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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잔인한 달
신아연 2008년 04월 08일 (화) 00:36:48
잔인하다고 하는 달 4월입니다.

'불모의 땅에서 라일락 꽃 피게 하고, 추억과 정욕을 뒤섞어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어나게' 할 만큼 삶의 본능이 죽음의 본능을 딛고, 생명 있는 것들은 죄다 살고자 하는 쪽으로 꿈틀대는 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해 하반기부터 올 2월까지, 가을과 겨울 두 계절을 쉼 없이 가족과 친지들의 부음을 접하면서 보냈습니다.

이제 아는 사람 절반 쯤은 하늘 나라에 있고 나머지 반 정도만 아직 이 세상에 남아 있는 느낌입니다.
주위의 다른 분들도 잊을 만하면 가까운 사람의 부고를 듣는다 하니 나이가 이쯤 되면 누구나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선'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그 1 선에 이제는 우리 세대가 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때부터인가는 고인과의 관계가 가깝고 멀고를 떠나 어느 장례식에서건 섧게 우는 일이 민망해졌습니다. 그 까닭은 단체 기합 중에 앞서 매를 맞고 아파하는 친구를 지나치게 불쌍해 하는 것이 좀 같잖다고 느낄 때와 비슷하게 여겨져서입니다.

요행히 그 매가 나를 영영 피해갈 거라면 모를까,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도 단지 앞 줄의 친구가 먼저 맞았을 뿐인 걸 가지고 호들갑스레 연민과 동정을 품는 짓이 우스꽝스럽지 않냐 말입니다.

그렇듯이, 장례식에 가서도 너무 많이 울면 ‘'나는 안 죽을 건데 너만 죽어서 참 안되었다’' 는 식인 것 같아 어색합니다.

7년 전 오빠의 장례식에서 조카의 죽음 앞에 허망해 하시던 작은 아버지가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자리의 다음 차례가 되신 이후, 우리 모두는 같은 자리에 영정을 바꿔가면서 죽음의 행렬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보다 선명하게 와 닿았습니다.

우리를 정말 힘들 게 하는 것은 어떤 일이나 사실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대한 우리의 '생각'일 때가 많습니다.

살아있는 한 죽음은 실재일 수가 없으니 언제나 우리의 상상 속에서 끊임없이 공포와 두려움을 자아낸다는 점에서 '죽음에 대한 생각'은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화장장의 불이 켜지고 관이 불길에 휩싸이는 사인을 확인하는 순간 고인이 영영 우리 곁을 떠난다는 '생각'에 견딜 수 없이 슬퍼지지만, 이보다 더 힘든 것은 화장된 유골이 유족들의 눈 앞에서 빻아지는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숨 멎는 듯한 오열도 그때는 차라리 기가 막히는 순간으로 화합니다.

가히 인간 고통의 극치와 한계를 마주하는 상황임에도 그렇다 한들 살아있는 자로서 죽음 그 자체를 몸소 겪는 것과는 같은 경험일 수 없으니 다시금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그래도 '두려움과 공포'는 죽음에 대한 예의를 한껏 갖춘 감정입니다. 장례식장의 주조색인 검정과 흰색처럼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감정 색채는 없을 것입니다.

시인이 말한 4월의 잔인함이란, 희고 검어야 할 표정 속에 빨갛고 노란색이 끼어드는 망측함처럼, 망자에 대한 도발적인 버르장머리, 모독, 죽음에 대한 반란 혹은 반전 같은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일상의 긴 시간 동안 밥상을 마주했던 가족 중 하나가 불구덩이에서 마지막 육신을 태우고 있는 동안에도 남은 식구들은 화장장의 구내 식당에서 우동과 김밥을 먹는 일, 마치 병원의 약제실 앞에서 약을 타기 위해 자기 번호에 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무심하게, 내 식구를 다 태웠다는 점등 사인을 기다리는 시선,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대기실 천정 밑에 매달린 텔레비전의 시시껍질한 오락 프로를 멍하니 지켜보는 것 따위, 그런 것들이 바로 그 순간의 죽음의 실체를 외면하고 싶은 무의식적 삶의 몸짓이 아닐까 합니다.

타인의 죽음을 마주할 때 일상의 관성을 집요하게 붙드는 것으로 삶을 놓치지 않으려는 산 자의 무의식은 곧 '불모의 땅에서 라일락 꽃 피게 하고, 추억과 정욕을 뒤섞어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어나게 하는’ 4월과 닮았습니다.

모진 풍상과 불모의 땅을 뚫고 찬란한 꽃을 다시 피우는 4월의 잔인한 생명력처럼, ‘작년 뜰에 심은 시체에 싹이 트기 시작했냐’고 기어이 확인을 하는 시인처럼, 아직 살아있는우리들은 지난 가을과 겨울의 죽음의 냄새를 떨치고 생명의 뿌리를 가만가만 되살리고 있습니다.

지난 두 계절 가족과 친지를 연달아 보내고 살아 남은 우리들은 다시금 머리를 맞대고 잘 살아볼 궁리를 하고 있으니 정말이지 4월은 잔인한 달인 것 같습니다.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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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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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림 (211.XXX.XXX.58)
제가 직접 들은 말은 아닙니다만, 최근 어느 자리에선가 '김우창'교수님께서(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사회가 '죽음(의식)'에 대한 사고/고뇌를 '잃어/잊어'버리고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하더군요. 개개인이 지니는 죽음과 삶에 대한 절실함이 마찬가지로 사회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일깨우는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신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전해 들은 말이 생각하서 처음으로 답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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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8 11: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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