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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때문에 망친 귤 농사
최창신 2008년 04월 10일 (목) 02:00:59

걸어서 탐라(耽羅) 일주(4)

다음날 아침 7시40분 한림을 출발했습니다. 여느 때처럼 아침식사는 하지 않고 그냥 호텔을 나섰습니다.

언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느냐는 듯 날씨는 쾌청. 몸 컨디션도 양호. 산뜻한 기분으로 남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중간 목적지는 대정(大靜). 남서쪽 끝에 있는 마을입니다. 30km 쯤 떨어져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켕기는 게 있었습니다. 어젯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있자니 두 발 모두가 마치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습니다.

아무리 갑작스런 강행군이라 하지만 겨우 30km 걷고 발이 힘겨워 하다니! 일어나 앉아서 발의 상태를 점검하다가 ‘아차’ 싶었습니다. 오른쪽 발바닥 앞쪽에 콩알만 하게 물집까지 잡혀 있는 게 아닙니까. 그 자체야 별 것 아니지만 의표를 찌르고 솟아나 자리잡은 물집이 마치 불길한 징조 같아서 조금 마음이 쓰였습니다.

   
  ▲ 제주를 일주하는 길은 계절감각을 잊게 합니다. 길가를 노랗게 물들인 유채꽃, 초록의 물결을 이룬 나무들, 주렁주렁 매달린 귤… 겨울 끝자락에서 봄, 여름을 지나 가을 풍경까지 연출되기도 합니다.  
 
한림읍을 빠져 나가면서 일주도로를 벗어나 중산간도로를 택했습니다. 이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아 일주도로보다 더 힘이 들었으나 자동차의 통행량이 적어 매연으로부터 좀 편안할 듯싶었고, 아무래도 주변 경관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길 옆으로 귤 농장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초록색 잎이 무성한 나무마다 주황색의 귤들이 황금알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었습니다. 매우 아름답고 풍요롭게만 보였습니다.

이런 광경이 서울 변두리의 어느 농장에서 펼쳐졌더라면 유심히 관찰하고 이모저모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는 귤의 고장 제주도가 아닌가. 너무 당연하다 싶어 별 생각없이 보아 넘기며 걷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책에서 읽은 귤나무의 전설을 기억의 서랍 속에서 떠올렸습니다. 옛날 중국의 어느 마을에 두 자매가 살았는데 언니는 부잣집으로 시집을 갔고 동생은 가난한 산지기의 아내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마음 착한 동생에게 선녀가 나타나 오리 한 마리를 주면서 “매일 콩 한 홉씩을 먹이며 잘 기르라”고 일렀습니다. 그대로 정성껏 했더니 오리는 먹은 만큼씩의 황금알을 낳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욕심장이 언니가 그 오리를 빼앗아 가서는 매일 콩 한 되씩을 억지로 먹였습니다. 그랬더니 오리는 그만 너무 배가 불러 죽고 말았습니다.

동생은 죽은 오리를 동산에 묻어 주었습니다. 이듬해 그 자리에는 황금알과 같은 열매가 열리는 나무가 자라났다고 합니다. ‘흥부와 놀부의 자매편 이야기…’ 하고 입가에 미소를 흘리다가 불현듯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 나무마다 풍성하게 매달려 아름답게만 보이던 제주 특산 귤. 그러나 날씨 탓에 당도가 떨어져 수확을 포기한 것이라니 보는 마음도 무거워졌습니다.  
 
‘가만 있자. 귤을 언제 수확하지? 당연히 가을이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은 3월인데 어째서…’
앞서 가던 김창완 국장을 불러 세웠습니다.

“김 국장은 이곳 서귀포 출신이니 그 이유를 알 것 아닌가.”
“물론 알지요. 귤은 매년 세 차례에 걸쳐 수확을 합니다. 그런데 지난해의 경우 1차 수확을 끝내고 내다팔고 보니 수익은커녕 인건비도 건지지 못했답니다. 크게 낙담한 농장주들은 2, 3차 수확을 해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대로 방치해 버렸다고 합니다.”

“왜 제 값을 받지 못했더란 말인가?”
“여름철 날씨가 귤 재배에 적합지 않아 귤의 당도(糖度)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었는가?”
“비슷한 종류의 외제 수입품에 밀리기도 한 모양입니다.”
“그럼 제주도민들은 어찌 살란 말인가!”
“……”

순간 가슴이 뭉클하며 뜨거운 기운이 훑고 지나갔습니다. ‘좀 맛이 떨어지더라도 전국의 모든 가정이 제값 주고 한 봉지씩만 사주는 의협심을 발휘하면 안 될까?’

월림리(月林里)라는 마을을 지나면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마 이 마을 출신 김 모씨가 서울에 있는 S대학의 부총장으로 취임한 모양이었습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한 플래카드가 세 개나 내걸려 마을 어귀를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민(里民) 일동이, 두 번째는 종친회가, 세 번째는 사촌 형제들이 만든 것이었습니다. 사촌 형제들은 모두 이름을 밝히고 있었는데 세어 보니 7명이나 되었습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씁쓸한 속담도 있는데 김 모 부총장은 논을 산 게 아니고 명예를 얻어서 사촌들의 축하를 받고 있을까?

사촌들의 플래카드 위로 지난 60년대에 만들어진 미국 서부영화 ‘황야의 7인’에 등장하는 걸물들이 오버래핑되는 건 어째서일까요. ‘The Magnificent Seven!’

최창신
서울신문 기자 출신.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다.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태권도신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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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5 16: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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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줍니다.
잘못 전달될 우려스런 표현이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귤은 3모작이 아닙니다. 따라서 1년에 3차례 수확하지도 않습니다.
의도하는 바가 글로써 잘못 표현된 것이리라 믿겠습니다.
답변달기
2008-04-28 15:3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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