정말 신기하다는 듯 질문한 일이 있습니다(왜 그렇기는? 아버지와 다르니까 그렇지).

국어는 고3 초기에 2학기 끝부분까지 미리 다 공부해 놓았지만, 아예 들여다보지도 않은 수학은 대책이 없었습니다. 대학입시가 다가올수록 모르는 게 쌓이기만 해서 어느 날 ‘이래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생각을 고쳐 먹자, 기초로 돌아가자’, 이렇게 사나이 모진 결심 단단히 하고 청계천 헌 책방에서 중 1 수학교과서를 사 들고 남산 시립도서관에 갔습니다. 학교 도서관이 아닌 남산으로 간 것은 남들 보기 창피해서 그런 거지요.

그런데 한참 중학교 수학공부를 하다가 속으로 '아 참, 수학 공부 좀 해야지' 이러면서 수학책을 꺼내려고 가방을 열었습니다. 중학교책 펴 놓고 앉아서도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내가 이거 정신병 걸린 거 아닌가 하며 어처구니가 없어 혼자 웃었지만, 그만큼 수학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교무실에서는 내가 유명인사였습니다. 선생님들은 참 이상한 녀석 다 있다고 나를 화제로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담임선생님은 “수학 공부 좀 해라. 수학만 잘하면 서울대 앉아서 들어갈 놈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영어 국어는 아무리 잘 해도 남들과 점수차가 많이 나지 않습니다. 문제는 항상 수학입니다. 대학입시와 똑같이 치르는 교내 모의고사에서 수학이 항상 빵점 나오는데 무슨 대책이 있겠습니까?

수학 못하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만들자, 그래서 함께 수학공부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런 거 하나 만들자 해서 大韓數盲會(대한수맹회)를 조직해 내가 회장이 됐습니다. 이름도 당연히 내가 지었습니다. 회원은 널리 포섭하지 못해 단 한 명밖에 없었는데, 그 녀석이 3년 전에 사망해 버려 이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증언해 줄 사람이 없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어쨌거나 암담하고 대책 없는 고3시절을 마무리하고 예비고사에 이어 본고사를 치렀습니다. 그날 저녁, 다른 대학 시험을 본 친구가 하숙집에 찾아와 함께 막걸리를 마시는 중에 “야, 그 학교는 미분 나왔디? 적분 나왔디?”하고 물었습니다.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미분인지 적분인지 화분인지 고분인지 알아야 대답을 할 거 아니겠습니까?

대학에 들어가서는 1학년 1학기 때 필수과목인 교양수학을 수강했습니다. 점수는 더도 덜도 아닌, 딱 낙제를 면한 60점! 가슴 졸이며 성적표를 편 순간 나는 속으로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민족, 싸우고 싸워서 세운 이 나라”, “대한독립만세”를 수없이 외쳤습니다. 원수같은 놈의 수학책을 이제는 두 번 다시 들여다보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이 온몸에 넘쳐 흘렀습니다. 그것은 곧 광복과 독립의 환희였습니다.

나는 월급이 얼마인지 정확히 외우지 못합니다(많이 받아서 그런 게 아님). 방 4개에 42평인 집에 10년 넘게 살았을 무렵, 어떤 사람에게 우리 집은 방이 3개에 40평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집에 온 그 사람이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그랬습니다. 경기도 양수리(정확하지 않음)에 있는 별장같은 집이 평당 500만원인데(정확하지 않음) 그걸 5만원(정확하지 않음)으로 잘못 들어, 경치 좋고 싼 집이 있다고 아는 사람에게 소개했다가 현장에 함께 찾아가서 곱빼기로 망신을 당한 일도 있습니다. 이처럼 숫자를 잘 외우지 못하고 시세에 어두운 게 다 수학을 못하기 때문인가요? 전화번호나 사람 이름은 여전히 남들보다 잘 외우는데...

따다다닥 후다닥, 손이 안 보일 만큼 고스톱을 빨리 치고, 고스톱판이나 골프장에서 남의 점수까지 금세 계산해 내는 사람들이 나는 놀랍고 존경스럽습니다. 내가 몇 년 몇 월 몇 일에 무슨 골프장 무슨 코스 몇 번 홀 파X에서 세컨 샷을 몇 번 아이언으로 친 공이 어떻게 됐고, 내가 그렇게 친 이유는…하고 몇 년 후에까지 설명하는 사람을 보면 기가 질리고 입이 딱 벌어져 할 말을 잃게 됩니다.

나는 지금도 미분과 적분을 구분하지 못하고 순열 조합, 진법, 집합 이런 개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인 탄젠트 코사인, 화학 분자기호 이런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산수 때문에 망한 놈입니다. 피타고라스 아르키메데스 가우스는 물론, 갈릴레오 갈릴레이 같은 사람들까지 다 저주하며 살았습니다. 젊어서는 그냥 ‘수학이 싫어, 다시는 수학책 안 봐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이런 생각만 했습니다. 지금은 내가 산수를 좀 잘했다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어린애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보다 훨씬 어려워진 요즘 초등학생들의 수학교과서를 어쩌다 보게 되면 어지럽기만 하고, 내가 이 아이들보다 빨리 태어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창피한 일을 가지고 지금까지 잘도 떠들어댔습니다. 수학은 끝내 징그럽습니다. 나는 대한민국 수학교육의 대표적 실패모델입니다. 다만, 나처럼 수학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위안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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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송 (211.XXX.XXX.129)
2008년 3월 31일 [월] 오후 01:49
존경하는 임주필님!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성낙송 부장입니다. 고호 작품전을 보고 식사 시간에 주필님을 뵈었던 사람입니다. 정감 있는 글로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글을 보노라면 큰 형님하고 진솔하고 친근한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 듭니다. 주필님의 인상만큼이나 푸근한 글을 열심히 읽으며 삶의 품격을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한 종 성낙송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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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9 16: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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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순 (211.XXX.XXX.129)
2008년 3월 31일 [월요일] 오전 09:44
임주필님, 모처럼 화사한 봄날 아침입니다. 수학공부 못하고도 유명 언론인으로 성공하셨으니 수학 낙제생들에게 큰 위로가 될 글입니다. ㅎㅎㅎ . 신문윤리위 짤리고 글 읽으니 더 반갑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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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9 16:13:50
0 0
아이구 (211.XXX.XXX.28)
어찌 저와 똑같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99%가 같습니다.
정말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세~상에 저만 짐까졍 고민을 해왔었는데 저와 같은 부류에 유명인사도 있구나~생각하니
많이 위안이 된답니다.
감사하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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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6 16:22:17
0 0
마리 (24.XXX.XXX.49)
웃고 웃고 웃다가 쉬다가 또 웃었습니다.
웃음의 클라이맥스는 어디인가 하문, 방3개 사십평과 5만원 양수리 땅 값입니다.
소문만복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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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1 10:16:41
0 0
황경춘 (61.XXX.XXX.140)
임 주필, 동병상련(同病相憐) 친구가 여기 있으니 힘 내세요.그리고 만일 이과를 선택해
진학했으면 지금쯤 과학기숳처장관? 그것보다 지금 신분이 하늘이 임 주필에 내려주신
그야말로 천직입니다.
답변달기
2008-03-31 16:39:05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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