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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바로 주몽의 나라입니까?"
정일환 2021년 07월 30일 (금) 06:58:07

이맘때쯤이면 네X버 녹색창에 ‘양궁선수 되는 법’을 남몰래 검색해 보는 사람이 늘었을 것이라는 데 자신 있게 전 재산을 건다. 실제로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양궁선’까지만 입력했는데 이미 자동완성 기능으로 ‘양궁선수 되는 법’이 뜬다.

진지하게 검색해 본 사람이라면 당황했을 법하다. 아무리 뒤져봐도 양궁선수가 되는 지름길을 속 시원히 알려주는 네X버 지식인은 없다. 대신 같은 제목의 인터넷 유머들이 검색된다. 그나마 말이 유머이지 대한민국에서 양궁선수가 되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말해주는 경고장 수준이다. 사제폭탄 만드는 방법까지 알려주는 네X버 지식인들이 양궁선수 되는 법을 모른다니 이거 실화 맞나 싶지만 다 이유가 있다. 양궁선수가 되는 뾰족한 방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련이 남았다면 양궁학원을 찾아보면 현실을 알게 된다. OO양궁 아카데미, 대표선수 출신 OOO이 운영하는 양궁클럽, OO양궁 체험 등 다양한 사교육 기관들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 중 흔히 볼 수 있는 ‘체대 입시학원’ 같은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말 그대로 ‘양알못(양궁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양궁으로 인도하는 곳일 뿐, 양궁으로 팔자 고칠 비법 따위는 취급하지 않는다.

올림픽 금메달에 관해 우리가 흔히 아는 의식의 흐름은 이렇다. 특정 종목에서 올림픽 금메달이 쏟아진다. 다음 날 그 종목 체육관에는 초등학생들이 몰려든다. 하지만 만만찮은 교습비에 예상을 뛰어넘는 장비 구입비까지 출발도 하기 전에 과속 방지턱부터 만나게 된다.

행여 아이가 재능을 보인다면 그때부턴 부모의 능력싸움이다. 입시 체육 잘 한다는 코치, 대표선발 잘 된다는 학교를 찾아 줄을 서고, 내 돈 내고 내가 눈치보는 아니꼬운 세월을 보내야 한다.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만들었다는 수입명품 장비 값은 ‘성적은 장비빨’이라는 정신승리로 버텨야 한다. 올림픽 금메달이 비즈니스가 되고 인맥이 되고 파벌을 만드는 흔한 과정이다.

그렇다면 ‘올림픽 9연패’라는 전대미문의 위업은 돈도 벌고 권력도 쥘 수 있는 최고의 아이템이 아닌가. 야심가라면 한 번쯤 떠올릴 법한 생각이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우리에겐 주몽이 꿈꾸던 나라를 현실 세계에 구현한 양궁협회가 있다.

양궁선수가 되고 싶은가? 양궁협회에 등록하면 된다. 돈은 없고 가오만 있다고? 걱정 마라. 양궁협회가 필요한 장비는 모두 공짜로 준다. 뒷집 금수저는 국대(국가대표) 출신 코치한테서 따로 과외를 받는다고? 그 코치는 국대 출신을 사칭하는 사기꾼이다. 양궁협회는 사교육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럼 어디서 훈련하냐고?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친다. 오직 학교에서만 가르친다. 의심나면 ‘김제덕’을 검색해보라. 옆집 금수저는 유럽 명품 활로 연습한다고? 어리광도 뭘 좀 알고 부려라. 모든 장비는 양궁협회가 지정한 ‘Made in Korea’ 제품만 사용 가능하다.

제주도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 나가고 싶은데 너무 멀다고? 자꾸 거짓말하면 화살로 X침 맞는 수가 있다. 양궁은 특정 지역에 유리한 대회는 개최도, 참가도 하지 않는다. 믿기 어렵겠지만 전국체전에는 양궁 종목이 없다. 개최지 프리미엄 우려 때문에 양궁은 전국체전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대표선발전 같은 대회 외에는 지역대회도 열지 않는다.

집안 형편이 어렵다고? 차비도 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용돈도 줄 테니 네 몸 하나만 제대로 챙겨서 경기장에 오면 된다.

이상의 ‘이바구’는 아마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 양궁협회의 위엄은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를 정확히 알려준다. 실력대로 계급장 떼고 붙는다면 지옥 같은 생존경쟁도 마다않는다. 원칙대로 승패가 결정된다면 군소리 없이 결과를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양궁은 제대로 된 공정과 정의, 평등으로 판을 깔아준다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중계로 보여준다. 양궁판이야말로 누군가 구현하겠다고 뻥을 쳤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나라다운 나라, 주몽의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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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환

경향신문, 뉴시스를 거쳐 현재 이투데이 사회경제부장에 이어 청와대
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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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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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남 (222.XXX.XXX.192)
글이 참 맛깔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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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3 10:14:58
0 0
한세상 (112.XXX.XXX.252)
모든 운동분야에서 양궁협회와 같이 움직이면, 거의 대부분 종목이 곧 세계 최고가 되겠습니다. 양궁보다 더 시급한 분야가 많아 탈입니다. 그러기에 오히려 세계에서 앞설 잠재력을 많겠군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답변달기
2021-07-31 08:51:03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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